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휴식학개론
류머티즘 진단 이후로 철칙처럼 지키는 습관들이 몇 가지 있었다. 하루에 한 끼는 채식하기, 영양제 챙겨 먹기, 하루 6시간 이상 잠들기, 주 4회 걷기 등등.. 그중 하나가 건강한 물 챙겨 먹기였다. 해양심층수, 빙하수, 지리산 고로쇠 등등 국내 수입산 할 것 없이 좋은 물을 찾아 마셨다.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건강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내 자리 주변에 박스 채 쌓여있는 물을 보고 옆 팀 팀장님이 와서 말을 걸었다.
“몸이 많이 안 좋아?”
“비싼 물 먹으면 몸이 좋아져?”
비꼬는 말처럼 들렸다. 적당히 호응해주고 넘어가려는데,
“계속 피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어.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지. 계속 부딪히면 굳은살이 배겨서 괜찮아.” 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내 상황이 그랬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건 모조리 멀리했다. 좋아하던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몸에 피곤한 기미가 보이면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쉬었다. 아무리 바빠도 운동시간은 확보했고, 저녁 약속에 있을 때도 수면시간은 칼같이 사수했다. 간이 센 음식은 입에 대지 않았고, 세탁제, 주방세제, 치약까지 유기농으로 바꿨다. 류머티즘은 평생 지속되고, 악화되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예민하게 내 몸을 관리했다. 하지만 건강을 빌미로 이년 넘게 온실 안의 화초처럼 나를 돌보고 있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면서도 스스로 짜놓은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한 발짝 더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비단 건강 문제만이 아니었다. 내 삶 전체가 회피적이었다. 자기개발이라는 근사한 단어로 삶의 정답을 쫓고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지식으로 미래에 닥칠 위험을 제거하려고 했다.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지식은 채워도 채워도 풍성해지지 않았다. 지식은 하나의 틀과 규율과 편견이 되어 나를 속박했다.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저편에는 내가 모르는 문제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수십 종의 생수를 마셔본 후에 정착한 물을 나는 사랑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 물을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염증 수치가 내려간 것도 어느 정도는 물 덕분인 것 같았다. 심지어 물맛도 좋아서 다른 물은 못 마실 것 같았다. 물이 떨어지기 전에 새 박스를 주문했다. 어쩌다 며칠씩 집에 물이 떨어지거나 여행이라도 가는 날이면 그렇게 내가 마시던 물 생각이 났다. 이 물을 모르던 시절에는 다른 물을 마시고 불편함 없이 잘 살았는데, 어느덧 이 물이 아니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도 남은 평생 그 물만 마시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 없이는 안되는 삶이 아니라 그 물이 없으면 없는 대로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찾고 싶다. 지나가던 팀장님이 하고 싶었던 말은 문제를 대비하는 방법보다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법을 배우라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몸 상태가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 항상 완벽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보다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을 유지한 채로 하루하루 유연하게 살아가고 싶다. 건강하고 싶었던 이유는 편하게 잘 살고 싶어서다.
지금 있는 물을 다 마시면 이번엔 주문하지 않으려고 한다. 혹시 몸 상태가 다시 안 좋아지면, 그때 또 시키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