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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로 떠난 벨라 Apr 20. 2022

유명 관광지는 피해 다니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들이여

사흘 , 기존에 있던 도시에서 티비에서 자주 보던 관광지 느낌이 나는 퀘벡 시티로 이사 왔다. (이사를 오며 탔던 택시 뒷좌석에 그만 떡볶이 팩이 터져버려 빨간 국물과 오뎅을 기사님의 운전석 뒷자리에 선물해드리는 당황스러운 일도 겪기도 했다. 당황해서 어쩔  몰라하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가도 된다고 너그럽게 이해주신 기사님께 이렇게나마 감사인사를 드린다) 그렇게 도착한 퀘벡 시티는 드라마와 너튜브에서 많이 보던 유럽 느낌의 건물들로 가득  있었다. SNS에서 많이  익숙한 건물들이 눈에 보여 한껏 들떴다. 오래간만에 일이 아닌 여행을 하면서 들떴는지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빨간색 문과 도깨비 호텔 안에 있는 우편함 앞에도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근데 신기한 건지 웃긴 건지 나를 포함한 한국인  나아가 가끔 중국인과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명도 내가 사진을 찍는 곳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보였다. 한국인이 생각하기에 유명하고  가봐야 하는 곳에는 정작 현지 사람들은 관심이 1 없었다. 물론 그들만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드라마 속에  거리가 나왔다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다른 관점으로 지금 현상을 바라봤다. " 나는 항상 유명한 사람이 소개해준 혹은 유명하다고 알려진 곳만 찾아가려고 할까?", " 나는 한국 유명 검색 포털에서 인플루언서들이 다녀간 곳을 위주로 그대로 따라다녀야만 후회 없는 여행을  느낌이 들까?".


참, 아이러니했다. 한국인이 사진 찍는 곳 앞에서는 심지어 지나가는 한국인도 "이 문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은 백퍼 한국인이고 한국인밖에 없어."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왜 정해진 곳만을 가려고 할까? 이 날부터 나는 무슨 마음인지는 몰라도 한국인이 SNS에 소개하는 일명 '꼭 가봐야 하는 곳'을 찾아다니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만 안전한 여행을 위해 오직 내가 갖고 있는 구글 맵 지도 하나에 의지해 누가 말해줘서 가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찾아보고 방문해서 느끼는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여행은 자유로 워보이지만 불편함이 따르고 때론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어제는 내가 사는 곳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보이는 언덕 위의 마을이 있어서 찾아가 봤다. 그곳에서는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흔한 가로등,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알록달록 색깔로 열거되어있는 집들과 조용한 동네를 산책하는 커다란 강아지와 현지 사람들이 있었다. 오히려 그 모습들이 너무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운 파리의 밤 같았다. 그래서 그런가 관광객들이 모르고 찾지 않는 곳이었기에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다니며 내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던 밤이었다.


현재 SNS에 올라와있는 꼭 가봐야 하는 곳은 오래전 나처럼 모험을 떠난 사람들로부터 알려진 곳은 아닐까? SNS의 확산으로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모험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은 아닐까? 젊은이들이여, 발전과 모험을 멈추지 말자. 세상과 언론이 말하는 대로 흘러가지 말고 저항해보자. 우리의 길은 우리가 만들고 정해진 길처럼 보이는 곳이더라도 새로운 곳이 있음을 믿고 직접 탐험해보자. 그렇게 더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곳과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어보자.


위처럼 깊은 사색을 하며 이 아름다운 도시를 혼자 하염없이 걷다 갑자기 문득 그리움을 느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친구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우연인지 운명인지 외국에서 여행을 하거나 취업을 해서 현지 생활을 할 때든 내 옆에는 항상 누군가 함께 했었다. 그렇게 난 어른이라는 이름표만 달았을 뿐 오랜 세월 동안 오로지 혼자였던 적 기간을 카운트해보면 3개월도 채 안될 것이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주어진 이 시간들은 선물 같아 보이지만 때론 생각보다 지루하고 두렵고 무서웠다. 스스로 해외 경험이 많다고 자부했지만, 외국에서 혼자였던 적은 거의 없었기에 실수 투성이었다. 처음에 이곳에 와 레스토랑에 혼자 들어가서 혼밥을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무서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철판을 깔고 지내니 며칠이 지난 지금은 당당하게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맛있게 먹고 불어로 존맛탱(C'est bon!)을 외치며 식당 밖을 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을 하면 할수록, 외국에 살면 살수록 소중한 사람들이 더 생각나고 그리움의 깊이는 더 깊어진다. 2년 전에는 말레이시아에 취직을 해서 1년 6개월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코로나가 처음 발발할 때 외국에 있었던지라 극도의 두려움이 생겼고 그렇게 1년 이상을 버티다 한국으로 귀국을 결심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다른 것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그리웠다. 산전수전 다 겪으니 조국이 그리웠고 뭐가 중헌데?라는 말이 찰떡같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이다. 나이가 들었는지 돈도 명예도 여행도 혼자 누려야만 한다면 겸허하게 No Thanks! (사양합니다)를 외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달까.  

오늘은 오그라들지만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참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밤이다.


구글맵에서 찾아낸 나만 아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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