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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Sep 06. 2023

저는 억울해요!

사랑받고 싶다는 표현

  “찰싹!”

  어디선가 매몰차게 손으로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난 곳을 보니 역시나 K가 있는 곳이었다. 사나운  눈을 한 K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급히 표정을 바꾸어 한껏 서러운 얼굴을 한채 나를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기에 내가 급히 울지 말라며 단호하게 대했다. 어딘가 이상함을 감지한 K가 어정쩡하게 나를 보고만 있었다. 나는 바로 K를 때린 E에게 왜 K를 때렸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공부를 하고 있는 책상에 와서 올라타며 방해를 했다는 것이다. K가 반론을 하려 들자 화가 난 E가 말했다.

 ”K가 먼저 때렸어요! “


  K는 9살 남자아이다. 키도 작고 몸도 왜소한데 재빠르고 장난기도 많은 전형적인 개구쟁이. 엄마도 옆 교실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함께 공부하던 누나는 이제 중학생이 되어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와 학원 수업만 하고 K는 초등학교가 끝나자마자 다시 센터로 와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처음 센터에 와서 수업을 들을 때부터 K의 누나는 남달랐다. 곧은 자세며 경청하는 수업 태도, 예복습은 물론이거니와 수업 때 배운 구문이나 단어를 곧장 활용하여 한국어로 말을 하곤 했다. 늘 열의가 없거나 기초학력 부재로 같은 내용을 수십 번 반복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K의 누나는 단연 발군이었다. 그에 반해 K는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학생이었다. 공부보다는 노는 것에 관심이 많고 수업 때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런 K가 어느 날부터 이상해졌다. 내가 설명을 하는 도중에도 자주 콧구멍을 후비던 K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더니 급기야 손이 책상 밑을 향하기 시작했다. 한 손을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다리를 떨며 필기를 하길래 내가 가볍게 어깨에 손을 얹고 지나가며 각성을 주기도 몇 번 했더랬다. 따로 불러 위생적인 부분에 대해서 강조하며 타이르기도 했었다. 그래도 K의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설명을 하고 있는 나를 향해 고개는 들고 있었으나 눈은 허공을 응시한 채 얼굴꺼지 벌게지도록 집중을 하고 있었다. 놀란 내가 시선을 떨궜다 혹여나 다른 아이들이 보기라도 했을까 아이들을 재빨리 살폈다. 다행히 다른 아이들은 알지 못했고 이대로 두어선 안 되겠다 싶어 K 고향 출신 선생님을 통해 K 부모님께 이 사실을 전달했다.

  그리고 몇 주 후쯤 K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 통역 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K의 어머니가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다고만 전해 들었고 나도 그 후에 오며 가며 인사를 할 뿐 그 일에 대해선 함구했다.

  누나가 학교로 간 후 혼자 수업을 받게 된 K는 자주 반 친구들과 문제를 일으켰다. 게임에서 혼자 카드를 다 움켜쥐고 고집을 부리다 다투거나 다른 친구의 따귀를 때린다거나 발을 밟는다거나. 하지만 늘 먼저 울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건 K였다. 당한 아이들이 나에게 사건의 진상을 말하기라도 하면 오히려 K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상대 친구가 열흘 전에, 혹은 몇 주 전에 자신을 비웃거나 일부러 때렸다는 이야기를 하며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다. 나는 어르기도 하고 엄하게 혼도 내봤는데 K의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하는 나에게 상담 선생님은 K가 집안에서 별로 대우를 못 받는 것 같다. 우등생인 누나와 항상 비교당하고 엄한 엄마에게 이해를 받아 본 경험이 없는 것 같으니 잘 안아주고 맘껏 울도록 해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업시간에 무언가 잘 안 풀리던 K는 같은 반 H가 자신을 비웃었다는 이유로(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오열을 하는 것이었다. 놀란 H가 그렇지 않다며 변명을 하려는데 소리를 지르며 연필을 두 동강 내버리더니 급기야 책상에 제 머리를 박으며 울어버리는 통에 H는 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과를 했다. 나는 쉬는 시간에 K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 꼭 안아주며 다독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가 누나만 좋아하고 자신은 찬밥이라는 이야기,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엄마에게 맞았다는 이야기 등을 늘어놓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이야기라 생각했다. K가 서럽게 울면서 엄마에게 맞았다는 팔을 보여줬지만 뽀얗고 깨끗했다. H에게 왜 화가 났냐는 말에 열흘 전에 자신의 발을 일부러 걸어 넘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이야기라 나는 생각했다.

  K는 자주 친구들의 입을 막는다. 갓 한글을 떼고 이제 더듬더듬 한국어를 읽기 시작하는 친구들의 발음을 듣고 박장대소를 하거나 같은 고향 친구일 경우에는 고향말로 핀잔을 주기도 한다. 어떤 문제든지 자신이 다 먼저 맞혀야 하고 자신이 틀렸을 때에 누구 하나 지적하거나 웃기라도 하면 사달이 나곤 했다. 이제 반에서 K와 같이 놀기 원하는 친구는 드물다. 머리가 큰 누나나 형들은 더더욱 K를 배제한다.  나를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K가 여전히 짠하고 속상한 아이이다.

  며칠 전 쉬는 시간에 모두 핸드폰 게임을 하며 노는데 혼자 보란 듯이 수학문제집을 꺼내 보이며 문제를 풀고 있는 K를 보았다. 세 자릿수에 두 자릿수를 더하고 빼는 연산 문제집을 부러 큰 소리를 나게 책상에 올려 두고는 문제를 풀었다. 그전 날 저녁에 K의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왔었던 게 기억났다. 중학교 1학년 수학 문제 중 방정식이었는데 K의 누나가 틀린 문제였다. 나에게 설명을 부탁한 것이다. 나는 문제를 풀어 답과 과정을 알려주었고 K의 어머니는 매우 감사해했다. 문제집을 풀면서도 계속 내가 관심을 보여주길 바라는 눈빛을 보내는 K를 나는 바라만 보았다.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도입국청소년 #다문화센터 #한국어강사 #한국어수업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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