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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Oct 26. 2024

토지_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

'나의 삶은 토지를 읽기 전후로 나뉜다'

제목: 토지

작가: 박경리

출판사 : 다산책방



좀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나의 삶은 토지를 읽기 전후로 나뉜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바로 박경리 님의 토지입니다. 20권이라는 그 중압감에 저도 여러 번 망설이다 집어든 책이었습니다.


유시민 의 책에서 글을 잘 쓰고 싶으면 ‘토지’를 꼭 읽어라!라는 문구를 보고 드디어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을 때 같이 토지를 읽고 있는 지인을 알게 되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까지도 읽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사춘기 자녀와 고군분투하는 여러분의 40대는 어떠신가요? 스캇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책의 첫 문장도 '삶은 고해다'입니다. 인생과 고통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는 중에 고통도, 행복도 그저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것뿐이라고, 그게 인생이라고요. 그전까지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나에 대해 그렇게 모르고 살 수도 있었던 건가 싶게 마흔부터의 삶은 매일 깨달음의 연속입니다. 그게 꼭 좋은 것인지는 고통의 날들을 보내며 자주 생각하고는 있지만, 마땅히 지나가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고전도 젊어서 읽을 때는 잘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명품 소설을 읽었다는 지적 충만감 이외에 무엇을 느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흔부터 읽는 고전은 정말 달랐습니다. 그 안에 이렇게 가슴 절절한 인생들이 들어있을 줄, 그 안에 이렇게 뼈를 때리는 진리가 숨어 있을 줄 몰랐습니다. 고전 중에 고전이 바로 이 ‘토지’입니다.



1권 완독은 사실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도 1권만 4번 정도를 반복해 읽었습니다. 처음엔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힘들었고, 두 번째는 나오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섞이기 시작하면서 힘들더군요. 그래서 메모지에 인물을 그려보면서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읽으니 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읽을 만 해 졌습니다. 세 번째쯤 되어서야 드디어 완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진도가 나가더군요. 뒷 이야기가 궁금해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토지 읽기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후반부로 가면 기존의 인물들이 다 늙고, 죽어가고, 새 시대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좋으니 꼭 토지를 시작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러면 또 첫걸음을 떼시기가 수월하실까 싶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토지에는 최 씨 집안에 유일하게 남게 되는 최서희를 중심으로 정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누구 하나의 삶도 허투루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악인도, 절대 선인도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에게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만의 사연이 있습니다. 백 명이면 백 명 모두 그렇게 저마다의 사연을 끌어안고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냅니다. 대하소설이기에 담을 수 있는 모든 인물들의 삶이지 않을까요.



살인 죄인 김평산의 아들로 살아간 두 아이, 거복이와 한복이의 모습이 상반되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같은 처지였으나 가지고 태어난 천성이 달랐을 것이고, 부모의 모습을 같이 보고 자랐어도 둘 중 누구의 모습을 더 많이 습득했느냐고 달랐을 것이고, 만나진 인연들이 또 달랐을 것입니다. 거복이가 만나진 인연 중에 누구 하나라도 거복이를 보듬어 주었더라면 그의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는 내내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한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을 보며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저렇게 사는 삶도 있는 거지, 저런 모습의 사랑이란 것도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가슴앓이 한 용이가 가엽고, 그렇게 밖에 못 살고 일찍 세상을 떠난 월선이가 가엽고, 또 용이 옆에서 시리게 살아낸 강청댁도, 죽는 날까지 한결같이 자신만을 위해 살다 간 임이네도 모두가 가여운 삶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아픔을 가진 엄마가 평생 곁을 내어주지 않아, 차디차게 성장해 버린 최치수며,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한 윤 씨 부인이며, 윤 씨 부인이 거두지 못한 자식 환이와 함께 떠나버린 별당 아씨까지. 그런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난 최서희. 아프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그 수많은 고통들을 감내해 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의 나의 오만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이해받지 못할 삶이라는 게 있기는 할 건가. 삶에 정답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어떤 정답을 내 안에 정해놓고 그것에서 한 발이라도 벗어날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걸까 생각했습니다. 생각의 틀이 깨어지는 순간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앞서 얘기했듯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들을 하나씩 마주할 때마다 괴롭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또다시 살포시 덮어버리고 다시 테두리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고 싶던 날도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것이 편할 텐데 나는 무엇을 위해 자꾸만 나를 채직질 하며 달려 나가는 걸까.


어떤 삶도 정답은 아니라고 믿는 것은, 내 삶의 확고한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줏대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가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틀 안에 갇혀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엄마들 시대의 40대와는 전혀 다른 40대를 살아가는 우리이며, 우리는 아직 평균 수명의 반도 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들은 하지 않고 살았어도 될 이 과정을 우리는 꼭 거쳐야 합니다.



함께 독서모임에서 토지를 이끌어 주시는 분은 이보다 좋은 육아서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또한 깊이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최치수의 살인에 가담한 김평산과 칠성이 있습니다. 귀녀와 함께 살인죄로 처형을 당하게 된 두 사내의 부인들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김평산의 아내 함안댁은 살인 죄인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이 도저히 자신이 없었는지 거무죽죽하게 썩어가는 나무에 목을 매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두 아들 거복이와 한복이. 그 두 아이는 아주 다르게 성장합니다. 이 두 아이의 삶에 대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부모 아래 태어났어도 가지고 태어난 색깔이 물론 달랐을 것이고, 동생 한복이에게는 품어주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친척 집에 맡겨진 두 형제 중에 한복이는 어머니가 그리워 그 먼 길을 자꾸만 자꾸만 걸어서 왔습니다. 그런 한복이 가 가여워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한복이를 보듬었습니다. 그리고 한복이는 착하고 성실한 어른으로 성장했습니다. 반면에 누구 하나 곁을 주지 않았던 형 거복이는 악인 중에 악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칠성이의 아내 임이네는 또 함안댁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세 아이를 놓지는 않았습니다. 옳은 방법이든 아니든 어미로 세 아이 옆에 꿋꿋이 버텨냅니다. 자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삶이라고 보이는 어렵지만, 죽는 그날까지 자신의 목숨 하나를 끈질기고 독하게 살아냅니다.



 두 어미의 모습이 다르게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지도 상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세상이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모두가 주인공이며, 모두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결론짓기보다는 그저 죽고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마음속의 이야기를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박경리 님의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의 커다란 한 세상을 읽고 나면, 내 삶을  조금 멀리서 바라봐지는 경험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사춘기 열병을 앓고 있는 내 아이의 모습도 조금은 한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부터의 삶이 진짜구나. 지금의 하루하루가 쌓여 노후에 어떤 삶을 살며 삶을 마무리할지가 결정되겠구나. 청년시기의 선택들은 남은 긴 인생에서 수정도하고 보완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선택들은 되돌리기 힘들지도 모를 선택들이겠구나. '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토지>가 좋은 거름이 되어주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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