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9개월 만에 승진하기
매주 한 번, 직속 매니저와 가지는 1:1시간. 30분 동안 전체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지, 하는 일은 어떤지, 매니저가 도와줄 일은 없는지 체크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날은 매니저가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축하해! 이번에 네가 승진하는 걸로 결정됐어. 아직 공식 발표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미리 알려주는
거야. 너는 충분히 자격이 있어! “
으응?!? 승진? 난데없이?? 난 내가 대상자인지도 몰랐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지도 못한 게 더 맞을 정도. 당시 나는 입사한 지 7개월 정도 되었고 사실 여전히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기에 소식을 들었을 때 좋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매니저는 내 승진을 위해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 7개월 간 내가 어떤 프로젝트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 나의 장점과 주변 동료들로부터의 피드백 등 온통 내가 잘하고 있고 현재 레벨보다 더 뛰어나게 일을 하고 있기에 승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인정해 주고 나를 승진시키기 위해 자료까지 만들어주다니. 매니저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당시 승진이 나와 멀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연차가 쌓여 승진하는 시점이 대략 정해져 있고 1~2년 차이는 있지만 보통은 그 시점 즈음 승진을 하기 마련이다. 또, 내가 이전에 다닌 회사는 승진대상자가 되면 본인이 직접 성과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그래서 여기도 승진대상자에게는 미리 이야기를 해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한국에 비해 북미는 확실히 연차와 상관없이 개인의 역량과 기여에 따라 승진을 하는데, 내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몇 가지 풀어보자면 그 차이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 특별 승진
동료 중 한 명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개발자 역할보다는 기술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인의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했다. 보통 개발자와 기술매니저는 트랙이 다르고 그 안에서 레벨이 다르다. 자신의 매니저에게 본인이 이미 하고 있는 역할은 매니저 트랙의 상위 레벨임을 어필하고, 정규 승진이 아닌데도 특별 승진을 했다.
# 승진의 조건
동료 중 한 명의 여동생은 연초에 매니저에게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어느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면 자신을 승진시켜 달라고 협의를 했고 매니저가 동의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성과를 거두어 승진도 했다고 한다.
# 다음 레벨로 가고 싶은지?
특정 레벨 이상이 되면 올해, 다음 레벨로 더 나아가는 게 목표인 지 현재 레벨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은지 묻곤 한다. 개인의 사정에 따라 올 해는 진취적인 도전보다는 안정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의사를 매니저가 알아야 적당한 과업과 성장 방향을 줄 수 있기 때문. 예를 들어 이제 막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사람의 경우, 일에서 성장보다는 가정에 전념하고 싶을 수 있다. (그렇다, 지금 내 얘기다.)
반대로 현재 레벨에서 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매니저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방해하는 요소를 없앤다거나 도와줄 수 있는 멘토를 붙여준다거나 한다. 일정 기간 이후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해고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나는 어떻게 승진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매니저가 준비한 자료에서 찾을 수 있었다.
1. Work log
나는 이전 회사에서 하던 대로 어떤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문서를 만들어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과 과정, 시행착오를 모두 기록하곤 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비슷한 문제를 겪었을 때 스스로 참고하기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 내 경험을 공유하기도 좋고, 인수인계도 쉽다. 특히 다른 팀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매주 경과를 공유하게 되는데 그때 따로 자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에서도 이를 아주 좋게 보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고, 템플릿을 만들어 우리 팀과 다른 팀에 공유도 하게 되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의례 했던 일이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나의 특장점이 되었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았다.
2. Feedback from peers
매니저가 작성한 문서에는 동료로부터 받은 피드백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출처는 함께 일하는 팀원뿐 만 아니라 잠깐 협업했던 다른 팀, 내가 만든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까지 다양했다. 또한 실제 메시지를 캡처한 이미지도 있고 아주 자세한 대화까지 적혀있는 걸 보니, 매니저가 그들과 1:1을 할 때마다 기록했던 모양이다.
1:1에서는 실제로 여러 대화가 오가는데 나도 동료들에 대한 피드백을 자주 전달하는 편이다. 내가 만났던 동료들은 대부분이 서로 도와주려고 하고, 적극적이었기에 대부분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다. 물론 평가 시즌에 정식 동료평가가 있지만 이는 보통 연 1 회인만큼 그즈음에 대한 평가만 반영되기가 쉽다. 하지만 매니저가 1:1을 통해 다른 팀원에 대한 피드백을 잘 수집하고 저장해 놓는다면 전반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솔직하게 그때그때 피드백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승진이 공식적으로 발표가 나고 많은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메시지는 “축하해, 근데 나는 네가 이미 그 레벨인 줄 알았어! “ 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래서 승진을 했구나 싶기도 했다. 나를 인정해 주는 매니저, 동료들을 만나 참 감사하다. 이는 지금까지도 내가 많이 흔들리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