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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조 Sep 07. 2022

머리를 깎으며 떠올린 삶, 사랑

사랑으로 따뜻한 일상

  나의 머리는 짧다. 스포츠형 머리보다도 짧다. 십여 년째 같은 머리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머리 이야기를 하자면 강렬했던 여름 햇살이 누그러져 가을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바람이 얼굴을 훑던 그때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계절의 변화처럼 나의 삶에도 변화가 일던 시절이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서툰 일이 손에 잡히기까지 오랜 시간을 일해야 했기 때문에 집과 직장만을 왕복했다. 집과 직장만을 오가는 생활은 지루했으며, 바쁜 직장 생활은 그나마 즐기던 소소한 나의 취미마저 줄어들게 했다. 간혹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의 직장에 대한 애로사항을 얘기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함께 마주 앉은 소중한 시간을 불평이나 불만, 각자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은 낭비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힘들고 지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그저 만남의 시간을 즐겼다.


  지루한 생활을 이어오던 중 우연히 어느 음악모임을 알게 되었다. 누구의 소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용감하게도 모임 날짜에 맞춰 덜컥 찾아갔다. 두런두런 나누던 모임원들의 대화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나로 인해 멈춰버렸다. 그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임의 대표가 고맙게도 내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지루한 삶의 변화를 원한다는 얘기는 쏙 빼놓고 음악을 원래 좋아했으며, 우연히 알게 된 이 모임에서 활동을 해보고 싶어 불쑥 찾아왔노라 말했다.


  모임원들은 연말에 있을 공연을 준비한다고 했다. 남자가 했으면 좋겠다 싶은 악기를 편성하려고 했지만 모임에는 여자들만 있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때마침 등장한 내가 너무 고맙다고 했다. 의외로 자연스럽게 나는 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공연을 함께 준비했다. 취미로 음악과 악기를 배우는 모임이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공연을 준비했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다. 공연에서 연주한 아프리카 젬베에 맞춰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짧은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기 위하여 헤어숍을 주기적으로 방문하지만, 스스로 머리를 다듬는 시간을 일부러 가진다. 그 시간 동안 거울로 나를 한참 바라보게 된다. 대부분은 머리카락이 깎여 나가 잘 다듬어졌는지 확인하지만 가끔은 나의 눈, 눈썹, 코, 입, 피부, 귀 등 내 얼굴을 바라볼 수가 있다. 그러다가 내가 모르던 점이나 비정상적으로 난 털 하나 등 재미있는 발견도 해낸다.


  호수에 비친 자신에게 반해버린 나르키소스. 나르시스라고 불리는 이 미소년은 결국 호수에 빠져 죽어버린다. 아쉽게도 난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만큼의 미소년이 아니다. 그저 나에게 집중하고 머리를 깎는 행위의 소중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이 소중할 뿐이다.


  인간의 사회성에 밑바탕을 둔 관계 맺기와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고자 하는 집합성을 토대로 인류의 문화가 발달했다. 그렇게 발달한 문화의 틀 안에서 상호작용해야 하는 한, 나는 홀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누군가와 어우러지는 행복한 삶의 울타리 안에서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갖는 것과 모두가 어우러지는 삶의 울타리 밖에서 외로움을 겪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어우러지는 삶의 소중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에게 반해 물에 빠져 죽는 대신 서로에게 빠져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한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허울 찾기 놀이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나의 삶과 일, 사랑하는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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