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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로 떠난 벨라 Apr 25. 2022

내가 언어를 배우는 이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퀘벡의 퀘벡시티로 이사오니 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지역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이곳에서 일주일 정도는 현지인이 1:1 과외를 해주는 불어 학원에도 등록을 해서 불어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식당이나 쇼핑몰에서 불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직원분들이 에게 먼저 영어로 질문을 해준다. 혹은 열심히 배운 불어를 사용하면 나의 질문에 불어가 아닌 영어로 대답해준다. 감사하기는 하지만, 스스로에게 도전의식을 주고 싶은데 환경이 생각보다 그렇게 따라주지 않아서 아쉽기는 했다. 실은 불어로 대답해줘도  알아들을  뻔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오늘은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불어 학원에 다니고 불어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번도 글로 작성해본 적은 없던  같아 나의 다짐을  굳세게 하기 위해 적어본다.


퀘벡에 오기 전 나의 직업은 마케터였다. 그리고 가끔 통역을 돕는 통역 일도 종종 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 직업은 아마 당분간은 그대로 마케터가 본업이 될 것이다. 잘하기도 하고 인정도 받는 나름 스스로 마케터로서의 커리어를 잘 쌓았다고 생각하고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나에게 몇 년 뒤 혹은 계속 마케터가 하고 싶고 마케터이고 싶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아니다. 내가 마케터가 된 이유는 마케터가 하는 일은 참 숭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전 세계 그리고 한국에도 너무나도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많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사라지는 회사가 수두룩하다. 내가 생각하는 마케터는 그런 회사를 수면 위로 떠올려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직업이 좋았고 만족도 또한 높았다. 그런데 앞으로 길어야 3년, 그 이내에 마케터라는 직무와 인사를 하려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100세 시대이고 다른 핫한 직업이 있어서는 아니다.


30대가 되면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어 졌다. 어렸을 때 엄마의 꿈은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엄마에게는 좋은 환경과 기회가 닿지 않아서 교사가 되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종종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기 일수였던 내가 이제 교사가 되고 싶다는 게 조금 웃기긴 하다. 나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꼭 해보고 싶은 직업들을 적은 리스트들이 있다. 그중, 딱 한 개의 직업을 빼고 모두 다 이뤄봤다. 그 직업이 바로 교사다. 가능한 대학 교수까지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내가 거쳐온 직업들과 타이틀은 다양하다. 젊은 CEO, 한 분야의 전문가(마케팅),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프리랜서 등등.


실은 앞으로 5년에서 10년 동안 마케터로 일을 해도 돈을 버는 데에는 문제가 없고 아마도 앞으로 더 좋은 기회와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의 크기도 클 것은 분명하다. 분명하고 좋은 시기에 있는 지금 굳이 교사가 되겠다고 하는 내 마음을 나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하고 싶은 걸 어쩌겠는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하면서 사는 내가 걱정 없어 보이겠지만, 그런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부족했던 오늘에서야 내 결심을 실행으로 옮겨도 되겠다는 확신을 받았다. 아침에 침대에 누워서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보다가 한 때 잘 나가던 댄서였던 분이 갑자기 댄스 생활을 그만두고 디자인에 관심이 생겨 파리에 가서 지금은 유명한 명품 브랜드 D사의 패턴 디자이너가 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되게 신기했다. 그분 또한 계속해서 댄스 생활을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딱 좋은 위치와 기회가 있었을 텐데, 디자인이 하고 싶었고 용기를 갖고 실행에 옮겼다. 시청자의 눈에는 그분의 현재 화려한 타이틀에 그분이 하는 모든 말이 일리가 있고 멋있어 보이겠지만, 나는 그분의 용기 있는 선택이 가장 멋있었고 나에게도 용기가 되어 감사했다.


너무 심플하게 미래의 직업을 결정하는 것 같지만, 캐나다에 온 이후로 계속해서 다음 직업에 대해 고민해왔었다. 마케터라는 직업도 좋지만, 매일같이 경쟁해야 하고 최근 들어 마케터라는 직업이 핫하고 이슈화되며 수요와 기대가 많은 직업이 된 게 싫었다. 어릴 때와 다르게 가치관도 변해서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어진 것도 한몫했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어도 매일같이 업무 스킬을 엄청나게 계발하며 경쟁하고 다투지 않아도 되는 평생직업을 고민했다. 월 100만 원을 벌어도 마음만은 월 1,000만 원 번 것처럼 뿌듯하고 행복한 그런 직업 말이다. 그러던 중, 내 머릿속에 찌릿-하며 스쳐 지나간 직업이 바로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거였다.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들 또한 업무에 있어서 고민이 있고 가르침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는 면에 있어서는 나름의 스트레스가 많겠지만, 그 마자도 재밌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 직업만큼은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왔다.


더 나아가 한국에는 생각보다 언어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깨달은 이후로 내 결심에는 더 큰 확신이 더해졌다. 한국에는 탈북한 사람들과 다문화가정 등 한국에 열심히 적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산다. 나도 외국에서 살면 이렇게 힘들고 언어적으로 힘든데 이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며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 졌다. 이들 중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어 외에도 다양한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 TOP3 중 2개가 영어와 불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나는 불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 미래의 학생들이 어떤 학생들 일지는 모르지만 그들과의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기 위해서는 내가 노력하고 싶다. 이곳에서 살며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외국인들처럼 나도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다. 진솔하게 선택한 직업으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교수가 될 거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교사가 되는 것에 관심이 생긴 이후로 주변에 이미 알고 있던 혹은 새롭게 사귀는 외국인 친구들이 다 교사였다. 통역사로 퀘벡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파파는 남아프리카 출신으로 현재 초등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나에게 캐나다에서 나중에 한국어 혹은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면 좋은 방법과 길을 알려줬다. 한 번은 대학교 시절 친하게 지낸 중국인 언니가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다 언니가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교사가 되고자 하는 나에게 언니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언어 교사 자격증과 위로와 응원의 말을 전해줬다. 이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왔다. 이 길로 가도 된다고 말씀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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