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핀 엄마의 부재
“아이는 늘 부모를 용서한다.”
엄마가 된 후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이라 하면 단연 이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늘 피로와 싸우는 워킹맘으로 살다보니 아이에게 한결같이 자상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다. 때로는 아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적도 있더랬다. 속상한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부러 핀잔을 주며 혼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에 죄책감도 많았다. 그때마다 잠자리에 들려는 아이를 붙잡고 구차한 변명과 사과를 하는데,
“괜찮아, 엄마. 내가 아까 미안했어.”
오히려 사과를 하는 쪽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며 또 한 번 가슴이 미어지곤 했다. 그래도 다음날 다시 쾌청한 하늘을 아이와 보며 언제 그랬냐는 듯 까르르 웃는 아이를 보며 마음 속에 먹구름도 사라지는 일이 늘상 반복되곤 했다.
무더운 여름날 Y는 홀로 집안에 머물고 있었다. 며칠 째 수업도 나오지 않았다. Y의 한국이 새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도 늘 같은 하소연 뿐이었다. Y의 엄마는 한숨을 쉬며 Y를 포기한 듯 이야기했다. Y는 홀로 방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하고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춤을 춘다고 했다. Y를 고향에서 데리고 온 후부터 아파트 아래층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답답해하는 부모를 대신해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고 의지하는 내가 Y를 설득해 수업에 나오도록 했다. 어쩌다 수업에 나온 Y는 주체할 수 없이 밝았다가 갑자기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잠만 잘 뿐이었다. 조심스레 깨우기라도 하면 잠시 정신을 차렸다가 뜬금없이 까르르 웃기도 했다. 열다섯 사춘기 소녀의 예민한 감수성을 건드리지 말아야지 살얼음판을 걷는 듯이 눈치를 보는 건 교사인 나와 주변의 아이들이었다. 어떤 이야기나 약속도 없이 암묵적으로 Y가 수업에 오는 날은 서로 눈치를 보며 Y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외부 강사님이 오셔서 강의를 하는 날 Y 고향의 언어를 할 줄 아는 내가 옆에 앉아 외부 강사님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갑자기 엎드렸고 조심스레 깨우자 Y의 얼굴이 벌개졌다. 놀란 내가 옆에 앉아 상황을 보는데 갑자기 Y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별안간 당황한 내가 무슨 일이냐고 조용히 묻자 Y는 숨이 막힌다며 화장실로 향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애가 탔다. 수 분이 흐르고 Y가 눈이 퉁퉁 부은 채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니?”
“괜찮아요. 가끔 이래요.”
“가끔?”
“네, 갑자기 울고 싶은 감정이 들 때가 있어요. 숨이 막히고. 그럴 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에 와서 한바탕 울고 나면 괜찮아져요.”
“고향에서도 그랬어?”
“네, 그땐 학교에서 아무도 없는 곳을 미리 찾아 놓거나 풀숲 같은 데 들어가서 울고 나오고 그랬어요.”
걱정이 된 나는 그 후로 상담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고 Y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고향에서 친아버지와 결혼 생활 하는 내내 다툼이 있었고 친할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 엄마를 심하게 구박했다고 한다. 결국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외가에서 생활하던 중 혼자 물을 끓이다 뜨거운 물을 팔에 쏟아 심한 화상을 입었다. 처음 Y를 본 날도 소맷부리 사이에 일그러져 있던 화상의 잔흔을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화상 자국의 노출은 더 많아졌고 생각보다 그 부위나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늘 얇은 점퍼를 걸치고 다니던 Y는 수업 시간에 종종 샤프심 등으로 화상 부위를 꾹꾹 누르거나 긁는 행동을 반복하곤 했다.
“얼마 전에 엄마하고 많이 싸웠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줄 수 있겠니?”
미리 사전 조사를 한 상담 선생님의 질문을 받자 Y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총명하고 문학적인 감수성이 풍푸한 Y의 어조는 어린 나이임에도 늘 차분하고 교양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편찮으세요. 암이라고 하시는데 그 소식을 듣던 엄마가 통곡을 했어요. 그러더니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옆방에서 듣고 있었어요. 너무 속상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엄마 말이 ‘나는 이렇게 슬픈데 저 지지배는 눈 하나 깜짝도 안 한다, 어떻게 키워 준 할머니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도 저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제 욕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아세요? 저도 울고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너무 울어서 제 마음은 이미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요. 왜 제가 슬프지 않겠어요? 제가 더 울면 엄마가 더 힘들지 않겠어요? 저는 속으로 참아냈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엄마가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저한테 한번도 묻지 않았어요. 슬프냐고!”
Y는 참았던 감정이 터지면서 울부짖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랑 이혼할 때에도 저한테 안 물어봤잖아요! 지금 저는 다시 고향에 가고 싶은데 엄만 엄마 생각만 하잖아요! 한번도 제 생각이나 감정을 물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슬픈지, 안 슬픈지, 기쁜지 어떤지 엄마가 어떻게 아냐고요!”
발악하듯 자신의 감정을 송두리째 뽑아낸 Y를 나도 모르게 끌어안았다. 가능하다면 그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일들을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어졌다. 조금 어루만지면 마음이 좀 풀릴까. 팔 위에 있는 화상 자국처럼 굳어져버린 마음의 상처를 되돌릴 수는 없을까.
상담이 끝난 뒤 우리는 또 알게 되었다. 내 감정과 상황이 정작 나를 사랑해주고 나만 바라봐주는 아이의 상처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닐런지. 상담 말미에 그럼에도 Y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했다. 엄마가 힘들 거라고. 얼마 전에 유산을 해서 새아버지와 제가 번갈아가며 죽을 끓이고 집안일을 했다고. Y는 자신의 상처를 평생 지고 가면서도 엄마의 안위를 살핀다. 참고 참다가 가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홀로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의 울음을 쏟아내고 다시 일상을 살아내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위안이 되는 곳은 게임 속 세상일테다. 어떻게 해결하지 못하고 그저 Y의 어깨를 다독이던 나도 이 위로가 힘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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