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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무새들에 지쳤다면

오혜민, 당신은 제가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2025)

by 오학준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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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거의 책을 읽지 못했다. 거의 두 달 동안 한 권 정도 읽은 게 전부다. 책을 손에 잡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간신히 손에 들었다가도 몇 줄 읽지도 못하고 내던지기 일쑤였다. 글은 말해 무엇하랴. 읽은 게 없으니 나오는 것도 없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번민이 집중을 가장 크게 흐트러뜨린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안 될 때에 여전히 헤매고 있다. 과감하게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뛰어들어 쟁취할 것은 쟁취해야 할 터인데, 지금은 건드려진 말미잘처럼 촉수를 잔뜩 웅크리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은 때지만,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어디서든 잘 하고 싶은데, 정작 잘 하는 게 (일이든 글이든) 없어서일까. 


그래도 다시 살아나려면 방법이 없다. 바닥을 딛고 서는 수밖에. 일단은 짧은 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최근에 쌓아둔 책 가운데 가장 얇은 책을 들춰 읽었다. 오혜민의 『당신은 제가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날, 2025)이다. 제목이 우선 맘에 들었다. 아마도 적잖이 줄였을 '2만'이라는 숫자에 눈길이 갔다. SNS를 하다보면 매해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NPC들이 등장한다. 찍어낸 듯 똑같은 질문을 정해진 순서대로 내뱉고,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길 반복하는 이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쏟아지는 택배들을 까대기 하듯이 치우지만, 정작 그 숫자는 별로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떠나거나, 침묵했다.


질문은 쉽지만 답변은 오래 걸리거나 어려운 문제들, 질문자는 언제든지 도망가기 쉽지만 답변하는 사람은 박제되어 조롱당하기 쉬운 SNS라는 공간에서 이 일은 사실상 해결 불가능한 문제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예 빠르게 조롱을 시도해 '마음 약한'(!) 풋내기 파시스트들을 공간에서 축출하길 시도하거나, 아니면 침묵하고 조용히 차단해 작고 소중한 나만의 생태계를 지키기를 시도한다. 끝까지 말을 거는 사람들, 설득하여 변화를 요구하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매 해 줄어드는 느낌이다. 나조차도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더 이상 잘 하지 않고 구독계 수준으로 변하고 있다.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무의미한 개념을 통한 무의미한 논쟁을 양산하는 일이다. 성평등 개념을 내포하는 페미니즘에 '이퀄리즘'이라는 개념을 맞세우고 이를 통해 페미니즘에서 '평등'의 요소를 지워버리려는 시도 같은 일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는 지긋지긋함이다. "이것은 모두의 삶에 아주 중요한 주제, 이를테면 모든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젠더 불평등 문제 같은 것마저 논의할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말장난으로 전락시켜 버립니다."(150) 지긋지긋함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질문무새'들의 승리다. 그대로 당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SNS에서 차단을 걸고 내 눈 앞에서 치워버리면 그만일까? 조롱으로 침묵을 유도하면 끝일까? 당장 현생을 사는 그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선거 때가 되면 '여성혐오'를 외치는 후보자들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SNS는 선거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그들의 철통같은 편견과 혐오를 깨트리는 일이다. 저자는 교육 현장에서 주고 받았던 편견과 혐오를 일축시키지 않고 성실하게 대답하려 시도한다. 그것이 이론적으로 날카롭냐, 모든 질문에 명료한 답이 되느냐는 꼭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트위터에 상주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기서 다루는 사례는 조금 지긋지긋하고, 이미 수천 번 이야기해서 더 말할 것도 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가치는 그 사례들에 대한 완벽한 대답에 있지 않다. (적절하고 깊이있는 대답은 최근 발간되는 수많은 다른 연구서들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의 맥락 안에서 반복적으로 남초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질문들을 한 데 모아두는 일종의 핸드북이라는 점에 가치가 있다. 특히 숏컷, '한남 혐오' 용어, 집게손 찾기 등 남초 커뮤니티의 주체화 놀이인 '페미니스트 단서 찾기' 게임이 어떤 가치들을 중심으로 수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좋다. 


다만 간편하다는 점은 약점이기도 하다. 대답을 통해 질문자의 의문이 완벽하게 해소되기란 어렵다. (편견을 가진 사람의 의문이라는 것이 꼭 명쾌하게 해결되어야 하는 것인가? 라고 물을 순 있겠지만)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대답이 누군가의 태도를 변경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페미니즘을 세뇌하는 학교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장에서 마지막 마무리가 '그런 조직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는 정도로 끝나기보단, 그들이 생각하는 '세뇌'란 무엇인지, 그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고 있는 지 따져보아 그 말을 사용하는 이들이 얼마나 불분명한 의미로 단어를 오용하는지 따져 묻는 쪽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그런 '남성'들의 생각을 분석하는 게 목표가 아니므로, 분량과 형식에서 그러한 추론을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남초 커뮤니티를 오래 유영하다보면, 그들의 말에 동조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들의 비교적 '일관된' 논리 구조를 발견하긴 어렵지 않다. 어떤 개념들에 말초적으로 반응하는지, 그러한 반응들이 어떻게 '피해자성'을 구성하는지도 짐작해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주장들은 그러한 다양한 '말초적 반응'들의 집합이기에, 어쩌면 그러한 말초적 반응들 속에서 '2만 명'의 일정한 마음 상태를 추론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왜 군대 이야기에 민감하고, 생리 공결제 이야기를 하면 바로 예비군 훈련 이야기를 꺼내는 식으로 반응하는지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데 또 한 편으론, 그렇게까지 꼭 진지하게 설득시켜줘야 할 필요가 있긴 한가? 어차피 또 설득이 끝나고 나면 다시 다른 사람이 1장부터 똑같은 질문을 할텐데... 그 점에선 "모든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51)과 같이 한 줄로 편견에 대해 일축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은가 싶다. 물론 그것이 좋은 대답과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인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하겠으나, 언제까지 떠먹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러다 보통 이상한 걸 주워먹기 마련이라 우리는 결국 떠먹이는 쪽을 선택하고야 만다)


어쩌면 이 책을 필요로 하는 것은 질문 NPC들이 아니라 그런 NPC들에게 지친 사람들이 아닐런지. 조금 쉬었다가 필요한 수준의 대답이 있다면 쓱쓱 가져다 쓰고,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자기가 첨언해 두었다가 나중에 쓰고 하는, 일종의 공략법 같은 것으로. 지금까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가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덮고 나니 2만명의 질문에 답해주었던 2만명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개소리에 대답하는 법 위키피디아 같은 거라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지는 것... (진짜 이제 그만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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