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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조 Sep 03. 2022

지우개로부터의 깨달음

사랑으로 따뜻한 일상

  인류의 역사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하는 기준은 문자의 유무이다. 기록물이 존재하려면 문자는 필수기 때문이다.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에는 음성과 행동으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 의사소통이 정교화될수록 더 많은 현상과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음성과 행동이 필요해졌으며 복잡해지는 표현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상당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그림으로 대상을 나타냈다. 이후 그림이 점차 정돈되어 상형문자로 발달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인류의 문자 시대가 시작됨을 알렸다. 지금까지의 사회 발전을 살펴봤을 때, 문자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문자는 의미 전달의 시공간을 허물었으며, 인류를 영장류로 도약케 한 축복이다. 하지만 실존하는 대상을 문자로 형상화하는 일이 매우 수월한 반면, 관념적인 내용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생각을 문자로 형상화하는 일을 인류는 문자로 해낸다. 다양한 관념과 대상을 나타내기 위해서 문자는 단순히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뜻만 나타내지 않도록 발달했으며, 여러 글자가 조합되어 다양한 뜻을 만들어낸다. 알파벳의 낱자 o, s, t, r, i, c, h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순한 문자일 뿐이지만, 낱자를 엮어 ostrich라고 쓰면 타조라는 뜻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말로 표현하면 음성언어, 문자로 표현하면 문자언어이다. 글은 문자언어이다. 문자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과정이 쉬울 것 같지만 뚜렷하지 않은 대상을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 것과 같이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을 정확하게 문자로 나타내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그에 맞는 낱말로 표현하는 능력 두 가지가 결합되어야 한다.


  우리는 글을 쓸 때, 완벽하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나타내지 못한다. 생각이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과 지식이 필요하지만, 충분하게 고민하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어휘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려고 한다. 글을 쓰는 과정의 두근거림과 깨달음에 우리는 설렌다. 생각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뒤틀어진 논리, 부족한 개연성, 오류 투성이의 유추 과정을 깨닫는다.


  다행히도 글을 쓰다가 잘못된 경우에는 지우개로 틀린 부분을 지울 수 있다. 물론 요즘 전자기기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는 '백스페이스'라는 지우개를 사용한다. 연필로 쓰거나 전자기기로 쓰거나 지우는 일은 꼭 필요하다. 지우개는 우리의 부족함을 지적한다. '이것 봐. 이렇게나 많이 틀렸어'라고 자신의 흔적을 공책 옆에 수북이 쌓는다. 우리는 쌓인 지우개의 흔적으로 괴로워한다. '이게 아닌데,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정확하게 글로 나타낼까?'


  공책에 글을 쓸 때, 연필로 기록하기 전에 쓸 내용을 여러 번 고민하는 편이다. 전자기기로 글을 쓸 때는 고민을 많이 해서 글을 쓰기보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쓴 후 고치게 된다. 개인적으로 두 글의 무게감을 따지자면 더 깊이 생각하고 나오는 공책의 글이 전자기기의 글보다 무겁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마지막 글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자신의 생각이 적절하게 표현될 때까지 수없이 지우개의 흔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 공책을 갖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불현듯 찾아온 즐거움, 또는 고민,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에 대해서 쓰기도 하고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시간의 고독이나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도 쓴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글을 완성한다. 다시 쓰는 과정은 귀찮지만 지우개가 있어 가능한 일임에 감사한다. 글을 쓰면서, 지우개가 닳고 지우개 밥이 쌓일수록 세상을 마주하는 까마득한 어둠이 조금은 걷히는 것 같다. 온 세상을 향해 작은 빛을 밝히고 온기를 나누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주위에 빛을 내고 온기를 뿜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비록 그 빛이 강렬하진 못할지라도 실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강렬하던 초라하던 빛의 본질은 같으니까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서하는 과정이 모두 빛으로 반짝일 것이다. 누군가를 향하는 빛과 온기를 발산하여 서로가 아름답게 빛나고 따뜻해지는 세상, 우리가 빛을 내는 이곳이 거대한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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