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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Oct 07. 2020

정신과는 마법 상점이 아니었다

정신과 첫 방문과 ADHD 검사

ADHD 자가진단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나를 정신과로 이끈 건 의외로 흡연 문제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담배를 폈는데, 일단 시작하자 그 어느 순간에도 담배를 끊을 수 없었다. 나는 중독 성향을 경계한다. 동시에 중독을 경계하면서 중독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흡연으로 인해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자 담배 따위에 쪽도 못쓰는 내 인생이 구려 보였다.


돌이켜 보면 흡연 자체보단, “담배를 끊느니 널 끊겠다”라고 땡깡을 부린 게 나빴다. 그러나 뭐가 문제든 그는 갔고 나는 재떨이 같은 기분으로 혼자 남았다. 내 계획은 남자와도 담배와도 멋지게 이별해 모든 걸 털어버리는 것이었으나 엿 같은 흡연 욕구를 몇 시간도 참아낼 수 없었다.


결심할수록 실패하는 삶 때문에 결국 정신과를 찾았다.


가면서도 정신과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인지 잘 몰랐다(궁금하지도 않았다). 방문 자체가 충동적이었고 내 안의 정신과 이미지도 부정확으로 얼룩져 있었다. 난 그곳을 대충 ‘음울한 사람들의 마법 상점’ 정도로 여겼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일단 믿기로 하면 비타민이든 홍삼 캔디든 약이라고 쥐어주는 곳 말이다.


오래된 일이라 모호하지만, 첫 방문에선 금연약을 달라고 했던 것 같다. ADHD 얘기도 하긴 했다. 거의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내 상태를 a4용지에 써서 선생님한테 주었다. (난 이야기보따리이자 고장 난 라디오지만 말에 두서가 없어 글이 나은 편이다. 물론 글에도 두서는 없다)


“제가 ‘그거’라서 담배 끊기 어려운 건가요?”


묻기 위해서였다. 그때 ADHD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너무 ADHD여서 금연 실패가 구조적 문제지 노력의 문제가 아니란 근거를 얻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담배를 못 끊는 이유는 궁금했고, 삶을 통틀어 내가 ‘매번 왜 이러는 건지’도 궁금했다.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님은 담배를 끊는 것보다 ADHD 쪽이 훨씬 문제 같다고 했다. 자세한 건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거의 확실해 보인다는 비관적 진단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금연약 따윈 없다고 못 박았다. 굳이 찾자면 비슷한 뭐시기가 있긴 한데, 그것도 다른 용도로 쓰이는 약의 부작용을 유도해 작용으로 삼을 뿐 해결책은 못 된다는 거였다.


나는 금연약이 아니면 ADHD약이라도 달라고 말했다. 구걸 같은 강탈, 강탈 같은 구걸이었다. 공기처럼 당연해서 문제의식이 없었지만 약물 의존도 심했다. 난 영양제도 많이 먹고 깃털 같은 두통만 있어도 진통제를 쓸어 먹는다. 고통이 싫다. 안식은 좋다. 어차피 진실로 두려운 건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에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이 아닌가. 여하튼 그때는 정신과에서 빈 손으로 귀가하는 게 오히려 정상인의 세계에서 추방당하는 일 같아서 무서웠다. 난 21호 웜톤인데 그때만큼은 13호 쿨톤이 되어버린 듯 창백해졌다.


“ADHD의 경우 정식 검사 진행 후 확진을 받아야만 처방이 가능합니다. 그냥 줄 순 없어요. 이 약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 되기도 하는데 ADHD 아닌 사람이 먹으면 심각한 부작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검사비와 약 값도 만만치 않아서 잘 생각해보셔야 해요. 비보험이고 질병 코드가......어쩌구저쩌구.”


* (법이 개정되어 지금은 의료보험 적용, 약값이 비교적 저렴해짐)


나는 마법 상점 주인의 말 대신 ‘엄청 똑똑한 의사도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구나. 그런데 책이 많네. 다 읽은 건가? 하나 빌려가고 싶지만 안 친해서 말을 못 하겠네’ 라는 잡생각으로 머리통을 채웠다.


나는 가끔 진짜 슬픈데도 잡생각을 한다는 것 때문에 내 슬픔의 진위를 의심하게 된다. 지금은 슬픔과 잡생각의 MC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멀티플 진행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땐 병신 같음에 마음껏 취하지도 못하는 부분이 진짜 본 투 비 병신 같다고 자학을 퍼부었다.


일단 검사도 당장은 불가능해서, 예약 후 일주일 뒤엔가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또한 오래되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기억이 난다 한들 내용은 자세히 쓰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이 글을 보고 검사를 결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스포에 유출되는 자체로 결괏값이 오염될 테니 말이다. 내 경우는 뇌파 측정도 하고, 지능 검사와 우울증 검사, ADHD 검사 등등을 진행했다.

 

지금도 가끔 하는 자율신경계 검사의 경우, 머리에 금속 띠를 두르고 팔다리에도 뭔 집게 같은 걸 매단 채 앞만 보고 버텨야 해서 힘들다. 내 생각에 폰도 없이 앞만 보게 하는 건 디지털 체벌과 같다. 돈 주고 이런 형벌을 받는다니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검사가 끝난다.


나는 정말이지 내 실존의 이유, 내면의 내면의 내면의 나, 그래서 내가 똑똑한지 멍청한지 궁금했다. 하지만 검사들을 진행하는 내내 한 생각이라곤 지루해 돌아가실 것 같으니 빨리 집에 보내달란 것뿐이었다. 검사들은 너무 길었고, 너무 진지했고, 너무 종류가 많았다. 어떤 건 쓰는 게 아니라 즉답을 해야 해서 더 불안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검사날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ADHD란 키워드에도 흥미가 팍삭 식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혼자 땅굴을 파느라 지쳐서 검사자가 응당 가져야 할 활력과 관심이 방문일 전에 소진된 것이다. 게다가 정신과 자체가 묘하게 기빨리고 신경이 곤두서는 곳도 맞아서, 나는 급기야 물기가 버썩 마른 밀대 걸레 같은 상태로 검사를 끝마치게 되었다.


결과는 또다시 일주일 후에나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나올지 불안했지만, 모르는 불안감이 아는 불안보다 낫다는 걸 그땐 몰랐다. 때로 뭔가를 모른다는 건 아직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일주일 후, 나는 내 본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발 밑이 무너져내리는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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