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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Aug 28. 2023

이모랑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다른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까짓 거.

  V는 15살의 나이에도 늘 웃는 얼굴에 애교가 많은 사춘기 소녀였다. 긴 단발머리에 필통 속에는 볼펜보다 거울이나 립스틱 같은 미용용품이 더 많았고 항상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다니는 전형적인 십 대 여자 아이. V의 한국어 실력은 좀처럼 느는 법이 없었는데 어제 배운 단어나 문법은 당연히 오늘이 되면 마치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인 냥 눈을 꿈뻑꿈뻑 거리며 당황해하기 일쑤였다. 답답한 내가 오만 방법을 동원해 V에게 설명하고 가르치고 해도 천성적인 순진무구함으로 모든 지식을 방어하고 있었다. 허탈한 나를 오히려 웃으며 위로하는 V를 황당해하는 친구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V는 그저 한국에서의 생활과 수업 시간이 그저 즐거워 보였다. 그렇다고 V가 건방지거나 반항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선생님에게는 애교가 많았고 친구들에게는 홍반장처럼 언제 어디서나 해결사 노릇을 했다. 교실에 쓰레기가 굴러다니면 맨손에도 아랑곳없이 쓰레기를 주워 담았고 혼자 소외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번역기나 바디랭귀지를 이용해 친분을 쌓기도 했다. V는 그 자체로 교실의 분위기메이커이자 활력소가 되어 주는 아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V의 이런 사근사근한 성격에도 염려가 되는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선생님을 향한 애정 공세가 점점 손을 잡는 행위에서 가볍게는 포옹이 되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스킨십을 하는 문제였다. 친구들과 있을 때도 V는 동성 친구에게 자주 안겨 있거나 볼뽀뽀를 하고 짓궂게 가슴을 만지기도 하며 놀았다. 이성 친구나 동생, 오빠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무릎에 기대거나 배를 만지는 등 스킨십을 하는 횟수나 농도가 짙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시간을 할애해 교실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 사항들에 대해 수업을 하게 되었고 그사이에 스킨십이나 얕은 성교육에 관한 부분도 넣어서 아이들이 알기 쉽도록 설명했다. 이후로 명확하게 친구나 선생님과 대화 시 물리적 거리에 대해 적당한 제한선을 두었고 V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선을 넘으려고 할 때 두 손으로 엑스 표시를 하며 제한을 두었다. 점차 V도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인지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고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 날이 있었다. 대부분의 중도입국아이들이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일정 시간 동안 특히 엄마와의 연대가 끊어진 경험을 하기 때문에 엄마와 데면데면하는 경우도 많고 더 나아가 분노가 무감각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 아이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V는 엄마에 대한 묘사를 시작하자 연습장에 천사 그림을 그리며 한국어로 뭔지 물었다. 내가 ‘천사’라고 말하자 자기 엄마는 천사라며 너무 아름답고 예쁘고 귀엽다며 세상에 자신이 아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여 엄마를 설명했다. 그림은 더 정성스러워서 순정만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럴수록 V가 더 짠하고 마음 한켠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V는 엄마가 아닌 이모와 살고 있었기 때문인데,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이모가 고향에 있던 V를 데리고 와 공부를 시키며 함께 지내고 있었다.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엄마 쪽 비자가 해결되지 않으면 종종 언니나 이모, 또 다른 친척을 통해 방문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와 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지내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V의 이모와 이모부 내외처럼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V를 챙기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V의 이모부가 아이도 없고 젊기도 해 속으로는 아주 최악의 경우도 상상한 적이 있어 경계를 해 보기도 했었더랬다. 이것도 직업병의 일종인가. 씁쓸하지만 현실이기에 모든 촉수를 곤두세우고 우리 아이들의 안위만 걱정하곤 했었다. 더군다나 스킨십이 워낙에 많은 V였기에 염려가 되는 터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생각하는 나쁜 경우는 아니었다. 금슬 좋은 이모와 이모부가 조카를 챙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V가 자꾸 이상한 말을 하는 통에 머릿속이 복잡한 날도 있었다.

  “어제 왜 안 왔어요?”

  “선생님, 나 배 아파요. 병원에 가요.”

  “병원에 갔어요? 누구하고 갔어요?”

  “엄마.”

  “엄마? 엄마가 한국에 왔어요?”

  “아니요, 엄마하고 병원에 가요. 엄마 한국에 있어요.”

  “엄마가 한국에 있어요?”

  “아니요, 이모 한국에 있어요.”

  “이모? 네, V 이모는 한국에 있어요. 알아요. 병원에 이모하고 갔어요?”

  “아니, 엄마하고 가요.”

  이런 류의 별거 아닌데 아주 복잡하고 난해한 대화가 이어졌다. V가 이모, 이모부와 함께 와서 작성한 서류에도 엄마는 한국에 없었다. 엄마가 갑자기 한국에 왔다는 얘긴가. 그리고 한참 뒤에 베트남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을 통해 V가 매번 이야기했던 엄마가 바로 V가 이모라고 불렀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V의 잦은 스킨십과 학습이 부진한 문제 때문에 마침 상담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V의 이모는 사실 엄마였고 이모부라는 사람은 엄마와 재혼한 한국인 새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엄마를 이모라고 불러야 했던 것일까. 그게 뭐라고. 처음 센터에 V를 데리고 왔던 그날도 그들은 자신들을 이모와 이모부라고 소개했다.

  초혼이었던 새아버지가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V에게 했던 부탁이라고 한다. 그게 뭐라고. 엄마와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그까짓 호칭 따위 별거 아니라 생각한 V는 그때부터 엄마를 이모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처음엔 몰랐을 것이다. 당장의 그리움과 사무침으로 그 요구를 받아들였을 V는 언어를 배워가면서 그 단어의 무게와 의미를 알았을 때 더 많이 외롭지 않았을까. 그래서 어딘가에 기대고 누군가에 안기고 살을 부비고 밀쳐짐을 당해도 자꾸 부딪히려 했을까. 창가에 서 있던 V의 웃는 얼굴 위로 낮은 그림자가 설핏 지나갔다. 내가 웃음을 보이자 하얀 이가 드러나게 웃던 V가 친구들과 어울려 SNS 속 유행하는 율동을 추며 또 까르르 웃고 있다.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도입국청소년 #다문화센터 #한국어강사 #한국어수업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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