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_상처는 숨긴다고 낫지 않는다.
엄마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육아서로...
제목 : 유진과 유진
작가 : 이금이
출판사 : 밤티
발행연도 : 2020.11.05
이 소설은 제가 엄마들에게 정말 많이 추천했던 책입니다. 제게 그 어떤 육아서보다 이 소설 한 권이 엄마의 역할을 깨닫는데 더 큰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목에서 보듯이 두 명의 유진이가 주인공이고, 같은 사건을 겪은 두 유진을 각기 다르게 키운 두 엄마도 등장합니다. 엄마의 역할로 아이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무겁게 절감했던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고 이금이 작가님 소설의 매력에 빠져 <너도 하늘 말나리야> , <소희의 방>, <알로하 나의 엄마들> 등의 작품도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유치원을 함께 다닌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이는 유치원 이후 헤어졌다가 중학교 2학년에 재회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두 아이는 유치원 시절 성폭력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런 엄청난 사건을 함께 겪은 사이인데,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을 전혀 모르는 척합니다. 잊었을 리 없는데, 큰 유진이는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가까이 지낸 어른이었던 유치원 원장에게 당한 끔찍한 사건. 그 끔찍한 사건을 겪은 두 아이는 매우 다르게 성장합니다. 큰 유진의 부모는 "그건 네 잘 못이 아니야" , "사랑해"라는 말로 유진이의 상처를 치료하며 함께 겪어냈습니다. 과하게 감싸 안지도, 상처를 외면하지도 않았고, 그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진흙탕 중에 하나를 밟은 듯이, 함께 겪어내주었습니다.
그에 비해, 작은 유진의 엄마는 아이의 기억을 지워버립니다. 유진이의 몸을 박박 문지르며, 이 이야기를 다시 입 밖으로 꺼내면 다 같이 죽는 거라며 아이를 아프게 합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작은 유진이는 기억을 잃어버린 겁니다. 부유한 시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결혼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던 유진이 엄마 아빠는 그 일이 비싼 유치원에 보내주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유진이를 지킬 수 있을 거라 믿던 유진이 아빠를 유진이 엄마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기억을 지우고 떠난 동네였던 겁니다. 작은 유진의 부모는 아이까지 낳은 어른이었으나,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미숙한 부모였습니다. 자신들 앞에 벌어진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 처리할 힘도 없는 나약한 어른이었습니다.
"처음 그 일을 기억해 냈을 때 괴롭긴 했지만 나도 큰 유진이처럼,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고 넘어갈 수 있었어. 그 일은 내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그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야. 왜 그랬는지 몰랐을 때는, 내가 무언가 그런 대우를 받을만한 짓을 했을 거라 생각했어. 내가 엄마를 새엄마라고 생각했던 거는 그래서 일거라고 믿고 싶어서였어. 그러지 않으면 엄마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었으니까. 그동안 새엄마가 그 정도 하는 거면 잘하는 거라고 나를 위안하면서 살아왔어."
도대체 왜 그 아픔이 있는 아이에게 그렇게 대했을까 읽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작은 유진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고,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아이에게 마음을 가까이하면, 아이가 그때 일을 기억하게 될까 봐, 그 말을 꺼낼까 무서워 작은 유진의 엄마는 그렇게 유진이에게 벽을 치고 살아왔던 겁니다. 그렇게 살아낸 엄마는 또 얼마나 살얼음 속에 살았을까요.
큰 유진이를 만나 상처는 덮는 게 아니라 치유하는 거라는 사실을 어렵게 깨닫게 된 작은 유진이는 그렇게나 아픈 말들을 엄마에게 쏟아냈고, 엄마는 유진이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했던 건 사실 너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였다고.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인정하고 살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너의 기억을 빼앗았다고 고백합니다.
"감추려고, 덮어두려고만 들지 말고 함께 상처를 치료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상처에 바람도 쐬어주고 햇볕도 쬐어 주었더라면 외할머니가 말한 나무의 옹이처럼 단단하게 아물었을 텐데.."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고 변한 아이의 눈빛에 맞아 정신을 못 차리던 때였습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는 아이에게 악다구니를 쳤고, 공부에서 멀어져 가는 듯한 아이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공들인 아이인데, 엄마가 된 후의 내 인생을 다 바쳤을 만큼 엄마표 교육에 목을 메어도 본 아이인데, 제 스스로가 무너지는 듯 힘겨웠습니다. 그때 만냐 이 책은 참 무거웠고, 정곡을 찔린 듯 아팠습니다.
‘내 그간의 노력은 누구를 위한 일이었을까.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이었을까. 나를 위한 일이었을까.’
한참을 헤매고 그건 나를 위한 일이었다고 힘겹게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쉽지 않았지만 서서히 아이와의 틈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 믿으며 끝까지 내 고집대로 밀어붙여 아이를 힘들게 하고 다그치며 키웠다면, 아마 아이와 저의 거리는 지금 같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누가 그렇게 해달라 했냐고 엄마를 원망하는 소리를 가슴에 품고 저에게서 멀어져 갔겠지요.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이처럼, 같은 일을 겪고도 부모의 태도로 아이의 삶에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르지 못한 마음의 탯줄로 한 몸처럼 살아가면 모두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한 일인지, 아이를 위한 일인지 멈추어 한 번 돌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사춘기 아이들도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또한 피하기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알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 뮤지컬로도 상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이 책을 바라볼 것입니다. 이금이 작가가 의도한 대로, 살아가다 만나는 상처와 아픔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덮어버리고 잊는 것이 상책이 아니라는 걸 알고, 좀 쓰라리더라도 햇볕과 바람의 도움을 받아 치료해 가는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우리 시대보다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은 맞지만, 마음은 더 빈곤하고 외로울지 모를 우리 아이들입니다.
많은 상처와 아픔을 알게 모르게 견뎌내고 있을 우리 아이들이, 베이고 찢긴 상처에 바람도 쐬어주고 햇볕도 쬐어 주면서, 유진이 외할머니가 말한 나무의 옹이처럼 단단하게 아물어 가기를 바라봅니다.
*확장 도서
<성폭력을 주제로 한 청소년 책>
-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 (베아테 테레자 하니케)
- 너를 위한 증언 (김중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