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두렵지 않은 삶
죽음이 끔찍한 것인 줄 알았는데, 삶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끔찍한 것은 죽어 가는 삶이었다.
<광인의 수기>,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농노 수백 명을 거느린 귀족 출신으로 젊은 백작 시절 방탕하고 폭력적이었다. 그는 전쟁에서 살생하고, 사람을 죽이려고 결투를 신청했고, 농노들을 부려먹고, 처벌하고, 사람을 속이면서 10년을 살았다고 썼다. 그러나 그는 타락한 삶을 그만두고, 귀족이란 배경도 멀리해 친구들조차 놀랄 정도로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광인의 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톨스토이 자신의 이전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여겨진다. 부유한 상류층으로 살아가는 부족함 없는 주인공은 주변의 영지를 사들이며 더욱 부유한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자신의 풍족한 생활에서 비롯된 넉넉한 안정감과는 사뭇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부족할 것 없는 삶에서 찾아온 것은 권태나 무기력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불안과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괴로워하며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수군거린다. 주인공은 오랜 시간에 걸쳐 몰아치는 번뇌를 떠올리며 사색하지만 어떤 것이 문제인지 뾰족하게 짚어낼 수 없다. 그러다 새로운 영지를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노파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부유한 삶의 토대를 깨닫는다. 많은 사람의 고통 위에 세워진 안락과 행복을 부끄럽게 여긴다.
딱히 불만이 없을 삶에서 마주한 근원 미상의 불안과 고통, 행복의 근간이 되는 근본적인 세상의 구조와 삶에 대한 깨달음까지 주인공은 결국 번뇌로부터 자유를 찾는다. 톨스토이의 변화에는 번뇌에 대한 사색과 숙고로 얻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끝 모를 두려움을 안기지만, 죽음은 우리가 비켜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필연적 사건이다. 다만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우리가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은 죽음을 향해 노쇠해 가는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쇠퇴해 가는 정신의 문제이다.
쾌락을 좇는 삶과 거리를 두고 고독 속에서 우리의 문제를 깊이 고찰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단순히 필요가 아닌 필수이다. 비록 아무런 고민 없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하더라도 삶의 본질과 행복의 근원을 탐색하는 일에 게으름을 부릴 수 없다. 진정 끔찍한 것은 죽어 가는 것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은 결국 어떻게 죽음을 향하는가 하는 소중한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갖는 삶의 깊이의 문제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산책을 즐기거나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하여 내면이 빛나고 환희의 아우라가 드러나는 품격 있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이런 삶의 끝에 맞이하는 죽음은 아쉬움이 다소 남더라도 후회 없이 반길 수 있을 것 같다.
<레프 톨스토이, 1828-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