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것 처럼 보여도 안 망한 인생
ADHD 진단 후 내 인생은 망한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망한 걸 빨리 깨달아 손해 본 느낌이었다.
검사를 안 했다면 익살스러운 멍청이로 천년만년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 자신을 아는 게 생각보다 중요한 건 아니더라. 쓰잘데 없이 정교한 검사들 때문에 내가 완전 좆된 걸 부정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이런 패배주의적 마인드에 종교처럼 매진했다. 실제로도 패배감이 컸으니 정직한 현상이지만, 어쨌든 나는 이상하게 고장나 스스로 회복할 수 없었다.
원래도 야망 없는 회사원이었는데, 직업적 성장이나 커리어 계발 가능성이 폭파되고 나니 일 끝나고 할 게 더더욱 없었다. 출근은 끔찍했지만 퇴근 후 비어버린 시간은 숨통을 조여 오는 공포 자체였다. 이때부터 지독한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나는 희망도 없고 희망을 쥐어짜 낼 힘도 없어서 내일이 오는 게 싫었다. 잠들어 버리면 허락도 없이 다가온 아침이 따귀를 때리는 범우주적 진리에 억울함을 느꼈다. 아직 저번 주의 우울도 소화하지 못했는데 오늘 몫의 사건들을 겹겹이 삼켜야 한다는 게 무겁고 무서웠다. 막다른 골목이라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될 텐데, 억겁의 진공 상태에 둥둥 떠있는 듯했다. 발 디딜 곳이 없다는 건 결박보다 나쁜 기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내가 왜 그렇게까지 망가졌는지 모르겠다. 원래대로라면 몹시 슬퍼하며 자학하다 슬픔 자체에 질려 다시 기쁠 이유를 찾아냈을 것이다. 근데 이 상태는 2년 이상 지속되었다. 짐작컨대, 그리고 고백하건대 내가 술과 정신과 약물을 오남용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건 너무 수치스러운 얘기라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털어놓는다. 의사 선생님도 모르니 꼭 비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여튼 가장 큰 실수는 약을 제때 먹지 않고 멋대로 술과 함께 먹었다는 것이다. 당시 내 약들은 아침 점심 저녁 혹은 취침 전에 먹도록 제조된 것들이었다. 뇌를 각성시키는 콘서타와 스트라테라(ADHD약),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위장약 등등. 의사 선생님은 담배는 맘대로 피시되 술만은 반드시 절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들은 귓등까지 닿지도 못 했다. 오히려 술이고 약이고 불안할 때마다 먹었다.
처방은 3주 주기였는데, 점점 병원 재방문 날짜를 놓치게 되었다. 개수가 예정에 안 맞게 들쭉날쭉했기 때문이다. 만취해서 두 개씩 털어 먹기도 하고 며칠 동안 아예 안 먹기도 했다. 진짜 까먹을 때도 있고, 나쁠 거 알면서도 일단 삼키고 본 적도 있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때 내겐 백년건강보다 한 톨의 위안이 훨씬 소중했다. 당장 여기가 지옥인데 몇십 년 후 환갑잔치가 다 뭐란 말인가.
그 짓거리로 실제 위안을 받았느냐하면 물론 아니다. 술과 정신과 약을 같이 먹는 건 느린 자살이나 똑같다. 알코올과 섭취한 항우울제는 이상한 충동을 마구 불러일으켜서 당장 5분 후에 자살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겁이 많고 고통을 싫어해서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방법으로 나를 미워하고 싶었나 보다.
써놓고 보니 맛이 간 나날이지만, 의외로 당시 생활이나 대인 관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일반인들은 무단결근이나 경찰서 방문이 없는 한 고만고만하게 사는 듯 보인다. 언제 자든 아예 못 자든 아침 6시에는 부모님이 깨워주셨다. 스트레스로 살이 쭉쭉 빠졌으나 외모가 나아져서 SNS 속 친구들은 내가 예뻐졌다고 부러워했다.
또 나는 활발해졌다. 일주일 중 7일 술만 먹는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 매일매일 술 상대를 바꿨기 때문이다. 그간 소원했던 인맥들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다니니 얼마나 활기차고 좋아 보였을까.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동호회도 시작했다. 모든 게 엉망이어도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교양을 쌓아가는 일은 얼마간 고양감을 주었다. 동호회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큰 문제가 없다고 작은 문제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부모님만은 불나방처럼 겉도는 나를 알아채고 걱정했다. 나는 무시했다. 씹었다기 보단 구멍 난 마음 사이로 다정한 나무람들이 숭숭 빠져나간 것이다. 새로 사귀었으나 예전에도 만난 적 있던 남자 친구도 내가 막 나가 스트레스를 받았다. 엄청 싸웠고 결국 헤어졌다.
“남자는 너무 지겨워. 하지만 외로워. 누가 날 받아주겠어? 그렇지만 널리고 널린 남자들 중 한 명은 부디 나를 참아주겠지!”
이런 생각으로 연애를 하니 잘 될 리가 없었다. 이후에도 많은 인연이 나를 스쳐갔다. 신이 나를 구하진 않아도 그 남자들의 인생은 구해줬다. 그때 내게 코 뀄으면 미치거나 미친 나를 돌보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술에 취한다고 근심을 잊을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2D였던 근심은 3D, 4D가 된다. 잠을 잘 자는가. 그것도 아니다. 술이 숙면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설명하는 자료들이 깔리고 깔렸다. 술은 나쁜 놈이지만 착한 방법으론 위안을 얻지 못하는 인간들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할 뿐이다. 나 역시 만취해도 샤워나 출근 등 기본적인 것을 거르지 않아, 과하고 유쾌한 애주가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술로 담근 인간 피클일 뿐이었다.
그쯤 다니던 회사가 강남에서 경기도 외곽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그곳은 거지 같은 유령도시였는데, 개인 숙소와 다소 파격적인 연봉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솔직히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집 주변에 편의점 하나 덜렁 있는 곳이니 아무리 나라도 더 이상 싸돌아 다니거나 허튼짓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대학에 간 것보다 파주에 간 것을 후회한다. 나는 홀로 있을 기회로부터 도망쳤어야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요양이 아니라 고립이었다. 전에는 ‘혼자’라고 느껴도 군중 속의 고독이었는데 이젠 진짜 물리적으로 혼자인 거였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못 보게 되니 그리워진 심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외로웠다. 지루했고, 고루했고 기약이 없었다.
유유자적 취미 계발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매일 술만 마셨다. 그전에도 만취해 욕조에 빠진 채 잠들어 어머니의 비명을 유발하거나 필름이 끊겨 들개짓을 하는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기분 좋은 선에서 끝낼 때도 많았다. 집에는 부모님이 있어서 술은 늘 밖에서만 마셨고, 아무리 나라도 귀가할 때 쓸 정신은 본능적으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헌데 여기는 집에서 마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음주량은 두, 세 배로 늘고 출근 시간에도 못 깨어나는 일이 허다했다. 사장이 자릴 자주 비워 안 들켰지만 지각도 밥 먹듯이 했다.
내겐 술 먹고 우는 기상천외한 버릇이 생겼다. 사람들이랑 마시면 울고 싶은 기분이라도 웃게 된다. 술 먹고 우는 건 파렴치할 만큼 혐오스러운 것이니까. 근데 혼자 병나발을 불다 보니 문득 울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는 것은 일종의 배설이다. 비워낸 만큼 다시 우울해져도 묵은 슬픔보단 새로운 슬픔이 신선하다. 게다가 한바탕 울면 기력이 쇠해서라도 잠들 수 있었다. 슬퍼서 울고 슬프지 않아도 곧 슬플 것이니 울고 너무 사랑하는 내가 너무 싫은 상황에 처한 게 불쌍하여 울고, 그러다 보면 자기 연민이 역겨워 또 눈물이 났다.
바싹 말랐던 몸은 알콜에 절어 비대해졌다. 영양가 있는 살이 아니라 몸은 약해졌다. 슬픈 가시나무에서 슬픈 돼지가 되어가며... 이런 생각도 했다.
인생에 웃음과 슬픔의 무게가 정해져 있다는데 슬픔은 지금 몰렸으니 언젠간 안 슬퍼지겠지?
당시엔 그 ‘언젠가’가 대체 언제냐고 또 울었지만 아마도 지금인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ADHD 진단을 받은 후 최고로 멀쩡하다.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내 인생에 오기는 올까, 싶었는데 요즘 좀 잘 살고 있다. 술도 안 마시고 약도 시간 맞춰 잘 먹는다. 음식을 절제하고 운동도 가끔 한다.
술을 끊은 비법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난 음주에 질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이 갑자기 확 질려서 내키지가 않았다. 심할 때는 알코홀릭 치료용 도서를 사 읽기도 했다. 이것도 만취해 잘못 산 책이라 (내담자 용을 사야 하는데 상담자 용을 샀다) 효과는 하나도 없었지만 구속복을 입은 채 중독 병원 침대에 묶이는 걸 방지하려고 그 책을 읽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노력했는데. 술 끊으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내 노력보단 ADHD 기질이 셌다. 분하면서도 신기하기도 하고, 다행이면서 무력한 기분이었다. 나를 술독에 처넣은 것도 뒤통수를 잡아 꺼내준 것도 결국 ADHD였다. 내 뇌에 똬리를 튼 그 질병은 기어이 내 인생의 사령관이 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나는 ADHD에 항복하고, 그냥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래 내 좌우명은 [불광불급 (不狂不及:미쳐야 미친다)] 혹은 [너에게서 나온 건 너에게로 돌아간다] 였다.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미쳤다'는 말에 결벽증이 생겨 [불광불급]을 탈락시켰다.
너에게서 나온 건 너에게로 돌아간다.
이 구절은 착하게 살잔 의미였지만 ADHD를 대입하면 지독한 뜻이 되므로 지워 버렸다. 지금 내 좌우명은 ‘뭐 어때ㅑ용’이다. ‘뭐가 어때요’가 아니고 오타 그대로 '뭐 어때ㅑ용'. 별 뜻 없지만 그 어떤 규칙성도 찾아볼 수 없는 배열이 내 인생과 닮은 것 같다. 지금도 심각한 열등감이나 불안이 몰려올 땐 저 말을 떠올린다.
ADHD인데 뭐어때ㅑ용
또 지각 했는데 뭐어때ㅑ용
맨날 돈이 없어도 뭐어때ㅑ용
끝 맺을 말이 마땅치 않아도 뭐어때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