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스페인어도 쑥쑥 늘고 쩍쩍 갈라져 있던 사막 같은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고. 2주 여행 기간 동안 싸마라 해변에서 봤던 야자수 나무처럼 내 마음을 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코스타 리카에 오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큰 선물이었다. 여행 전까지 왜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모르겠다. 여행을 갈까 말까 고민 중이라면 무조건 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이 백번 맞는 소리다.
어학원 클래스의 마지막 날, 잊지 못할 새로운 표현 하나를 배웠다.
No hay mal que por bien no venga.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어떤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다, 또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관용구였다. 같이 대화하던 아저씨가 자기가 니카라과에서 살다가 코스타 리카까지 오게 된 삶을 이야기해주면서 한 말이었다. (나름 파란만장했는데 내 부족한 스페인어로 모두 알아듣지는 못했다.) 이 표현을 설명해 주며 힘든 일 있어도 다 지나갈 거니 한번 사는 인생, 너무 걱정하며 살지 말라고 했다.
노트에 한 단어씩 꾹꾹 옮겨 적었다. 이 말을 듣고 머리에 뭔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머릿속을 자욱이 감싸고 있던 안개가 걷히는 듯했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었던 말인데도 이상하게 그때 저 말을 들으니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움틀 거렸다.
예상치도 못 했던 곳에서 그 당시 내게 꼭 필요했던 말과 조우하니 거대한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녹아 내렸다. 이별의 아픔도 내가 살아갈 인생의 한 챕터일 뿐이라는 것. 나를 한도 끝도 없이 끌어내리기만 하는 인생의 모든 숙제도 지나고 나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것. 비록 그 의미가 당장 보이진 않지만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난 후에는 이해가 될 거란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캄캄해 항상 나를 뒷전으로 놓고 걱정만 하며 살았다.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충분히 힘들었고 노력하지 않았나. 이만큼 했으면 내 삶을 살 권리를 충분히 누려도 되지 않을까. 세상은 아직도 살맛 나는 곳이니 너무 냉소적으로 대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먹구름 뒤에도 은빛 한줄기가 있기 마련이다. 너무 걱정 말고 내 삶을 살자. 나를 사랑하면서, 내게 주어진 오늘에 집중하면서. 난 그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폭풍처럼 요동치게 만드는 불안한 감정들을 하나둘씩 버렸다.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한가득 쌓았던 걱정 근심도 같이 쓸어갔다.
잃어버렸던 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준 고마운 코스타 리카. 배움의 즐거움과 삶의 따뜻함을 느꼈던 잊지 못할 이번 여행. 그래,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유가 있다고 믿어보자. 인생이 던진 돌에 걸려 넘어 질 테면 여기서 만든 소중한 추억을 꺼내보면 되는 거였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내 구름에 은빛으로 빛나는 것은 무엇일까.
기대를 가지고 새로운 챕터가 기다리는 일상 속으로 한걸음 발길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