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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로 떠난 벨라 Apr 26. 2022

태어나 처음 버스를 타다

혼자 여행, 그 동전의 앞면과 뒷면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다양한 국가에 다녀봤지만 단 한 번도 버스를 타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아마도 버스 안에서 마주해야 할 다양한 상황이 무서워서였던 거 같다. 그래서 매일같이 여행지에 가면 택시 앱을 깔아서 택시를 탔고 지금 생각하면 참 '편하게' 여행을 했다. 돈이 많아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학원에서 친해진 알렉스 선생님에게 버스 티켓을 사는 방법을 물어봤다. 알렉스 선생님은 핸드폰 어플로 버스 티켓 5일권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고 덕분에 구매까지 빠르게 완료했다. 구매한 내역을 가지고 버스기사님께 보여주고 태어나 처음으로 버스에 탔을 때 숨이 찰 듯이 기뻤다. 기쁜 마음과 대조되게 버스 안에서는 이 감정을 숨기기 위해 최대한 정적이게 앉아있었지만, 마스크 속 안의 내 입꼬리는 버스 천장을 향해 속으로 "내가 해냈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시내를 관광하며 한참을 여행하다 학원 수업 전까지 꽤 시간이 남아 퀘벡 현대 미술관을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현대미술을 참 좋아한다. 현대미술은 고전 미술과 다르게 조금 더 과감하고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고정관념을 깨는 작가들의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기대 이상으로 미술관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시계를 보니 학원이 시작하기까지 30분이 남았다. 갑자기 귀찮음이 밀려와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움직이려고 택시 앱을 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택시를 지금 잡아도 20분 뒤에야 온다니! 아찔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가면 10분, 버스에서 학원 주변 정류장까지 약 10분 그리고 걸어서 5분이면 학원까지 도착할 수 있지만 꽤나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사실 하나는 나는 이제 버스 타는 방법을 아는 어른이라는 것이다. 좋다. 버스로 학원에 가보자! 열심히 구글맵을 통해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문제는 어느 방향의 버스를 타야 될지 모르겠는 것이 더. 일단 급하니 반신반의하며 느낌이 꽂히는 방향으로 버스를 탔다. (참고로 나는 길치다) 아이코, 큰일 났다. 버스를 학원으로 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타고 한참을 가고 있었음을 10분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늦었지만 빠르게 하차 버튼을 누르고 문 앞에 서있는데 웬열. 버스기사님이 문을 안 열어준다. 그렇게 또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마음속으로 엄청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다 이내 정신줄을 꽉 잡았다. 정신을 잡고 사면을 둘러보니 방금 막 하교를 한 중학생처럼 보이는 착하게 생긴 학생들이 몰려 앉아있길래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영어로 버스에서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정말로 절벽이 바로 앞에 있다면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잘생기고 예쁜 학생들이 기사님이 혹시라도 버스 문을 안 열 여주면 직접 문을 당기면 열리는 것을 알려줬고 다음 정거장에서야 겨우 버스에서 하차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3시 30분, 벌써 학원 수업은 시작됐다. 이메일로 학원 선생님에게 버스를 잘못 타서 4시쯤 도착할 것이라는 내용을 적어 우선 보내고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시 버스를 기다렸다. 수업 30분 시간을 놓친 것이 굉장히 아쉽고 아까웠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오래전부터 무서워하던 벽 하나를 깬 것에 만족했다. 4시에 부랴부랴 학원에 도착해서 선생님에게 죄송하다고 얘기하며 심지어 이 상황에 숙제도 안 한 부분에 대해 연이어 사과드렸다. 많이 죄송했지만 내가 한 숙제는 단 하나, 버스 타보기였다. 그래도 선생님은 웃으며 괜찮다고 해주셨다. 내가 생각해도 불어 숙제보다 오늘 한 경험이 더 값진 것을 알고 있었다.


위의 에피소드가 있는 날 이후로 제법 버스를 잘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며칠 뒤, 퀘벡시티에 온 날 이후로 날씨가 가장 좋은 날이었다. 살고 있는 집 안의 창문으로 햇볕이 따스하면서도 따갑게 나를 깨웠다. 직감적으로 오늘 밖에 나가지 않으면 손해 볼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아 귀찮은 몸을 이끌고 이 전부터 한 번 가볼까 하는 몽모라시 폭포(캐나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 다음으로 유명한 관광지)를 향했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이번에도 씩씩하게 도전했다. 폭포에 가서 피크닉을 온 기분을 내고 싶어서 집 주변에 있는 빵집에 가서 런치박스 세트를 사서 버스에 올라탔다. 10달러밖에 안 하는 런치 박스 안에는 식전 빵, 버터, 건강한 알록달록한 색상의 샐러드, 스모크 샌드위치 빵 1/2이 오목조목 예쁘게 들어있었다. 버스를 타기 전, 박스 안에 음료수가 없음을 직감하고 주변 편의점에 들려서 오렌지 주스도 사서 박스 안에 넣으니 완벽한 피크닉이 될 거 같아 설레고 너무 기대됐다.


버스를 1시간 정도 타고 내리니 잔디만 보이는 황무지에 도착했다. 나와 같이 동일한 정거장에서 내린 사람 중에서 나처럼 혼자  사람이 버스 기사님에게 폭포로 가는 방향을 물어보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분이 물어본 다음 나도 기사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서 기사님이 웃으며  앞에 먼저 가는 여자를 따라가라고 했다. 여자분을 졸졸 따라가는데 갑자기 여자분이 멈춰 서더니 나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셨다. 함께 걸으며 서로 소개를 했고 굉장히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름은 엘쥬, 브라질에서 살고 62 IT업계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를 하고 세계를 여행하며 산다고 한다. 퀘벡에는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왔고 온지는    정도 되었다고 한다.   영어는 학창 시절에 미국에 3개월 정도 다녀온  외에는 영어를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나도 이곳에 프랑스어를 배우러 왔고 영어는 대학교 시절에 교환학생으로 6개월 정도 미국에 가서 배운 것이 다였다. 우리는 서로 다른 국적으로 모국이 아닌 곳에 와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대화를 하며 친해졌다. 우리는 피부색도 국적도 나이도 다르지만 다양한 벽을 허물고 친해졌다. 엘쥬에게 불어를 배우는 이유를 물어봤다. 답변은 심플했다. For Pleasure (재밌으려고!) 무엇인가를 배울 때 나이는 중요하지 않음을 증명해주는 명쾌한 답변이었다.


엘쥬는 여러 방면에서 멋있었다. 5주라는 기간 동안 캐나다로의 비행기표, 숙박비, 어학원 등록비 등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단순 배움과 재미를 위해서 쉽게 떠날 수 있는 그녀의 태도와 자세가 멋있었다. 내가 엘쥬 나이였으면 편하게 여행만 다니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폭포를 함께 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그렇게 친해진 우리는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대화를 했다. 아침에 설레게 샀던 런치박스도 엘쥬와 공유하며 같이 먹었다. 엘쥬는 너무 고마워했고 나도 함께 먹으니 음식이 더 맛있었다. 엘쥬와 함께한 그 순간만큼은 나도 이곳에 친구가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되게 가볍고 든든해졌다. 이번 주는 여러모로 작고 큰 많은 도전을 했다. 비록 그 도전들이 귀찮음과 무서움을 동반했지만 가치 있었다고 확신한다. 엘쥬가 혼자 여행을 하는 우리를 보며 한마디 했다.


"혼자 여행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고 독립심이 필요한 일이야. 그래도 이로 인해 우리에게는 자유라는 큰 선물이 주어지는 건 참 기쁜 일이야, 그렇지?"


처음탄 버스의 내부, 엘쥬 그리고 몽모라시 폭포에서 본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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