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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조 Aug 28. 2022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려

사랑으로 따뜻한 일상

  드르르륵~ 드르르륵~

  책과 마주하던 시간에 균열이 생긴다. 책상 앞에 놓아둔 전화기가 차분하게 떨리며 내 손길을 기다린다.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떨림의 기척이 충분히 전달되도록 심하게 몸부림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경망스러움은 없다. 의외로 의젓한 떨림이다. 연필꽂이에서 얇고 작은 다홍색 갈피를 하나 집어 들어 책 사이에 끼워 넣는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들어 올린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정겨운 목소리가 귓가에 살랑바람을 일으킨다. 정겨운 목소리는 적당히 귀를 간질이고 내 마음에 들어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선물한다. 반가운 사람과의 통화는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짧은 소식을 주거니 받거니 안부를 묻고 다음을 기약한다. 이내 전화를 끊고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잠시 동안의 추억 여행을 끝내고 다시 책을 펼친다.


  별생각 없이 끼워 두었던 다홍색 책갈피가 갑자기 시선을 사로잡는다. 책갈피로 사용하기 위해 연필꽂이에 꽂아둔 책갈피는 모퉁이가 살짝 벗겨진 쿠폰카드다. 어느새 눈앞이 온통 다홍빛으로 물들며 초점이 흐려졌다. 흐려진 초점이 천천히 다시 돌아오니 온통 하얗게 눈부신 바닥과 벽, 천장으로 둘러싸인 어느 가게 안이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여자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요즘은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메뉴가 적힌 카운터 앞에 서있던 여자는 메뉴판을 들고 캐러멜 색상의 테이블이 놓인 홀을 지나쳐 내게 다가온다.


  언제 가도 사장님의 따뜻한 미소가 반겨주던 곳, 단골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던 곳, 마르게리타 피자를 맛 좋게 구워내던 가게는 더 이상 같은 자리에 없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그 마르게리타는 계속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입맛을 다시며 그리움에 빠져드니 다시 책상 앞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홍색 쿠폰카드는 원래 빨간색이었다. 시간이 지나 색이 바래고 모퉁이가 살짝 벗겨졌다. 꽤 오래전 일이라고 생각하며 어깨를 살짝 들었다 내린다.


  내가 즐겨 찾던 곳들 중 사라진 곳이 비단 이곳뿐이 아니다. 즐겨 찾던 가게의 자리를 지날 때마다 그때의 풍경이 사진처럼 펼쳐진다. 간판의 글자와 무늬, 문의 색과 모양, 테이블의 위치와 실내 분위기,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를 맞이해주던 사장님이 떠오른다. 새로 자리 잡은 가게의 간판과 인테리어 때문에 기억의 간섭으로 예전처럼 명확하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지나간 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떤 시기나 장소, 물건이나 사람... 그리움의 대상과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안갯속 풍경처럼 뚜렷하지 않다. 뇌신경의 기억 흔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쇠퇴하거나 명료성을 잃어버리는 망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기억의 파편으로부터 그 순간의 분위기나 감정을 유추한다. 그저 얼마나 나의 마음을 기울였는지 가늠해볼 뿐이다. 마음을 쓰고 정을 붙인 후의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마음을 쓴다'는 표현은 '어떤 일에 대하여 생각을 골똘히 하면서 걱정하다',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돈을 쓰거나 물품을 베풀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마음을 기울인 크기만큼 돌려받고 싶어 하지만 마음을 돌려받으려고 할 때, 쉽게 상처를 받는다. 마음을 쓰고 상처받은 경험이 많다 보니 더 이상 넉넉하게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돌려받기 위한 기대가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니 좋은 것도 있다. 내가 쓴 마음을 돌려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마음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럽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렇게 소년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었나보다.


  마음 기울였던 대상을 향한 아득한 그리움이 빗방울이 되어 내 마음의 웅덩이에 조용히 내린다. 그리움은 고독한 삶의 좋은 친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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