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평소와 같이 커피 한잔을 준비해 책상에 앉아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을 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냐며 갑자기 잡힌 매니저와의 1:1. Zoom으로 접속해 간단히 안부인사를 건네자 매니저 왈, "이런 소식을 전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많은 고심 끝에 회사에서 당신의 자리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후에 인사팀에서 자산 반납에 대한 안내가 있을 거예요. 내일 부로는 사내 시스템 접속이 어려울 테니 정리가 필요한 것들은 오늘 내로 부탁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전해 들은 이야기를 따라 작성한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현실은 더 가혹하다. 어느 날 아침, 로그인했더니 이메일이 날아와 해고를 통보받고 그 순간부터 사내시스템에 접속이 되지 않은 사례는 유명하다. 함께 일한 동료들과 인사할 틈도 주지 않는 것이다. 인정과 자비가 없는 일이지만, 최근 1년 동안 IT업계에 지속적으로 불어닥친 피바람이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부터 IT 쪽은 성장세였고 많은 사업이 어려웠던 코로나 팬데믹 시절, 오히려 이쪽은 성장을 이어가며 사업을 확장하고 많은 인원을 채용했다. 그러나 최근 1년간, 많은 IT기업이 주가 하락을 겪으며 몸집을 축소하는데 이르렀고 이에 인원감축이 뒤따르게 되었다. 운영하던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담당 팀에 속한 임직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정리해고하는 경우도 많아 취업시장은 구직자로 붐비고 있다. 또한 이전과 달리 채용의 문도 쉽사리 열리지 않는 실정이니, 해고된 사람은 물론 살아남은 사람들도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내가 육아휴직에 있는 동안 25%가 넘는 임직원을 해고했고, 따라서 함께 일하던 동료와 내 직속 매니저, 그 위 매니저 할 것 없이 모두 해고되었다. 주가가 하락하면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자진퇴사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로 휴직 전 함께 일하던 동료의 90%는 현재 회사에 있지 않다. 팀 또한 축소되어 나도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연관된 다른 팀으로 곧 소속을 옮길 예정이다. 끊이지 않는 해고와 조직개편, 그리고 안정되지 않는 주가가 마음을 어지럽히기 딱 좋은 시점이다.
회사가 사업을 키워나갈 2021년 초, 그때도 해고된 동료가 하나 있었다. 지속적으로 사람을 채용할 때라 뜬금없는 인사조치에 모두 놀랐고 나에겐 처음 접한 해고 소식이라 더욱 충격이었다. 해고 사유는 회사에서 기대하는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원급으로, 같은 팀이지만 나와는 조금 다른 분야라 함께 일할 기회가 없어 개인적으로는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놀란 점은 사원급인데도 기대하는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고를 한다는 점과 이를 숨기지 않고 대대적으로 공지를 하는 점이었다. 사원급에게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력이 적어 아무래도 배우는 것이 많은 시기이다 보니 실력이 모자라도 끌어주고 밀어주며 어떻게든 성장시키는 것이 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는 너무 한국적인 생각이었을까? 추후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당사자에게 성과에 대해 여러 차례 멘토를 붙여주며 조언을 해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려고 했으나 잘 통하지 않았고, 결국 경고를 주고 몇 개월간 성과를 지켜보는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때 그 친구가 정신적으로 무너졌는지 성장을 포기했고 회사에서 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해고를 숨기지 않고 대대적으로 공지를 하는 것은 비단 해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통에 있어 투명한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떠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논의를 걸쳐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1:1등을 통해 가감 없이 공유한다. 지금 매니저는 자신이 내부적으로 팀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고 실제로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몇 개의 인터뷰를 보고 있는지, 언제 결정이 되는 지도 실시간으로 공유해 준다.
또 재미있는 일은, 그렇게 해고된 친구가 오래되지 않아 더 큰 회사에 입사해 현재 2년이 넘도록 재직 중이라는 것이다. 해고도 많은 만큼 채용도 빠르게 된다는 말이고 또한 자신에게 잘 맞는 자리가 있다는 뜻도 되겠다.
주변을 돌러보면 한 회사에 5년, 혹은 10년 넘게 재직한 사람도 많고 1~2년 주기로 이직을 하는 사람도 많다.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육아를 하기 위해, 혹은 그저 휴식이 필요해 이직이 아닌 퇴직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언제든지 사람을 자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 수 없이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일과 자신의 삶을 분리해 생각하고 어떤 선택이든 나의 자유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혹은 모두든, 분명한 것은 경력 단절이나 일을 하지 않는 기간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나는 재직 중인 회사에 정을 붙여 한 곳을 오래 다니며 회사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 위해 회사에서의 내 자리를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의 정리해고 바람을 보며 스스로 일을 대하는 생각이 바뀌고 있다. 회사에서의 내 자리보다는 나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며 개발자 혹은 하나의 노동자로서 경쟁력이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개인의 성과나 역량에 상관없이 해고되는 경우도 허다하기에 언제라도 변화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