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채우는 법

4. 휴식학개론

by 지금

진실에도 총량이 있나 보다. 무언가가 널리 알려지면 아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지만,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각색되고 퇴색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은 진실이 아닐 때가 많다. 배움도, 관계도 그렇다.


너무 흔해서 당연해진 말들이 있다. “You are what you eat” 내가 좋아하는 문구다. 오랫동안 식품영양학 분야의 베스트셀러였던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구는 엄청난 진실을 내포하고 있지만, 다이어트 문구 정도로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


건강을 회복하면서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썼다. 나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것은 비우는 것만큼이나 신경 쓰였다. 특히 집중적으로 비운 후에 채우는 일은 더 중요했다.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주위에서 각종 보양식과 영양제를 추천받았다.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 부지런히 챙겨 먹었다. 잠깐 효과는 있었지만, 먹다가 중단하면 원상태로 돌아왔다. 몸은 저장소가 아니었다. 음식은 몸에 들어와서 잠시 머물 뿐이었다. 근사한 맛집이나 비싼 보양식을 한번 먹는 것보다 평소에 매 끼니를 잘 챙겨 먹는 것이 효과가 좋았다.


평소에 자주 사 먹는 편이었다. 바쁘기도 했고, 식재료를 사면 금방 상해서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 쉬는 동안 하루에 한 끼는 집에서 넣지 않고 자연식으로 먹었다. 원시 식단이라고 해서 공장을 거치지 않고, 조리를 최소화한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를 먹었다. 처음에는 식사 후에 포만감도 없고 입이 심심했지만, 먹은 후에 속이 편했다. 식사 후의 무기력함이나 식곤증이 사라졌다. 몸이 가벼웠다.


먹는 식단을 바꾸고, 이어서 음식을 먹는 방법도 바꿨다. 저녁을 일찍 먹고 하루 15시간은 공복을 유지했다. 급한 일에 쫓기듯이 먹거나, TV나 책을 보면서 무감각하게 음식을 입에 넣을 때가 많았는데, 식사할 때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와인처럼 음식을 음미했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느껴졌던 채소들도 고유의 식감이나 맛이 선명해졌다.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으면서 미각이 예민해져서, 재료의 상태가 예전보다 잘 느껴졌다. 먹고 나면 소화가 잘되는 건 덤이었다.


몸이 안 좋아진 후로, 그전과 다르게 감각이 예민해졌다. 특히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몸 상태가 즉각적으로 변했다. 몸이 섬세한 검사지 같았다. 입에 좋은 음식과 몸에 좋은 음식은 달랐다. 밥보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빵순이 었는데,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순간의 즐거움 후에 몇 시간 동안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쳐졌다. 몸이 섬세해질수록 미각보다 몸의 신호가 크게 다가왔다. 신선한 음식과 과일 채소를 많이 먹으면 몸이 가볍고 기분이 상쾌했다. 내가 먹는 것이 나였다. 단순히 몸뿐만이 아니라 기분, 심리상태도 그랬다.


누군가는 ‘하면 된다’고 했지만,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지하철에 탄 화난 어르신의 말투, 핸드폰으로 본 악플, 어느 골목에서 맡은 지독한 냄새, 공기 중의 미세먼지까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감을 통해서 정보는 꾸준히 입력되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의지로 조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입에 넣는 것은 나를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생각이나 컨디션을 다스리는 데 음식만큼 좋은 게 없었다. 하루 세끼 먹는 음식은 나를 원하는 것으로 채울 수 있는 세 번의 기회였다.


나는 아직 불완전하기에 끊임없이 주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소통한다. 평범함이 쌓이면 위대해지는 것은 음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루 한 끼는 나에게 좋은 음식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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