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해외에서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 아니면 언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비자’ 일 것이다. 한평생 한국에서 자국민으로 살아온 내가 단 한 번도 걱정하지 않은 바로 그것. 반면에 내가 캐나다에서 직업을 구하는 데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부분이다.
퇴사를 하고 캐나다에 입국할 때 전자여행허가서(eTA)만 달랑 들고 들어왔다. eTA는 온라인에서 누구나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으며 캐나다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나는 그냥 놀러 온 여행객과 다름없었다. 그 어떤 의무도 권리도 없는 상태. 당연히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work permit이 있어야 하고 종류도, 받는 경로도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몇 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 Employer-specific Work Permit: 직장에서 직원을 채용하면서 지원. 해당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만 유지
- Post Graduation Work Permit: 캐나다 대학 졸업 후 일정 기간 동안 일할 수 있도록 발급
- Open Work Permit: 캐나다 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음. 하지만 신청 자격이 매우 제한적. 보통 상위 비자(영주권 등)를 신청하며 처리를 기다리는 동안 Bridge 비자 형태로 이용
- Working Holiday 비자: 흔히 아는 워홀비자. 나이 제한이 있음
- Start-up 이민: 창업을 하는 조건으로 영주권을 진행. 처리되는 동안 Open Work Permit 발급 가능
가장 좋은 방법은, 직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비자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비자 신청 비용도 절약할 수 있고 복잡한 서류 과정도 회사에서 도와준다. 또, 일단 이 나라에 살아보면서 영주권을 준비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집도 팔고 직장도 그만두고 왔는데 살아보니 안 맞아서 다시 역이민을 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나도 비자를 지원해 주는 직장을 구하는 것을 첫 목표로 세웠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은, 나에게 이득이 된다면 고용주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능력의 입사 지원자가 여럿 있을 경우 이미 합법한 비자가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 실제로 다양한 회사의 채용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지만 비자에 대해 이야기하면 더 이상 진행이 어렵다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해외 노동자 시장에 던져진 나는 이미 여기서 감점이 된 것이다.
나에겐 가까운 이민 선배가 있었는데,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직을 하면서 회사에서 비자를 지원해 이미 영주권까지 취득한 상황이었다. 남편 회사의 경우 규모가 매우 큰 대기업이고 해외 채용이 많아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었다. 이직 당시, 가족이 있다면 가족의 영주권도 함께 처리해 주고, 한국에서 올 때 해운이사 비용이나 당분간 머무를 집 등도 모두 지원해 준다. 당시 우리가 결혼한 상태가 아니고 내가 캐나다로 바로 넘어올 계획이 아니었기에 아쉽게도 나는 함께 할 수 없었다.
사실 나에게는 가장 쉬운 선택지가 있었는데, 바로 '배우자 초청 영주권'을 진행하는 것이다. 영어 시험을 볼 필요도, 어떠한 자격 요건을 갖출 필요도 없다. 영주권자인 남편과 나의 관계만 증명하면 영주권을 주고, 처리되는 기간 동안 Open Work Permit도 준다. 결국 나는 비자를 지원해 주는 회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이 선택을 하게 되는데,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남편이 차린 밥상에 얹혀 가는 기분이라 씁쓸하기도 했다. 직장이 없는 백수가 가진 자격지심이었겠지만.
캐나다에서 개발자로 직업을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링크드인에 계정을 만들고 프로필을 꾸미는 것이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간단한 소개와 함께 나의 경력,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나 기술 스택을 적는다. 그리고 지역을 설정하고 'Open to Work'로 상태를 선택하면 채용 담당자가 직접 연락하기도 하고 알림을 설정하면 구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한국에서 미리 이 작업을 해두면 구직 시장을 파악하기에도 좋고 어차피 초반 채용과정은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면접 연습을 하기에도 좋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북미 IT회사가 진행하는 채용 과정은 주로 이렇다.
1. Cover letter 혹은 Resume를 작성해 서류를 보낸다. 대부분 정해진 양식이 없으니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간략한 형식으로 작성해 두면 좋다. 경험이 있는 사람의 양식을 빌려 자신만의 양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좋고, 첨삭은 무조건 받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과정에서 채용 담당자와 전화로 이 Job이 나와 잘 맞는지,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지, 다음 과정에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2. 서류가 통과하면 이메일로 코딩테스트 과제가 온다. 주로 온라인에 접속해 알고리즘 2~3문제를 제한 시간 내에 완성하는 형태다. 1~2주 사이 편한 시간에 시작해 응시하면 된다.
3. 2번에서 어느 기준 이상을 통과하면 대면 면접 일정이 잡히는 데 보통 3~4번의 면접을 본다. 2번의 기술 면접, 1번의 시스템 아키텍처 면접, 1번의 인성 면접이 대체적이며 회사나 Job에 따라 인성 면접대신 기술면접을 3번 보고 인성면접을 각 면접 후반에 조금씩 보는 경우도 있다. 또,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온라인 면접을 많이 본다.
4. 면접에서 통과하면 거의 다 왔다. 급여와 보너스, 주식 등 Total Compensation에 대해 협상을 한다. 동시에 Reference Check를 진행하는데, 이전에 나와 일했던 사람들에게 나의 평판을 물어본다.
5. 협상이 완료되고 사인을 하면 끝. 협의한 날짜에 입사를 진행하면 된다. 입사 전에 매니저나 팀과 간단히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3번, 면접이다. 경력직이다 보니 요구하는 난이도가 있는데, 한국어로도 힘든 판국에 영어로 설명하고 설득하며 토론해야 해서 굉장히 어려웠다. 면접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자료는 유튜브나 인터넷에 아주 많으니 이를 활용하고, 무조건 가상 면접도 많이 진행하는 것이 좋다. 또한 면접에서 처음부터 최고의 답을 내는 것도 좋으나, 최종 목적은 이 사람이 논리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면접관과 함께 적절한 해결방법을 도출해 내는지,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지를 보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당당하게 내 생각과 논리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뜻을 전달토록 하자.
또, 여유가 된다면 여러 모임에 참석해 지인을 많이 만들도록 하자. 의외로 캐나다나 미국은 지인 추천(referral)을 통해 취업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추천을 받으면 채용과정에서 몇 단계가 생략되기도 한다. 임직원을 통해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사람을 뽑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추천을 받은 사람이 최종적으로 입사하게 되는 경우, 추천한 임직원에게도 인센티브나 혜택을 제공하니 양쪽 모두 이득인 셈이다. 나는 링크드인에서 모르는 사람이 관심 있으면 자기 회사에 추천해 주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여담으로 캐나다에는 캐나다회사만 직원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밴쿠버는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과 Time zone이 같고, 미국보다는 임금이 낮다 보니 미국 회사에서 캐나다에 지사를 내고 구인을 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미국과 캐나다는 회사 내 분위기도 차이가 있고 또한 라이프 스타일이나 도시의 분위기도 꽤나 다르다. 하지만 이걸 고를 수 있다는 건, 이민자에게 굉장히 매력적이다. 예로 나는 미국보다는 캐나다에서 사는 것이 좋은데, 내가 입사한 회사는 본사가 샌프란시스코인 미국 소재 회사다. 캐나다 라이프를 즐기면서 실리콘 밸리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입사 후에는 협의하에 미국의 지사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회사에서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지원해 준다. 상대적으로 미국보다는 캐나다가 이민의 기회가 많기에 미국이 최종 목적지여도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가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나는 매일 일을 삼아 면접을 준비한 끝에 입국 후 3개월 만에 현재 다니는 회사에 offer를 받게 되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영주권과 Open Work Permit처리가 지연되면서 실제 입사는 offer를 받고 6개월 후에 하게 되었다. 앞으로 풀어볼 이야기는 입사 이후, 내가 실제로 겪게 된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