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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알드 별 Jun 27. 2024

워킹맘 개발자로 산다는 것

내가 일하고 있는 IT 쪽, 특히 개발자 쪽에는 여자가 적기로 유명하다. 공학이다 보니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에서부터 남녀의 비율이 차이가 나고 실제로 현업에서는 더욱 여자가 적다.


내가 다니는 회사와 주변 지인들의 회사를 살펴봐도 여성 엔지니어는 소수로 그 비율은 7:3 정도다. 또한 위로 갈수록 그 차이는 현저히 커진다. 이는 미국, 캐나다, 한국이 비슷하며 실제로 C레벨 기술 리더 중 여성은 극 소수다. 보여주기 식으로 여성 엔지니어 리더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돌 정도니, 한 때 뜨겁게 달구었던 유리 천장, 역차별 등의 키워드가 여전히 생각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여성 엔지니어로서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결론적으로는 한 개인으로서의 성과보다는 '여자'이기에 이익/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현실에서 가장 크게 겪는 어려움은 연차가 쌓일수록 멘토나 롤모델로 삼을 여성 엔지니어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임신 후 출산휴가, 육아휴직에 대해 상의하고 정보를 나눌 동료가 하나도 없었으며 복직 후, 육아와 일을 슬기롭게 병행하는 법, 경력관리에 대한 상담을 받고 싶어도 이에 대해 시원하게 답변을 줄 선배가 없다. 멘토가 꼭 여성일 필요는 없지만, 큰 비율을 차지하는 주류가 공감할 수 없는 비주류의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여성에 동양인이라는 새로운 특성이 추가되면 더욱 어려워진다.




남녀 불문, 경력을 이어가는데 가장 큰 변곡점은 출산과 육아일 것이다. 출산은 여자에게 더 크게 영향을 주지만 육아는 부부가 분담하는 것으로 한국이나 미국/캐나다 모두 제도적으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출산/육아 휴직을 하면 최대 1년 반까지 특정 금액의 수당을 지급한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임직원의 선택에 따라 1년 반 혹은 그 이상 휴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특정 기간 동안 기존에 받던 급여와 비슷한 수준으로 급여를 지급한다. 또한 복직 후 임직원이 원하면 full-time이 아닌 part-time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준다. 이러한 제도는 실제로 출산 후 가족과 회복에 집중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지원은 남자에게도 동일하며, 실제로 사내에서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 임직원을 굉장히 많이 본다.


복직 후 내가 겪는 어려움은 이전에 비해 절대적으로 일할 시간이 부족하는 점이다. 도와줄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맞벌이는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모두 쉽지 않다. 이는 내가 일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를 갖기 전 나에게 일은 굉장히 중요했기에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내서 인정을 받는 것이 내 삶의 목표 중 하나이자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 우선순위는 뒤바뀌게 되었다.


현재는 내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이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기존에 일에 쏟았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어리고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므로 나의 체력관리에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최근 몇 년간은 일에서 성장보다는 유지와 안정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7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며 틈틈이 남편의 아이 등원 준비를 돕고, 집안일을 거든다. 12시엔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짬을 내 운동을 한다. 4시에는 퇴근해 저녁준비를 해놓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같이 요리해 저녁을 먹고 씻기고 재운다. 11시까지 설거지 등 밀린 집안일을 하고 씻으면 11:30. 못다 한 일을 하거나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


눈코 뜰새 없는 하루가 지나고 나면 가끔은 외롭고 허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엄마로서, 개발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행복을 느낀다. 나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나날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과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내 모습이 위로가 되고 멘토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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