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급하게 만들었던 게시물이 있었다. 학군단으로 손님들이 방문하는데 한쪽 벽면에 양면테이프가 떨어지지 않아 지저분했다. 학생들의 눈에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던지 테이프 자국을 가릴만한 액자를 걸고 싶어 했다. 시간은 없고 당장 만들어야 하니 그만큼 조잡할 수 있다. 어차피 급하게 만드는 거 설령 조잡함이 매력이 될 수 있는 쪽을 선택했다. 손글씨다. 구글의 OKR 도표 하나를 가져왔다. 인쇄한 표에 손글씨를 쓰는 것. 올해 달성할 목표를 적는 방식은 흔했기에 OKR로 살짝 바꾼 것. 다 같이 그렇지만 각자 5분 만에 만들 수 있도록 딱 하나 OKR을 만들어서 모았다. 불과 1시간 만에 제법 근사한 게시물이 완성되었다. 밋밋하니 자신의 얼굴 사진을 넣자고 했다. 시간이 없으니 만든 거 위에 붙였다.
"급하게 만든 것이긴 한데... 좀 있어 보입니다."
정말 그랬다. 근사했다.
"그러게 네가 고생했어 아주 잘 만들었네. 이건 급하게 만든 거니까. 곧 근사한 그림하나 사서 걸자"
하지만 1년이 넘게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그날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후 근사한 그림 하나 사서 붙이는 것에 대해 모두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게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학생들이 웅성웅성 대며 똑같은 포맷으로 '굳이', '시간 들여' 전부 다시 만들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이걸 왜 하고 있지?"
새로 온 학군단 직원이 이것을 다시 만들라고 했다는 것. 작년에 그걸 직접 만들었던 학생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이러려고 한 게 아닌걸... 저는 아는데..."
'신속한 판단이 필요할 때 회의를 열자고 제안한다. 막상 회의가 소집되면 주제와 관련 없는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관련 없는 이슈를 가급적 자주 제기한다. 환경 탓만 하며 불평을 한다. 상사의 지시를 못 알아들은 척한다.' 이런 일이 혹시 당신 주변에도 자주 있는 일인가?
2018년 매일경제신문은 <조직 망치려면 이렇게.. 삼성 전략회의 등장한 CIA 문서>에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회의에 나온 동영상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소개한다. 삼성전자의 글로벌전략회의는 각 사업부문장과 주요 임원, 해외 법인장 등이 모여 경연전략을 수립하는 중요한 자리다. 여기서 임원들에게 회사를 망가뜨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지 되새겨 보게 한 것이다.
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이 1944년 1월 발간한 '손쉬운 방해공작 현장 매뉴얼(Simple Sabotage Field Manual:Strategic Services)'을 주제로 한 기밀문서다. 32페이지 분량의 소책자에 따라 공작원들은 적국의 각 조직 등에 침투해 사보타주(태업)를 유도하여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작전을 감행했다. 2008년 기밀문서에서 해제돼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 문서의 의미를 '가십'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큰 오산이다.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베스트셀러, 권위 있는 논문, 돋보이는 기업 문화가 공작의 결과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번 자리 잡은 것은 쉽게 바꾸지 못한다. 앞서 말한 학군단의 OKR 게시물처럼 말이다. 한 번만 정립해 두면 두세 번 하게 되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업무리스트에 오르고 틀을 깨기 어려운 관례로 자리 잡아 버린다. 1944년에 감행한 공작들이 여기저기에 게시되어 그것이 정답이고 심지어 오랫동안 이어진 전통처럼 굳어져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다. 이 모든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입을 차단하면 된다. 앞서 학군단에서 직접 게시물을 만들었던 학생처럼 말이다.
1944년의 방해공작이 실패하고 완전하게 사라졌을까?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지 찾아보자. 이번 리더메이커 노트의 주제다. IBM 최고기술경영자였던 군더 뒤크는 자신의 저서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를 통해 조직이 어떻게 똑똑한 개인을 망치는지를 설명한다. 그의 책 표지에는 조직의 모든 어리석음에 대한 고찰이라고 적혀있기까지 하다.
그의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집단으로 허튼수작만 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아주 잘 정리해 준다.
업무가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될 정도다.
일에 따르는 온갖 짜증스러운 잡무는 갈수록 많아진다
일을 혼자 처리할 권한은 줄어들기만 한다.
회의 때마다 성과나 진행정도를 변호하듯 보고해야 한다.
법적으로 시비를 가려야 할 수 있기에 매단계마다 업무기록을 남겨두어야 한다.
회의시간과 횟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회의에서 해야 할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한다.
복잡함이 우리를 질식시킨다. 오늘날의 전체는 개인 지능의 총합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해야 한다. 단순무식이 아닌, 지능적으로
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 추천해 달라고 할 때 알려주는 스토리이다. 칩 히스와 댄 히스의 책 <스틱>에 나오는 사례다.
사우스 웨스트 항공사는 유명하다. 수십 년간 저가항공사로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독보적이다. 그만큼 성공 이유도 다양한 아티클로 분석되어 있다. 기내식이나 영화상영 없이 땅콩만 제공하는 저가 항공사, 항공기가 착륙했다 재이륙하는데 20분만 걸리도록 하는 20분 회전, 비행기의 기종을 통일하고 직항로 개설, 직원들을 채용할 때 유머감각을 중시하는 기업문화 등등. 대단한 것은 맞지만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였을까? 궁금하던 차에 찾은 사례다.
사우스 웨스트 항공사의 CEO 허브 갤러허는 항공사 운영의 성공 비결을 직접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 그것도 불과 30초 만에.
“우리 항공사를 운영하는 비결을 설명해 주리라. 딱 30초만 쓰겠소. 명심하시오 우리는 가장 저렴한 항공사요. 가장 저렴한 항공사가 우리 회사라는 점. 이것만 명심하시오. 그러면 당신도 우리 회사가 원하는 결정이 무엇인지 매우 쉽게 알게 될 것이오.”
“갑자기 마케팅 부서의 트레이시가 찾아왔소. 그녀는 맛있는 치킨 시저 샐러드를 메뉴에 넣으면 승객들이 좋아할 거라고 했소.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잠시 머뭇 거렸다.
“그런 제안을 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오?”
“그녀가 말하길 고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휴스턴발 라스베이거스행 여객기 승객이 비행 중 간단한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거요. 그때까지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간식거리는 땅콩뿐이었는데 말이오. 이유를 들어보니 어떻소?”
여전히 머뭇 거렸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는 거요.”
“트레이시, 우리 회사는 가장 저렴한 항공사요. 치킨 시저 샐 로드를 추가해도 우리 회사가 가장 저렴한 항공사로 남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제안도 가장 저렴한 항공사라는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할 이유가 없소, 그 빌어먹을 치킨샐러드는 서비스할 필요가 없네.”
공감이 가는 분석을 찾지 못하던 차에 우연히 칩 히스·댄 히스의 책 <스틱>에서 이 내용을 발견했다. 단 30초 만에 사우스웨스트의 결단 방식에 대해 완전하게 매료되었다. <스틱>의 저자들은 사우스 웨스트 항공사의 성공을 정리하여 ‘단순한 메시지의 위력’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사례가 리더메이커 노트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A Player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리더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간단하지만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면서도 수익을 창출하는 메시지를 정립하는 것이다.
기획은 천재가 하는 것이다. 아무나 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