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따뜻한 일상
십 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고도 미완으로 남은 하나의 작품. 이젤 위에 놓여 붓을 든 손길을 기다리던 작품은 벌써 그렇게 오랜 세월을 미완으로 남았다. 이제는 한쪽 모서리에 먼지가 듬뿍 쌓여 나의 작업공간 귀퉁이에 반듯이 놓여 있다.
나는 많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나 손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에 국한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나의 소심한 결단력과 다른 사람을 지독히도 의식하는 부끄러움, 타인에게 베푸는 과도한 친절이 정작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했다. 먹고 싶은 사탕을 놔두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어 내가 먹고 싶은 사탕을 먹지 못해 속상하기도 했고, 미술이나 컴퓨터에 대한 배움의 갈망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를 순순히 따랐고, 주제 선택 과제를 선정할 때면 남들이 모두 고르고 남는 것을 선택하기도 했다.
착한아이콤플렉스는 가토 다이조의 책, 〈착한 아이의 비극〉에서 제안한 신조어로, 타인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뜻하는데, 나의 청소년기가 이런 상태였을까 짐작한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망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존중하는 의식을 형성한 것 같다. 이런 착한아이콤플렉스가 나의 성인기에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캔버스 위를 수놓던 물감들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공간을 남긴 채 굳은 지 오래되었다. 잠시 붓질은 멈추었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완성할 수 있기에 미완이다. 완성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기에 마음은 불안하지 않다.
하지만 인생은 완성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렵다. 완성한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우리는 입을 모아 삶에는 완성이 없다고 답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완성이라고 믿는 어떠한 모습을 이상향으로 두고 그것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의 과정이다. 이상향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도 미룬 채 달성하려는 목표를 위해 쉼 없이 달리기를 이어간다. 어떤 이는 환희의 노래를 부를 것이며, 어떤 이는 좌절에 고개를 떨굴 것이다. 달리기 자체를 포기하고 유유자적한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도 있고 달릴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이상향을 떠올려본다. 나의 이상향은 매우 비현실적이었고 거대했다. 세상에서 못 이룰 것은 없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판타지에서나 나올법한 능력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세월이 쌓일수록 내가 가졌던 이상향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음을 인식했고, 조금씩 이상향을 축소하고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수없이 바뀌는 삶의 완성된 형태를 어떻게 그려볼 수 있단 말인가?
삶에는 완성이 없기 때문에 삶의 과정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현재의 삶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이룰 수 있는 큰 목표까지도 달성하여 이상향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필요가 없다. 오직 충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만이 미완의 인생을 완성에 가까이 이끌어가는 길이다.
착한아이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존감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괴로운 나, 지나친 양보 속에서 마음 아파하는 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느라 나의 이야기는 속으로 삼키며 벙어리가 된 나를 되돌아보았다. 자존감을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씩 이루어 나갔다. 마치 사회에서 삶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부탁 거절하기, 원하는 것 먼저 말하기, 하고 싶은 말 꺼내기, 충돌할 수 있는 의견도 말하기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결국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존감을 품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갖추면서 나의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자존감이 아니라 도덕적 결함이 가득한 이기심을 쌓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의 삶은 미완이며, 계속 나의 캔버스를 채우는 여행을 하고 있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나의 인생은 미완의 상태가 아닐까 한다. 어떤 완성된 형태로서 존재하는 이상향보다는 그저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 꾸준하게 해내려고 노력하는 삶의 태도를 갖추고자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꾸준한 노력이 쌓여 분명히 어떤 알지 못하는 세상이 펼쳐질 것임을 의심하지 않으려 한다.
나를 사랑하고, 나의 삶을 사랑하고, 나의 일을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가 가진 능력이 무한함을 믿고 꾸준히 노력한다.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내 인생의 완성을 위해 지금을,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오늘도 나의 캔버스에 작은 글 하나를 그렸다. 내 삶의 흔적을 캔버스에 새겨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