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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터스 Mar 10. 2021

아티스트 데이트

14. 코로나, 붕어빵, 그리고.

    





   

    마스크 안쪽으로 뜨거운 콧김이 훅훅 불어 재낀다.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벌써 아티스트 웨이 14주 차, 아티스트 데이트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오늘만큼은 뭐가 되었든 간에 마음껏 거창하고 화려하고 대단한 데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이건 안되고 저건 싫고 고르다 보니 결국 당일까지 할 일을 정하지 못했다. 구름 흐린 창문만 보고 섰다가 문득 붕어빵이 먹고 싶어서 아무렇게나 나서는 길이었다.


    녹았다 얼었다 몇 번을 반복한 눈덩이가 길 한쪽으로 굳어 있었다. 시커먼 기름때가 군데군데 묻은 것이, 며칠 전 소복소복 떨어지던 새하얀 눈송이가 저게 맞나 싶다. 콧잔등이 새까만 고양이 몇 마리가 담장 위에 올라 나를 내려다보았다. 날이 추우니 어디 군불 때는 데나 자동차 아래 기어들어갔다 검댕을 묻혀 온 모양이었다. 


    보이는 대로 아무렇게나 생각을 주워섬기며 걸어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집 근처에 붕어빵 파는 곳을 본 기억이 없다. 요 앞 상가에는 떡볶이 오뎅을 팔고, 길 건너 빌딩 앞 천막에는 계란빵만 판다. 예전에는 횡단보도 건너면 붕어빵 가게가 있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붕어빵 파는 곳이 안 보인다. 코로나 덕분에 길거리 음식들이 자취를 감춘 모양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길가에서 마스크 내리고 음식을 먹겠느냔 말이다. 그래도 찾아보면 근처에 한두 개는 남아 있을 텐데, 주소지 있는 점포면 스마트폰으로 지도 검색이라도 해 보지, 이거 뭐 길거리 천막집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동네 토박이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마는, 나는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무식하게 걷기 시작했다. 면도 안 튼 동네 주민들 붙잡고 붕어빵 파는 곳 물어보기가 쑥스럽기도 하거니와 요즈음은 더더욱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풍경이 옛날처럼 썩 아름답지가 않다. 


    서로 마주하고 입 벌릴 일을 안 만드는 게 미덕인 시대다. 그렇잖아도 닭고기 퍽퍽 살 같던 삶이 코로나 덕분에 씹어 넘기기도 어려울 정도로 텁텁해졌다. 엄마는 며칠 전 이웃에게 새로 바뀐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법을 물어보다 함부로 말 걸지 말라며 무안을 당했다 한다. 근무 시간에 마스크 잠깐 내리고 물 한 모금 마시던 간호사에게 민원이 들어오는 일도 있다고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만 해도 마스크 살짝 내리고 가는 사람을 보면 욕부터 하고 본다. 언감생심 큰 행운은 꿈도 꾸지 못해 사소한 데서 행복을 찾으며 살았는데, 그 소소한 행복도 요즈음은 영 확실하지가 않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과자 봉지 찢어놓고 마시던 맥주 맛이 참 좋았는데. 같은 맥주라도 집에 사 들고 와 잔에 따라 마시면 노상에서 먹던 그 맛이 안 난다. 좁은 회의실에서 책 한 권 놔두고 침 튀겨가며 독서 토론하던 때도 생각난다. 골방처럼 좁은 방이 답답하다고만 여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온기가 가득한 작은 방에 따스한 사람 냄새가 그득했던 듯하다. 

지금은 할 수 없는 소소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별 것 아닌 자잘한 일들인데도 그렇게 아쉽고 그리울 수가 없다. 작은 케이크 하나 시켜 여러 명이 둘러앉아서는 침 묻은 포크로 나눠 먹던 것도 그립다. 심지어는 커다란 전골냄비에 부대찌개 가득 끓여서 금방 빨았던 숟가락 서로 넣어가며 퍼먹던 기억까지 그립다. 

1년 남짓 전의 일인데도 아득한 옛 기억처럼 아련하고 아쉽다. 추억 보정이란 것이 이런 건가 싶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조차 코로나 이전 시대의 풍경이라면 그저 그립고 애처로운 마음이 뭉글뭉글 솟는 것이다. 



    몇 블록을 걷고 골목을 몇 번 돌아, 시장 근처에서 붕어빵 천막 하나를 찾았다. 기름 입힌 고소한 풀빵 냄새가 멀리서부터 여기 붕어빵이오, 하고 표시를 낸다. 철컥거리며 붕어빵 뒤집는 쇳소리마저 정겹다. 마분지에 매직으로 죽죽 써 놓은 메뉴를 초코 붕어빵이니 슈크림 붕어빵이니 하는 별 잡종들이 다 있다. 팥 붕어빵으로 달라고 했더니, 마침 팥이 다 떨어졌다고 한다. 단팥을 시켜놨으니 오후 느지막이 다시 오던가 아니면 다른 걸 사 가라길래 하릴없이 슈크림 천 원어치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고소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붕어빵은 사는 즉시 찬바람에 덜덜 떨며 먹는 것이 국룰이지만, 길거리에서 마크스를 벗고 쩝쩝대며 걸어갈 수 있는 시국이 아니다. 


    집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붕어빵이 다 식어 있었다. 바삭해야 할 빵 겉면이 죽은 붕어처럼 흐물흐물하다. 두 놈은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고 우선 하나만 덥석 베어 물었는데, 역시나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다. 슈크림 붕어빵도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커스터드 크림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차게 식혀 과일과 같이 먹는 것도 좋아하고 빵에 발라 먹는 것도 좋아하며 커스터드 크림이 듬뿍 들어간 슈는 없어서 못 먹는다. 생각해보면 와플에 슈크림 올린 것과 별 반 차이 없을 텐데도 자꾸 혀 끝이 아쉽다. 식어서 그런 것일까 붕어빵 하면 팥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것일까. 데워 놓은 슈크림 붕어빵 역시 영 맛이 아쉬워, 나머지 하나는 그냥 냉장고에 넣어 버렸다.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은 그저 코로나 이전의 추억인 모양이었다. 




                                                                                                                                          Written by. 남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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