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음 Oct 07. 2020

ADHD, 경계선 지능 장애, 우울증

인생에게 3종 선물 세트를 받다


“검사 결과 정지음 님은 ADHD가 맞습니다. 정확히는 주의력 결핍 우세형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땐 뭐랄까 생각보다 충격적이지 않았다. 역시는 역시다.......라고 겸허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ADHD 거나 아니거나. 확률이 50:50인 상황이라면 인생은 대개 나에게 나쁜 쪽을 줬다. 나는 절망을 인내하는 덴 약해도 절망이 내게 노크해오는 순간에 익숙했다. 그런 나를 대혼돈에 빠트린 건 의외로 <웩슬러 지능 검사> 쪽이었다.


나는 본래 욕만큼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다. 멍청한 듯 똑똑하고 허술한 듯 꼼꼼하고, 둔감한 듯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대칭점은 나라는 인간을 예측불가능으로 만들었다. 혼란해도 누군가에겐 큰 매력이 되는 특징이었다. 스스로도 몰개성보다는 뭐라도 반짝이는 게 좋겠거니 위안을 삼았었다.


학습능력도 극과 극이었는데, 시험을 보면 국어나 사회과목은 90-100점, 나머지는 전멸이었다. 특히 수학 점수는 0에 수렴했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지만 따로 잘하는 분야가 특출났기 때문에 수리영역 9등급이 나왔을 때도 타격감은 없었다. 언어와 사탐은 무리 없이 1-2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표 속의 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으니 점수가 좋을 리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도 나의 검사 결과가 다소 비정상적이라고 했다.


“여기 보시면 4가지 영역이 있어요. 언어이해, 지각 조직, 주의집중, 처리속도인데요. 보통 네 가지 지표가 비슷하게 나오는데 정지음 님은 두 가지가 평균을 너무 웃돌고, 두 가지는 너무 떨어져요.”


“.......”


“떨어지는 수치들은 경계선 지능 장애 수준이에요. 아이큐는 높은 편이지만 능력 간 편차가 이렇게까지 크면 뛰어난 능력도 발휘되기 힘들어요. 떨어지는 집중력이 나머지 요소들의 발목을 잡는 거예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정리하면 언어나 추론면에선 뛰어난데 작업기억이나 처리 속도가 떨어진다는 거였다. 개중에서도 ‘경계선 지능 장애 수준’이라는 말이 내게 몹시 큰 충격을 주었다. 내가 덜덜 떨며 삐걱거리자 “우리 학교다닐 때 보면 특수학급 친구들 있잖아요. 그런 수준이에요.”라는 소견이 따라 왔다.


어리석게도 나는......내가 천재는 아닐지언정 범재는 되는지 알았다. 다소 얼렁뚱땅에 멍한 구석이 있고, 꼼꼼하지 못하고 말은 톡톡 쏘지만 그게 모조리 ‘성격’ 특성인 줄 알았다. 내 모든 문제가 질환이자 지능 특성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상상하던 일이 현실이 되면 그러려니 하지만, 상상에도 없던 현실이 닥치면 입도 닥치게 된다. 나는 너무 슬퍼서 터진 생수병처럼 눈물만 짜냈다. 내 자존감은 완전히 젖어 곰팡이 투성이가 되었고, 눅눅한 마음에선 우울한 냄새가 났다.


심지어 자율신경계 검사에서조차 편차가 크다고 했다. 나란 인간은 조화로운 구석이 하나도 없고 들쭉날쭉하기 짝이 없었다. 내 몸과 머리는, 나 하나 건사하면 되는 주제에 왜 그리 협력을 못하는지, 왜 내적 능지처참을 벌이고 있는지 참담해졌다. 스트레스 지수도 인지하던 것보다 높았고 몰랐던 우울증까지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경계선 지능 장애’라는 워딩을 이기지 못했다.


경계선 지능 장애란, 지적 장애와 일반인 경계선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얘기였다. 더 솔직히 털어놔 볼까. 사는 내내 스스로가 약간 요령 있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만큼 노력하지 않아도 평균 언저리는 웃도는 타고난 게으름뱅이 말이다. 하지만 웩슬러가 적발해낸 내 본질은 남들만큼 노력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이고, 평균 언저리도 아니며, 단순히 게으른 게 문제가 아닌 멍충이 바보였다.


이때부터 ‘비정상’이라는 단어에 예민해지고 노이로제가 생겼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콘서타나 스트라테라가 필요해 마지않다고 생각했다. 저번에 아무 생각 없이 달라했던 ADHD약이 생명수처럼 처방됐다. 우울증에 편견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우울증 약까지 바리바리 타고 보니 내가 진실로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지음 님의 치료 목표는 남들보다 뛰어나지는 게 아니라, 딱 남들 만큼만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 말은 너무 잔인해서 차라리 날 죽이라고 하고 싶었다. 날고 기어봐야 고작 평균이라면 날거나 기려는 시도 또한 무의미했다. 터지려는 약봉투를 볼 때마다 내 처지에 대한 비관과 모순되는 안정감이 동시에 들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비관이 8 안정감이 2였다. 약을 삼키면 잠깐 안정되었으나 그 4배의 시간을 괴로워해야 다시 약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자주 나 자신을 비하하고, 동정하고 편들어주다가 또 비약에 빠져 들었다. 자신감과 기능감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가 사람들이 쉽사리 알아챌 수 없는 종류의 불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누군가 “너 이상해.”, “넌 특이하다.”,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해?”라며 호기심을 보일 때면 ‘아니 난 사람들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불구다.’ 따위의 비관이 들었다.


내가 ADHD라는 사실을 털어놓으면 지인들은 십중팔구 그까짓 게 뭐 어떻냐는 위로를 건넸다. 너는 착하고, 너는 웃기고, 너는 뭐도 잘하고, 이것도 저것도....... 모자이크 같은 위로를 덕지덕지 붙여 주었다. 그 마음은 고마웠으나 경계선 인간이 되어버린 내겐 멀었다. 쑤셔놓은 벌통 같은 상태여서 꿀 같은 덕담을 축적할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때, 너무 힘든 사람에게는 힘들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배웠다. 그럼 어떻게 해줘야 하냐고? 모른다. 죽어서 갈 지옥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는지 몰라도 사람이 자기 안에 스스로 만든 지옥은 겉에서 가늠조차 할 수 없다.


ADHD 진단 후 갑자기 외계인이 된 듯한 느낌, 성격적 개성이라 착각했던 것들이 오로지 병적 징후 들일뿐이었다는 이물감에 오래 괴로워했다. 괴로움과 외로움은 너무 닮아있어서 자음 한 개 차이로 구분된다. 진단 직후엔 우울증도 심해졌다. 내 생각에 우울증이란 액체적 징후 같다. 녹아버린 내 심장이 빗물이 되어 내리는 현상이 24시간, 일주일, 365일 기약 없이 지속되는 일이다. 망망대해에 우유팩 뗏목 하나 띄우고 올라탄 기분. 나는 그 기분을 떨치려고 자꾸 타락했다. 통제 불가능한 악재보단 스스로 둔 자충수에 당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매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전 03화 정신과는 마법 상점이 아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