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대기실 대신 하객 곁에 서 있었던 결혼식
나는 일반적인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유별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편견을 깨는 일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고 믿는다.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웨딩홀에서 기계처럼 반복되는 예식을 볼 때마다, ‘결혼식’이라는 형식 자체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치를 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어릴 적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로맨틱한 결혼식은 현실에선 보기 드물다. 그래서 나는 허례허식보다 이미 시작된 결혼생활과 매일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꼭 해야 할까?”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며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물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내 생각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나와 남편이 괜찮다고 한들, 결혼식은 양가 부모님의 자리이기도 했기에 현실적인 타협은 필요했다.
막상 결혼식을 준비해 보니, 공주놀이라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정형화된 결혼식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본식 드레스를 고르러 가던 날, 그래서 나는 가장 중요한 질문부터 던졌다.
“신부대기실 안 쓰고, 홀에서 하객 맞이를 하고 싶은데 괜찮나요?”
일부 드레스샵은 드레스 오염을 이유로 이를 꺼리거나 추가 비용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선택이 아니라 사전 문의가 필수였다. 다행히 해당 드레스샵은 상관없다며 꽤 시원한 대답을 내놓았다.
대신 하객을 맞이하는 홀이 넓지 않다면 지나치게 풍성한 드레스보다는 슬림한 디자인이 훨씬 수월할 거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평소 취향이 분명하고 드레스 로망이 크지 않았던 덕에 선택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게 본식 드레스까지 정해지고 나니, 결혼식 준비도 어느새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2년 전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이미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이라는 형식 자체가 우리에게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현실의 결혼생활은 이미 진행 중이었고, 결혼식은 양가 부모님을 위한 자리이자 우리가 부부임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절차에 가까웠다.
축의대가 열렸고, 나는 남편과 함께 양가 축의대 사이에 섰다. 결혼을 축하해 주러 와주신 모든 분들께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신부대기실에 있었다면 스쳐 지나갔을 분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다.
문득 ‘이렇게 재미있는 걸 신부만 빼고 했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어르신들에겐 신부가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이 생소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시대가 변하는 만큼 결혼식 역시 본질은 지키되 더 즐겁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축제로 변해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번외로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부부끼리 손을 잡고 커플 입장을 하셨다. 요즘 유행하는 ‘리마인드 입장’이었다.
화촉 점화 역시 어머니 두 분이 아닌, 부모님 네 분이 동시에 빛을 밝혀주셨다. 일반적인 결혼식에서는 양가 어머니가 촛불을 밝히고, 신부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한다. 반면 신랑 아버지는 정작 뚜렷한 역할이 없다.
그래서 부모님 모두가 참여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나 역시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지 않고 남편의 손을 잡은 채 동시 입장을 택했다. 과거에는 결혼하는 여자에게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붙이며 신부 아버지가 딸의 손을 넘겨주는 장면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이제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결혼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날의 나는 단순히 신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앞으로 남은 삶을 새로이 다짐했다. 결혼식은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역할을 씌우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삶을 조용히 선언하는 순간이 되었다.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