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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준형 Dec 31. 2024

잊는 것이 두렵다

잊는 것이 두렵다.

잊히는 것이 무섭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해지는 것이 겁난다.


우리나라에서 난데없는 최악의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착륙 중 자그마한 사고가 있었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던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자가 점차 증가하고 구조자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면서 상황은 점차 심각해졌다. 항공기가 착륙과정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고, 폭발한 항공기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했다.


삶과 죽음 앞에 다시 한번 겸허해진다.

나는 1년 중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비행기에서 보내곤 했었다. 비행기는 여행의 설렘을 안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출발점이자, 여행의 여운을 떠안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아쉬움의 보금자리였다.


사실 비행기는 꽤나 안전한 교통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는 하늘을 날지만 그렇기에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는다. 비행 중 기체가 크게 흔들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심할 때는 아주 짧은 거리를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경험이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뇌인다. '비행기는 안전해, 다 괜찮을 거야' 그런 시간들을 거쳐 이제는 기체가 조금 흔들리더라도 나름 태연하게 앉아 괜찮아지기를 기다린다. 마치 수많은 경험으로 단련된 숙련공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득, 익숙함 속에서 무감각해지고 있는 나 스스로가 두려워졌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수많은 참사를 겪어오면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세상은 그들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아직 잊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소방관에서 현장에서 동료를 잃은 신입 소방관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으며 힘겨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한 대원이 PTSD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이 일들을 다 잊을까 봐, 그게 겁이 나고 두려워서 나라도 잊지 않고 그 순간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기 위한 거라고. 그래서 그때의 일이 계속 생각나고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거라고.


그렇다. 잊지 못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잊히면 안 돼서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위로도 희생자의 아픔을 보듬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모든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에 기반해 사고 경위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문제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책임을 지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예민해졌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에게,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간절하게 바래봅니다.



2024.12. 조준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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