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의 독서만큼이나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엄마의 독서도 중요합니다. 저는 주변에 사춘기 아이와의 대립이나 마음의 독립,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고자 하는 40~50대분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가는 독서모임도 주관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흔들리면 대한민국이 위험합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그 수많은 사건 사고들. 그 사이에 나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어가는 우리 아이들. 아이들의 세상이자 기반인 엄마들이 바로서야 우리 아이들도 안전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만큼이나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지혜와 방법 또한 아이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래서 옆집 엄마가 아닌, 책 속에서 지혜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삶을 잘 살아갈 준비를 해야 우리의 노년과 더불어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 세대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가 사춘기 터널의 중간을 지날 때쯤, 삶이 참 버겁다 느껴지더군요. 그때 우연히 만났던 이 책이 너무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사춘기였던 큰 아이에게 별생각 없이 이 책 내용을 얘기했더니 아이도 읽어봤더군요. 엄마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않은 아이도 이 동구 엄마에게 감동을 받고, 동구의 성장에 충만함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
제목 ; 나의 아름다운 정원
지은이 : 심윤경
출판사 : 한겨레출판사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을 읽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동구 엄마의 삶의 어느 부분에서 나를 보았고, 내 주변에 많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그 사명. 그것 하나 말고 다른 건 잘 보이지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살기를 10여 년. 나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 어떤 것도 아닌 내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제 막 하기 시작했던 때 이 책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인물들 속에서 보이는 어떤 부분들에서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육아서보다 이런 소설에서 위로를 받게 되더군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엄마로 살아가는 내 삶만 애처로운 게 아니구나, 어쩌면 많이들 이렇게 엄마로 살아내고 있구나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삶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육아에도 정답이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엄마로 살아내는 이 삶에 대한 위로와 위안이 더 필요한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야이 기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서울의 한 달동네에 살고 있는 동구네 가족 이야기입니다. 동구는 한씨네 집안의 4대 독자이나, 10살이 다 되도록 글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바보 천지 취급을 받는 아이입니다. 집안의 걱정거리로 할머니에게 이름보다 '이 새끼'로 불리며 고단한 삶을 살고 가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반면에 6살 터울로 태어난 여동생은 3살 무렵부터 글을 읽어내는 기염을 토하며, 동네에서 유명한 영재로 통합니다. 미워하고 질투할 만도 한데, 동구는 그런 동생 영주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 어린 영주는 글만 잘 읽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줄 모르는 동구네 4명의 가족 사이로 선물처럼 찾아와 그 모래알같이 서걱거리는 사이를 한데 뭉쳐주는 역할을 해내는 보석 같은 아이였습니다. 동구는 비록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구박받는 아이이지만, 그 동생을 업고 안고 다니며 자신의 자랑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동구에게는 선생님이자 정신적인 지주 같던 박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동구의 난독증을 마음 다해 치료하도록 도와주었던 박 선생님은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느라 동구의 곁을 떠나 버립니다. 그리고 동구에게 보석처럼 빛나던 존재인 동생 영주도 허망하게 떠나버립니다. 어른들의 싸우는 소리를 피해 마당에 함께 섰던 그 감나무 앞. 감을 따보고 싶어 하는 영주를 위해 동구가 태워주었던 무등. 그것이 영주의 마지막 모습일 줄을 누가 알았을까요.
그 시대의 시어머니가 다 이런 모습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정도 며느리들의 고달픈 삶은 이렇게 되풀이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을 알뜰살뜰, 깔끔하게 해내는 며느리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대며, 아들과 며느리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하며, 아들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는 독하고 밉상인 시어머니. 동구 할머니는 그런 시어머니였습니다. 이런 큰 사건 앞에 누구보다 가슴이 무너지고 제정신이 아닐 며느리에게 자식을 앞세우고 자식 잡아먹는 년이 목구멍으로 국물이 넘어가냐며, 치료되지 않을 생채기를 내며 폭력까지 휘두릅니다.
“에이, 더러운 년, 에이, 재수 없는 년, 재수 옴 붙은 년, 니년 때문에 우리 영주가 그렇게 된 걸 생각하면 니년을 찢어발겨도 성이 안 풀린다! “
동구 엄마는 허깨비처럼 허우적거리며 눈이 하얗게 덮인 장독대로 달려가 고추장독 하나를 번쩍 들고 와 할머니 바로 앞의 방바닥을 향해 모질게 패대기쳤습니다. 짐승과 같은 괴성과 함께 허공에 헛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대던 엄마는 찬바람 속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것이 정당하지 않음을 몰랐던 건지, 아니면 효도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어머니의 악다구니에 부인에게 손찌검과 욕지거리를 해대며 사과나 강요하던 동구 아버지였습니다. 동구의 눈에 그런 아버지가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던 날이 동생 영주가 떠나던 그 벽제에서의 날이었습니다.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의 일부가 그대로 녹아 물이 되어 흘러나오는 것처럼 울던 그날의 아버지.
영주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감나무를 처벌하고, 영주를 데려간 또 다른 주범인 장독대의 계단을 망치로 때려 부수는 것으로도 슬픔을 이겨낼 수 없어 매일 술로 버티던 아버지. 어머니까지 그렇게 정신병원에 누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위기에서 아버지는 동구에게 이야기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이 난국을 이겨내 가보자고, 다시 살아낼 방법을 찾아내 보자고.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강조하며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부인에게도 그런 식을 위로를 했을 것이고, 동구 엄마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엄마에게 봄날 약수터에서 처음 만난 노랑나비처럼 가볍던 영주의 발걸음을, 숲 속 어느 나무 아래 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같이 청량하던 웃음을, 비가 많이 온 여름날 인왕산의 물소리같이 풍성하던 그 아이의 재능을 이야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엄마는 울었을 것이고, 그 아이가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떠올렸을 것이고, 그 아이가 엄마와 아버지의 인생에 가장 멋진 성공작이었음을 이야기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엄마는 문득 아버지의 얼굴에서 영주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를 끌어안았을 텐데..
이것이 동구가 생각하고, 엄마가 바랬던 위로고 위안이었을 텐데, 아버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말이 가족 누구에게도 먹히지 않아 자신이 중심에서 밀려날 것을 걱정했습니다. 받아본 적이 없는 공감을, 위로를 배워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도저히 해체되어 뿔뿔이 살아가는 것 밖에는 답이 없을 거 같은 이 가족을 구원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어린 동구였습니다. 동구 엄마의 친정에서는 광인이 되어 허깨비처럼 살아가는 딸을 그 시어머니와는 한집에 살도록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동구는 매일 엄마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집안의 구석구석에 걸레질을 해가며 간절히 '박 선생님이 곁에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박 선생님은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하는 일을 생각해 내고, 누구도 짚어내지 못한 것을 짚어내어,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모두가 유쾌하게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존재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정말 박 선생님이 꿈에라도 나타난 것인지, 동구의 간절한 고민이 스스로에게 답을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구는 그 해답을 찾아냅니다.
바로 할머니에게 희망을 찾아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약한 시어머니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겠구나,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동구의 엄마였다면, 동구였다면,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 같은데 동구는 그 ‘이해’로 해답을 찾아냅니다. 그토록 며느리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일만 하고 살아가는 그 시어머니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희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희망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는 할머니에게 희망을 찾아준다면 할머니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저 화가 똬리를 스르륵 풀고 세상에 대고 외쳐대는 악다구니를 줄이지는 않을까. 아무 의욕 없는 할머니가 흙을 만질 때 살아있는 듯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동구는 알아차렸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동구는 나와 함께, 윗집 사는 동향 동생 모실 할머니와 함께 고향에 내려가 살자고 말합니다. 그것이 할머니의 희망일 줄이야. 그 희망으로 할머니 안에 독하게 똬리를 틀고 가시처럼 남을 공격해 대던 그 화가 힘을 잃었는지 할머니는 엄마가 돌아오면 그토록 아끼던 닭을 삶아 다 같이 몸보신이나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꽃 피는 봄이 오면, 동구와 할머니는 모실 할머니와 함께 고향인 노루 너머로 내려가 농사일을 시작하고, 외갓집에 요양 중인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비운 사이 엉망이 된 집안 구석구석을 손보고, 아버지는 부부가 된 이후 처음으로 어머니 없이 오롯이 자신의 시선으로 부인의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바라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동구는 상처로 훅 커버린 그 어린 가슴으로 할머니와 아버지와 엄마의 마음을 구석구석 돌볼 것입니다. 지혜가 필요한 순간순간 가슴속에 박 선생님을 소환해 지혜를 구할 것이고, 온정이 필요한 순간순간 애처롭도록 사랑스러웠던 동생 영주를 소환해 가슴을 데우고 그 가슴으로 온기를 전하며 그렇게 동구가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라며 책을 덮게 되었습니다.
이 동구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살아내는 동구 엄마, 동구 아빠, 동구 할머니, 동구. 모든 인물의 모습들에서 나의 모습을 엿보기도 하고, 내 가족의 모습을 보기도 하며 그들과 함께 소리치고 함께 울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엄마로 살아가는 날들 중에 고된 날이 많잖아요, 어떻게 살지 싶은데도 자식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동구엄마처럼 꾹꾹 눌러살아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주변 상황들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날도 있지요. 깨부수어 버릴 장독이 없길 망정이지, 그릇이라도 집어던져 부숴버리고 싶은 날이 있지요. 다 놓고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은 날들도 있지만 내가 무너지면 내 아이들의 세상이 끝나버릴 것 같은 무거운 책임감을 꽁꽁 끌어안고 그 힘으로 견디는 날도 있지요.
<응답하라 1988>에 어른이 된 덕선이의 독백이 이런 독백이 있었습니다.
”엄마에게는 최소한의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지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건 자기 자신보다 더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정작 사람이 강해지는 건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라 자존심마저 던져버렸을 때다. 그래서 엄마는 힘이 세다. “
남편 잃고 혼자 살아가는 ‘선영’은 전화기를 붙들고 엄마를 부르며 웁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는 나의 수호신이며, 여전히 엄마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 에는 이름이다. 엄마는 여전히 힘이 세다 “
엄마로 살아가는 날들, 그날들이 가끔 너무 버거워 먼지처럼 사라졌으면 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사춘기아이는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닌 듯이 변해버리고, 그간의 내가 잘못 살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우리는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보낸, 내 아이들을 지켜내야 하는 대리자이지만, 그 무게가 너무 무거운 날은 가끔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껴보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나를 억눌러 부서질 것 같은 책임감에 너무 힘겨워하지는 말자. 나도, 내 가족도 모두 세상 살아낼 힘 정도 가지고 태어나 살아가고 있을 테니 나도 좀 돌보며 살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엄마의 모습을 세심하고 절절하게 풀어놓은 가족의 이야기 안에서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