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봐도 좋은 사람
신혼집에 입주하고 가전가구가 채워지자, 제법 집다운 느낌이 풍겼다. 평생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독립하니, 한편으로는 낯설고 두려운 감정도 일렁였다.
남편과 애정 어린 손길로 집을 청소하고 정리했다. 이제 이 사람과 평생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았다. 연애 시작부터 신혼집 입주까지 불과 반년이었기에, 상황 적응이 조금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석 달이 흘렀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평생 따로 살았던 두 사람이 가족이 되어 한 집에 살게 되면 한 두 번쯤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게도 갈등이라 부를 만한 일조차 없었다.
단순히 콩깍지 낀 신혼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없었다.
“우리 왜 이렇게 잘 맞지?”
내 질문에 남편은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거 봐.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했지? 잘 맞는다니까?”
우리의 살림은 정해진 룰이 없었다. 내가 청소기를 돌리면 남편은 설거지를 했고, 내가 설거지를 하면 남편은 청소기를 돌렸다. 서로가 상대의 동태를 파악하고 움직이니 ’이것 좀 해줘‘라는 말이 거의 필요 없었다.
요즘은 살림도 정확히 반반 나누는 시대라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맞춰 움직였다.
내가 낮은 곳의 먼지를 닦아내면 남편은 높은 곳의 먼지를 닦아냈다. 마치 세트로 움직이는 로봇 같았다. 어느 날은 퇴근 후 서로 청소기를 돌릴 거라며 투닥거리기도 했다. 피곤할 테니 상대가 쉬었으면 하는 배려의 마음이었다.
나는 호텔조리를 전공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전부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요리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한 동안 요리를 놓고 살았지만, 살림을 하다 보니 금세 감이 돌아왔다.
평일 저녁은 무조건 집 밥이었다. 내가 먼저 퇴근하기 때문에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국과 반찬을 준비했다. 애초 배달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열심히 일한 남편에게 든든한 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나는 저녁을 먹지 않지만, 온전히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렸다.
내가 매일 퇴근 후 밥을 차린다고 말하자 친구는 놀라며 물었다.
“맞벌이인데 저녁밥을 매일 차려? 심지어 너는 안 먹고? 나는 절대 못해!“
나는 그 말을 듣고 맞벌이가 무슨 상관이지 싶었다. 내 가족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내가 조금 더 피곤해도 따뜻한 밥을 먹일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니던가.
남편이 저녁밥을 먹는 동안에는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의 소소한 일들을 나누었다. 식사가 끝나면 내가 설거지를 하고, 그 사이 남편은 반찬통과 식탁을 정리한다.
내가 설거지를 거의 마칠 때쯤이면 음식물 처리기 통을 내게 갖다 주며 신속히 움직인다. 둘이서 손 발이 척척 맞으니, 결혼 준비 때처럼 속전속결이었다.
“이거 잘 어울리겠다. 이거 사!”
옷이나 생활용품을 살 때도 남편은 늘 나를 먼저 생각했다. 주머니 사정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좋은 것만 주었다. 자기도 사고 싶은 게 많을 텐데, 본인 것은 사지 않았다.
“내 것만 사면 미안하잖아. 네 것도 같이 사.”
“나는 네가 예쁘고 좋은 걸 쓰는 게 더 좋아. 나는 너만 있으면 돼.”
맨날 반복되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깊은 배려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아내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이건 계산해 보면 명백히 ’손해‘였다.
”원래 결혼은 손해 봐도 좋은 사람이랑 해야 되는 거야.“
맞다. 결혼은 손해의 연속이다. 연애 때와 달리 단순히 사랑만으로 삶이 꾸려지지 않는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고, 사랑을 몸에 익혀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챙기는 대신 남편을 챙긴다. 남편은 그런 나를 챙긴다. 그렇게 서로를 돌보고 돌봄 받는 관계가 바로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으로 우리 부부의 건배사는 ’배양사‘이다. 배려, 양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