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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로 떠난 벨라 Feb 12. 2024

좋아하는 일을 찾기까지 걸린 시간

10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준 교훈

한국에 태어나 자란다면 통상적으로 19살이면 처음으로 미래 나의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대학교 어느 학과에 가야 될지를 생각하며 거의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나한테 무엇이 잘 맞을지 생각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29살에서야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알게 되었다. 약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선택과 경험을 하고 직업을 거쳐왔는지 생각하고 나열해 봤다.


의류학·경영학 전공, 대학교 4학년 창업·해외취업·스타트업 마케팅 팀장·프리랜서·디지털 마케팅 컨설턴트·환경대학원 입학·NGO 과장·환경정책 담당자····,



굵직한 경험만 적었음에도 생각보다 많고 화려한 수식어들이 나의 20대를 장식했고 이 모든 것을 20대에 경험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생각해 보니 매번 도장 깨기를 하듯 멋들어져 보이는 일들을 하나씩 성취해 가는 나를 보며 주변에서는 멋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런 찬사는 마치 마약처럼 내 기분을 꾸준히 좋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고 있어 보이는 타이틀이나 직업 혹은 현재 유행과 산업 트렌드에 맞는 직군을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도'를 많이 해왔던 거 같다. 어떻게 보면 가벼웠기에 여러 경험과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후회는 없지만 드디어 찾은 좋아하는 일, 진정으로 성취하고 싶은 커리어 방향을 깨달으니 내심 조금 더 빠르게 찾았으면 좋았을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건 거짓말이다.


그래서 10년이나 걸려 찾은 좋아하는 일, 직업은 무엇인가? 바로 상담을 하는 일이다. 28살에 다니던 회사의 퇴사를 앞두고 있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정말 진지하게 ‘나에게 맞는 일’과 ‘적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당시에 다니던 회사는 의료 관련 비영리단체로 국제적으로 의료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의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단체의 사명으로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재직 중이던 당시에는 파키스탄 국가의 1/2이 잠길 정도의 대홍수가 발생해 관련하여 온라인 긴급모금 프로젝트를 담당했었고 이와 같이 많은 전례 없는 자연재해를 통해 집과 가족을 잃는 사람과 환자들을 간접적으로 그리고 때론 출장을 가서 직접적으로 많이 보게 되었고 그런 소식들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회사 밖은 참 평화로운데 회사에만 출근하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쟁과 재해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고 때론 지하철에서 출근하는 아침에 관련 기사를 접하면 ‘아, 오늘도 바쁘겠군’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다.


좋은 일을 하는 곳이었지만 나와의 긴 인연은 아니었는지 퇴사를 앞두며 문득 왜 이렇게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환경 관련된 문제였고 지구의 기온이 올라 지구가 아프기 때문에 마치 인간에게 신호를 보내듯이 세계 곳곳에서 이상현상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 MBTI가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 그런지 단순 사명감과 좋아하는 일을 착각해서 환경 관련된 쪽으로 무의식적으로 커리어와 이직의 방향성을 잡았다. 신기한 건 내가 능력이 좋은 건지 운이 좋은 건지 바로 환경 관련 제조회사에서 환경정책 업무를 담당하는 일로 이직했고 더불어 꽤 레인벨류가 높은 서울의 환경대학원에 입학했다. 이런 내가 자랑스러웠지만, 누가 힘든 일은 한 번에 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부터가 아마 3개월간 인생 최대의 괴로운 시간처럽 느껴진 힘들었던 시작의 시작이었다.


사명감과 내가 좋아하는 일과 업무는 엄연히 다른 것임을 대학원에서 종강을 목 마르게 기다리고 마치 살이 찢기듯한 느낌이 이런 느낌인 마냥 정신적 괴로움을 느끼며 깨달았다. 지금처럼 환경 관련된 업무를 계속하면 꽤 나름 괜찮은 대학원을 졸업하면 충분히 UN 같은 곳에 취직하여 남들에게 보여지기 멋있는 또 다른 자랑거리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엄청나게 괴로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순간 직감적으로 느꼈던 이런 상태는 지금 내가 나에게 보내는 SOS 신호였다. 이런 내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환경 분야에 오고 또 하나의 멋있는 업적을 만들 수 있음에도 왜 나는 괴로워하고 있을까? 단순히 대학원 공부가 처음이고 1학기 신입생이라 그런가? 전 직장이 그리운가? 모두 오답이었다.


답은 바로 내가 내면의 목소리를 또 듣지 않고 내가 아닌 ‘타인’, ‘세상’을 위한 결정을 내렸기에 본질적인 쾌를 내가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웠던거다. 주변 사람들은 지금 내 여건이 굉장히 좋은데 왜 괴로워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어했고 이런 나는 대학원 학기가 끝나고 나서야 전 직장을 퇴사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오, 이런, shit….’ 심지어 이미 부모님과 시댁 그리고 개인 SNS에 마치 사명감 있는 환경 운동가 마냥 멋들어지게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홍보까지 완료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뿐인 인생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원은 휴학했고 꿈 좇는 것처럼 당장의 생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환경 관련된 회사에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최근 지인 두 명을 소개해주어 잘 된 것을 보고 결혼정보회사에서 커플매니저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도 해보기도 했다. 심지어 결혼정보회사에 면접까지 보고 합격을 했고 직업에 귀천의식이 없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커리어와 노력에 비했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출근하지 않고 다시 한번 더 고민에 빠졌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과정에는 하나의 변수를 더 고려를 해야 하는데 이는 바로 남편, 즉 가족이었다. 심지어 남편은 직업군인으로 짧으면 2년마다 거처를 옮겨 다녀야 했다. 우리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이기도 했고 나는 남편이 가는 곳이라면 같이 가고 싶지 장거리 부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나에게는 적어도 전국 어디를 가든 일할 수 있는 특성의 일을 해야 하는 옵션이 내 머릿속 직업 의사결정 체계에 추가가 된 것이다. 그냥 직업 하나 얻기도 힘든데 전국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까지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건을 앎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믿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남편, 새언니, 시부모님, 엄마, 아빠, 친구들 등 모든 노력과 인맥을 동원해서 조언을 구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직업이 잘 어울릴 거 같은지를 물었고 동시에 나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지 꾸준히 수개월 동안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전 직장에서 친한 동료들의 하소연과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조언을 줄 때 그리고 그 조언이 도움이 되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회사 생활이 재밌고 내가 마치 쓸모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고 흐뭇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죽하면 회사에 출근해서 사람들 이야기 들어주는 시간이 가장 재밌을 정도로 말이다.


이와 같은 통찰과 함께 남편이 어느 날 저녁에 밥을 먹던 중 나처럼 직업에 대해 고뇌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며 ‘직업상담가’라는 직업은 어떤지 추천해 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직업이 있는지 몰랐고 예전에 한 번 이야기했을 때 거들 떠 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났다. 그만큼 관심이 없고 내가 살면서 직업을 상담해 주는 일을 하겠냐는 심정으로 흘겨들었던 거 같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으니 직업상담가라는 직업에 대해 정보를 찾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자 이 직업은 바로 나에게 구세주 같은 직업이었다! 직업상담가는 주로 공공기관이나 취업센터에서 일을 하는데 채용공고를 살펴보니 전국 어디서든 웬만한 곳에서는 직업상담가를 뽑았다.

이는 즉슨 남편이 전국 어디든 발령이 날 수 있는 직업이라 전국 어디서든 내가 노력만 하면 취업할 수 있는 점에서 이 직업에게 1차 합격을 주었다.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단점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직업상담가의 특징인 계약직이 다수인 부분도 나에게는 오히려 메리트로 다가왔다. 무조건 정규직만 뽑는 직업이라고 했다면 바로 1년 뒤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찾아오면 나의 커리어와 이력서는 1년마다 이직하는 안 좋은 성적을 갖게 될 텐데, 직업상담가라는 직업은 계약직이 많고 모두가 아는 당연한 사실이라는 점이 오히려 너무 고맙고 좋았다.


이 사실을 깨닫고 역시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상황에 따라, 사람 따라 받아들이는 점이 다름을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닫기도 했다. 더불어 나는 지금까지 지내온 여러 회사에서 모두 정규직 형태로만 고용이 되었음에도 계약직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았고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직업상담가라는 직업에 대해 찾으면 찾을수록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좋은 쪽으로 인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격과 가치관에도 잘 맞고 나름 성과를 내는 것도 좋아하고 적성면에 있어서도 취업률을 올리면서 인센티브도 때론 받아갈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더 나아가 직업은 생애여정이기도 해서 노년이 되어도 일을 구하는 분들이 있기에 평생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직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창업, 국내외 중소대기업 모두 취업을 해본 사람으로 경쟁력 있는 상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샘솟아 신났다.


최근에 ‘라이프코드’라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며 본질적인 쾌를 자극하는 일과 업을 찾으라고 말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는데 마치 이는 나의 본능을 자극하는 일과 일맥상통하여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이 채널의 주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그 자체만으로 나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찾았다면 그 일을 가장 빠르고 쉽게,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사실 깊게 생각해 보니 나는 ‘상담’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직업을 찾고 싶었지 꼭 굳이 직업상담가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의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내가 이번 연도 5월에 있을 정기 직업상담가 2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는 직업상담가가 되기 위해서는 직업상담가 시험에 통과하여 국가자격증이 나오면 이를 갖고 바로 취업을 해서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깊게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상담 쪽 업무는 임상심리 쪽이다. 임상심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임상심리 일반대학원 2년 과정을 졸업하고 최소 2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만 임상심리사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즉, 자격이 주어지는 것뿐이지 임상심리사라 말할 수는 없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정신의학 쪽이라 나중에 정신과에서 임상심리사로 일을 하기를 원하면 여기서 정신건강 임상심리사 자격증을 위한 3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모든 것을 원큐에 패스한다고 쳐도 최소 7년에서 8~9년 정도가 걸리는 길인셈이다.


그래도 임상심리 쪽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직업이라 한다면 그 직업을 위해 직업상담가가 되지 않고 그 길을 당장 오늘이라도 빨리 시작을 해야 하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할 말은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 꿈만큼 중요하고 사랑하는 가족도 내 삶의 일부이고 가족으로서의 공통의 목표도 있기에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지금 당장 이 직업과 꿈을 위해 달려갈 수는 없다.


더불어 임신과 우리 집 마련 등 앞으로의 3년 안에 이룰 가족의 목표도 고려해야만 했다. 나만 좋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려고 했다면 아마 20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다. 아니면 이런 결정을 내린 또 다른 이유로 어릴 때부터 밥을 먹을 때 가장 맛있는 음식이나 부위를 가장 마지막에 먹는 습성 때문에 내 무의식이 임상심리사라는 커리어의 길을 조금 뒤로 미룬 지도 모르겠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니 10대와 20대 모두 나와 동등한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보다 항상 2-3년을 앞서 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최선을 다 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늘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러한 성격의 내가 이제 진짜로 좋아하는 일과 나아가야 할 평생의 천직 같은 직업을 찾았음에도 느리게 걷는 나 자신을 보채지 않게 되었다. 왜냐? 나는 이제 빠르게 가든 느리게 가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사회와 주변이 정해주는 시간이 아닌 나만의 시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모험과 여행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주체성을 내 안에 굳게 다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의 여정을 책에 기록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 진솔되게 나누며 나아갈 거다. 오늘도 나는 내일이 기다려지는 이상하지만 행복한 사람이다.


최근에 김미경 작가의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는 책을 읽으며 20대 결혼 1년 차 애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결혼을 함과 동시에 나를 나의 부모님처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이라는 큰 목표를 이루어서 나에 대한 기대도 꿈도 꾸지 않고 1년을 살아갔던 암울 했지만 적장 알아차리지 못한 시기였다.


그렇게 결혼한 지 벌써 2년이 된 지금 김미경 작가의 책을 읽으며 결혼하기 전에는 꿈을 꾸는 ‘여자’였지만 이제는 꿈을 꾸는 젊은 ‘아내’로서도 멋지게 성공하는 모습을 남편에게 그리고 미래 자녀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한국에서 ‘아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모든 여성분들에게 외치고 싶다. “‘아내’라는 단어에 갇혀 ‘나’라는 존재를 잃지 말고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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