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로운 삶으로

욕망의 굴레에서 가치 찾기

by 타조

그녀는 창가에 앉아 한때 가슴을 뛰게 하던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 말들은 여전히 같은 어휘와 같은 억양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 울림도 주지 않았다. 손을 잡는 일도, 속삭이는 약속도, 정해진 시간에 반복될 뿐인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갈망한 것은 이 사람도, 이 사랑도 아니었다는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상 속에서 반짝이던 장면,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황홀의 순간을 동경했을 뿐이었다. 막상 그것을 손에 넣고 나니, 남은 것은 숨 막히는 고요와 설명할 수 없는 공백뿐이었다. 마음은 더 이상 아프지도 설레지도 않았고, 오직 무미건조한 시간만이 그녀 곁에 조용히 쌓여갔다.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떠올린다. 순수한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는 생명 탄생의 순간은 형언할 수 없이 신비롭다. 크나큰 축복에 휩싸여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모름지기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세월이 흘러 그 어린 생명이 늙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꽃길만 걷기를 모두가 염원한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성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어릴 때부터 삶은 크고 작은 고난의 연속이다. 고난은 누군가의 도움이나 시간의 흐름, 자신의 대처에 따라 해결이 된다. 인간의 삶에서 고난이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불편을 야기하는 모든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불편하고 불만족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서 끊임없이 고통받고 불행해진다. 그래서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꿈꾸며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삶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투쟁이다.


여느 동물들처럼 단순히 생명 유지를 위한 생리적인 욕구 때문에 고통받는 일은 거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고통은 뜻밖의 지점에서 강화되어 우리를 힘들게 한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더 나은 삶으로의 욕구가 고통의 깊이를 더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보다 나은 타인의 삶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에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이 너무나 괴롭다.


갈망하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느꼈던 가슴 뛰고 설레던 만족감이 점점 희미해지고 무뎌지는 순간이 온다. 이미 손에 쥐고 있던 행복이 당연하듯 느껴지고, 만족감의 빈자리를 공허감이 채운다. 그리하여 아직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 뱃속 깊은 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공허한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욕망이 억누를 수 없이 솟구쳐 올라 공허한 마음을 가득 채우면 우리는 고통의 늪에 빠져버리고 만다. 각고의 노력으로 욕구를 채우거나 다스려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또다시 어떤 만족감에 휩싸이게 되고 이것은 만족과 불만족의 순환으로 이어진다.


엠마는 로돌프와의 관계에서 차차 공허함을 느낀다. 권태라는 말이 비단 인간관계에서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많은 돈을 벌어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허무함을 느낀 위대한 개츠비처럼 말이다.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면 단연코 고독이 주는 생각의 우주에 흠뻑 빠져야 할 것이다.


오늘도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고독을 위하여.


귀스타브 플로베르.jpg

<귀스타브 플로베르, 1821-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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