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올려진 흰쌀밥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먹음직스러운 빛깔의 오이소박이, 매콤 달콤한 나물, 네모 반듯한 두부 지짐이 맛깔스럽게 그릇에 담겨있다. 계란을 풀어 넣은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먹다가 문득 옛날 밥상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먹을 것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언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때가 되면 맛있게 밥을 차려주시던 어머니 덕분이었다. 간혹 밥이나 반찬이 맛없다고 투정을 부려도 잘 먹어야 튼튼하고 키도 큰다며 아들을 달래주시던 어머니. 투정을 부린 다음이면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음식을 만드는 일을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면 뚝딱 요리가 완성되어 식탁에 뷔페처럼 주르륵 차려지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독립생활 중에 요리를 하고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리의 어려움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요리는 많은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곱씹어보면 나는 부모님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놓인 공부, 성적, 취미 등 온통 나의 일에만 신경 썼다. 학창 시절에 부모님의 삶과 일에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지만 나는 그보다 더 무신경했던 느낌이다. 아들이라서 그런 걸까? 내가 부모님께 무신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생물학적 수컷이 갖는 특성 때문이라면 마음이 조금 덜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명거리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말이다.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시집살이를 하며 가세가 기울어가는 가정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맞벌이를 했고 아프지만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던 시아버지의 병시중을 들면서 육아와 가사 일도 해야 했다. 어린 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면 가슴이 턱 막힌다. 삶을 겨우 버티며 사셨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집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낡은 고무장갑에 구멍이 뚫려 새 고무장갑을 꺼냈다. 그런데 새 고무장갑이 유독 신경 쓰였다. 요즘은 고무장갑도 색이나 디자인, 기능성을 더해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날 새로 사용한 고무장갑은 예전 모습의 분홍색 고무장갑이었다. 나는 분명 연두색 고무장갑을 샀는데, 산 기억이 없는 분홍색 고무장갑이 왜 집에 있을까? 분명 이 고무장갑은 절대로 내가 구입한 것이 아니었다. 담그지도 않는 김장을 고려하며 촌스러운 모양의 분홍색 고무장갑을 선택한 기억이 없었다.
문득 부모님께서 우리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예전에 분홍색 고무장갑을 주신 기억이 났다. 옛날에 어머니가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에서 요리며 설거지며 가사를 하던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내가 좋아하던 맛있는 음식 내음이 코끝으로 밀려오는 듯했다. 도마 위에서 칼이 식재료를 자르며 내던 소리, 보글보글 찌개 끓던 소리, 주방에 뿌옇게 꼈던 수증기와 고추장, 간장 등이 볶아져 나는 시큼하거나 달달한 냄새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계셨던 기억이 말이다. 설거지를 하며 떠올린 어머니는 젊은 모습으로 내 옆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코끝이 찡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전화기를 들어 익숙한 단축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