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도 아니고, 김치도 아닌데

참는 건 능사가 아니다. 악감정을 오래 품고 있으면 안 되는 이유

by 기역
고독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분노할 줄 안다.


미키 기요시 '인생론노트'

기분이 안 좋은 상황에서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게 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말이나 행동으로 내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

내 기분이 상하는 것은 둘째였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남을 위해 좋게 지나가는 건 내 감정엔 전혀 좋지 않았다.

왜 그런 말을,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설령 눈치가 없는 일이어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무난'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갈등을 '죄'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갈등이 생기면 나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가족들과 소통을 해서 갈등이 해결되는 경험을 별로 해보지 못했다.

덮어두고 시간이 약인 것처럼 지나가는 식이었다.

엄마는 가정 내에 갈등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다.

"참아. 가만히 있어. 참으면 조용히 좋게 좋게 지나갈 수 있어."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사람 사이의 갈등이 불편했고 두려웠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처럼 될 수 있으면 피하며 살았다.

왜냐하면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건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쾌한 말을 들었을 때 어색하게 웃으며 넘기곤 했다.

이 상황만을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무 표현 못하고 삭힌 불쾌감이 결국 내 기분과 관계를 망가뜨린다는 걸 알았다.

혼자 참고 넘어가도 결국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기는 어려웠다.


@grim_giyeok


30대가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갈등이 인간관계에서 불가피한 것임을 깨달았다.

가족, 친구, 친구의 가족, 회사사람, 각종 동호회 초면인 사람 등

세상 사람들은 각자 성격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화나게 한다.


무난한 분위기를 위해 기분이 나빠도 말 못 한 채로 넘어가는 것.

작게 끝날 수 있는 일이 커지고야 마는 이유였다.

갈등을 정면돌파하지 못하면 결국 관계가 악화되었다.

표현해내지 못한 '묵은 감정' 때문이다. 표현을 회피한 게 부메랑으로 온다.

감정을 묵은지처럼 묵히지 말아야 했다.

삭힌다고 홍어처럼 되지 않는 걸 알았어야 했다.

묵힌 감정은 그저 부패할 뿐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그랬다.

그저 흘러가다 보면 자연히 세월에 풍화되겠거니 했는데 쌓이고 있었다.

나도 아버지에게 상처를 줬을 테지만,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상처가 쌓여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을 지나왔는데도 쌓이기만 하고 해소되지 못해 울화가 되었다.

나의 불만과 반감은 처음엔 몸집이 작았을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졌을 땐 이미 그 몸집이 너무 커져버린 후였다.

그날 아버지에게 큰 소리를 듣고서 집을 나오기 전까지 내게는 화를 낼 용기가 없었다.

화를 내고 나서 고독해질 용기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 감정을 말하고 화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제법 생겼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싫어하고 싶지가 않다.

분위기 때문에 할 말을 못 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내 표현을 하려고 노력한다.

작은 감정을 크게 키우지 않고 될 수 있으면 그 자리에서 해소하려고 한다.

내 생각을 전하자. 그게 소통이고 그것만이 답이다.


*타인에 대한 안 좋은 마음을 오래 담아두지 않는 방법

그 자리에서 내 감정, 내 생각을 표현하기. 너무 오래 묵혀두지 말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쓴이/그린이: 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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