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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로 떠난 벨라 Apr 18. 2022

안녕, 정들었던 솅-미셀-데-셍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건배!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린 이곳, 솅-미셀-데-셍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다. 어느새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어 열심히 돌아가고 있던 세탁기가 멈추고 주방에서 펄펄 끓고 있던 냄비에 불이 꺼지며 도시가 조용해지는 이제야 익숙해져버린 이곳에 벌써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힘든 일만 있었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고 매일이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이곳에 와서 캐나다라는 국가와 현지 사람들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도 더 많이 알게 된 여정이었다.


그리고 이 여정 속에서 만나 나의 세계를 더 넓혀준 감사했던 캐나다 현지 사람들을 잊지 못할 거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인 친구들이 몇 명 있다. 우선 첫 째로는 윌리엄이다. 이 친구는 23살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현재 내가 잠시 통역사로 일하는 공장으로 취직해서 일한 지 벌써 5년 차로 나보다 어리지만 경력이 많은 엔지니어다. 한 번은 윌리엄에게 질문했다. "윌리엄, 그러면 너는 대학교는 안 가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이곳에 취직한거네?" 그러자 윌리엄은 대답했다. "응, 내가 이 일을 하는데 대학교 학위가 필요하지는 않잖아?" 윌리엄의 당당함에 잠시 굳어버렸다. 맞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데에 학위가 필요 없다면 굳이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대학교에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윌리엄을 보면 가족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바로 셰프이자 나의 친오빠다. 오빠는 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합격했지만   학기만 다니고 자퇴를 선언했다.  당시에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오빠의 자퇴 결정이 얼마나  의미이고 용기가 필요한지  몰랐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이었기에 수능 공부로 남의 고통과 고민을 몸소 체감하고 걱정할 만큼의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야 자퇴가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지 깨닫고 오빠가 되게 멋있어 보였다. 셰프를 하는 데에는 학위필요 없는  맞았다. 요리는 앉아서 책으로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보고 먹어보고 세계를 다니며 연구해야 한다. 물론,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많은 학생들이 나중에  길로 가지 않아도 대학교 학위가 있으면 어떻게든 써먹겠지 하는 보험을 드는 마음으로 학위를 취득하는  아닐까?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오빠와 윌리엄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두 번째는 페비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페비는 이곳 공장(세계적으로 은근 어마어마한 회사) 대표의 친아들이다. 심지어 나는 이 사실을 이 공장에서 통역을 시작한 지 7일이 넘어서야 알게 되어 큰 충격이었다. 페비는 다른 일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복장과 태도 그리고 성실함을 갖추었다. 그 누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아마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귀여운 아기로만 봤을 거다. 어느 날 관리자급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페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빠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아마도 나중에 일을 물려받을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페비는 작업 반장인 대니의 말을 아주 잘 듣는 귀여운 친구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이 페비를 대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 그 누구도 수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없어서 놀랐다. 더불어 페비에게 억지로 친해지려고 하거나 조심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한 번은 공장 주변 철물점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그 안에서 일하는 부하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상사가 내가 한 영어를 잘 이해 못 하는 모습을 보더니 이 사람이 늙어서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나에게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 그 장난에 상사는 웃으며 부하직원에서 시원하게 가운데 손을 올렸고 상점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빵- 터져버렸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직장 내 풍경인가.(물론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리 친한 상사라고 해도 가운데 손가락을 들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날은 일을 하면서 갑자기 페비의 꿈이 궁금해져서 페비에게 나중에는 뭐가 되고 싶고 꿈이 뭐냐고 물어봤다. 이에 페비는 어려운 질문이라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생각 외의 답변을 해서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가능하면 나중에 결혼을 해서 큰 집에 대가족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게 내 꿈이야." 너무 소박했다. 내가 큰 회사의 딸이고 우리 아빠가 재벌이면 물욕부터 생겨서 갖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했을 텐데. 이미 모든 것을 가져서 그런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페비의 겉모습은 검소했다.


세 번째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여유롭게 일할 줄 아는 사람들을 잊지 못할 거 같다. 이곳에 와서 한국 회사에서 온 한국인들과 캐나다 현지 공장의 외국인들 사이에서 통역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통역을 요청할 때든 협상을 할 때든 현지 사람들은 서로 돕고자 하였고 협력이 문제 해결의 핵심임을 굳게 믿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하고 적절히 중간에 쉬어야 할 때를 알고 쉬며 무리하지 않게 일을 진행했다. 더 나아가 일을 하는 중간에 동료들과 함께 농담을 주고받으며 하루에 3-4번은 다 같이 빵 터지기도 하고 안부를 묻는 시간을 틈틈이 갖으며 일을 진행했다. 매번 긴장감 높은 통역을 하다가 지쳐버린 나를 발견할 때면, "벨라, 너가 있어줘서 정말로 우리 현지 회사는 고마워하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해.", "너가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있어", "너 진짜 잘하고 있는 거, 너도 알지?"라고 말해주는 이들에게 참 감사했다.


이제 다음 목적지를 향하기 위해, 이곳에서 느꼈던 감사한 마음과 고되었지만 가치 있던 시간과 기억은 아쉽지만 이 글을 발행함과 동시에 떠나보내고자 한다. 그러니 솅-미셀-데-셍, 너도 이제 내 작별 인사를 받아주기를.


나의 다음번 행선지는 관광의 도시이자 한국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퀘벡 도시다.


다가오는 새로운 모험을 위하여,

불어로 건배를 외친다.

S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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