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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Sep 12. 2023

에필로그-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그간의 열기를 잠재우진 못했지만 늦게 찾아온 가을에 서서히 우리를 적응시키고 있었다. 여름날 에어컨 바람에도 오슬오슬 몸을 떨던 더운 나라에서 온 아이들은 어느새 두터운 옷을 챙겨 입고 다녔다. 교실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짧은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말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교실 뒤편에 있는 보드 게임을 가지고 와 삼삼오오 놀았고 더러는 다투기도 했다. 사춘기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 몇은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 접근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심각하게 자신의 핸드폰만 노려보았다. 여자아이들 서넛은 창문틀에 핸드폰을 고정시키고 유행하는 춤을 따라 추기도 했다. 가끔 내 손에 커다란 봉지가 들려있으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꺅꺅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기도 했다. 나는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과자 같은 간식을 하나씩 나눠주며 꼭 인사를 시켰다. 누가 보면 별 거 아닌 걸로 아이들에게 생색낸다고 할지 모르나 내가 가르친 아이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세 가지가 바로 감사 인사와 사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는 이 세 가지만 잘 해도 세상이 평화로울 거라 믿는 사람이다. 선생님께 받는 물건은 항상 두 손으로, 받은 후에는 바로 감사합니다 다섯 글자 인사를 웃으며 한다. 한국어 교실이 낯선 신입 아이들은 나름 먼저 온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는다. 고향이 같으면 그 고향말로, 다르면 행동으로 보여주며 가르친다. 새로 온 아이들도 어정쩡하게 인사를 따라한다. 

  코로나 이후로 점차 아이들의 수가 늘어났다. 한 교실에서 수업했던 아이들이 코로나 전에는 열 명 미만이었는데 꾸준히 열아홉에서 스무 명이 매일 같이 나와 한국어를 공부한다. 코로나가 극에 달했을 때에는 한 명만 데리고 수업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의 고민에 비하면 지금 이 아이들의 소란도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수업이 끝나면 자주 두통에 시달리곤 한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신체적 고통만 준 것이 아니었다. 일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많은 타격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여기에 있는 중도입국 아이들에게는 더 가혹한 결과가 나타났다. 불안정한 가정환경과 각자 처한 여러 문제로 이미 학습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낮은데 수업을 하는 동안 수십번을 자리에서 일어나고 돌아다니고 핸드폰 중독을 보이며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까지 속출했다. 교사와의 3초간 눈맞춤도 어려운 아이들이 서넛이 있고 선생님의 설명 중에도 맨발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만지며 노는 아이, 멍때리는 아이들이 더 많아졌다. 코로나 이전에는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적 방황, 타국 생활에 대한 고충, 가정환경의 문제들이었는데 요즘은 아이들 하나하나가 겉으로 드러내는 많은 문제들과 부딪히고 있다.

  스무 명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나를 보지 않고 수업 시간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싸우고 종이를 찢어 던지고 교실은 늘 쓰레기장처럼 더럽다. 공용으로 쓰는 채색 도구며 풀 따위의 학용품은 새것을 구비하자마자 부서지거나 뚜껑이 없어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정리를 잘 해 놓은 보드게임 들은 부속품이 따로따로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고 교실 뒤편 쓰레기통은 아이들이 함부로 버린 과자 봉지와 음료수 캔이 넘쳐 흘러 참담할 지경이다. 나는 매일 아이들에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따라하도록 한다. 어떤 날은 수업을 재쳐두고 정리 먼저 시킬 때도 있다. 자신이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연습을 할 때도 있고 그림을 그려 이곳에 놓을 것과 놓으면 안 되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아지는 모습이 없어 수업이 끝나면 두통과 짜증이 밀려오곤 한다. 내가 대체 뭐하는 건가, 나는 선생님인가 아이들의 보모인가 헷갈릴 때도 있다.

  수업이 끝나면 밀려오는 두통과 짜증으로 집에서 늦은 밤 남편과 맥주를 마시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남편은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일을 좀 쉬어 볼 것을 권한다. 하지만 내 마음에 있는 그 무엇이 나를 또 수업의 현장으로 가게 한다. 큰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존경을 받는 일도 아닌데 나조차 이유를 모르겠다.

  어느 날 이미 졸업한 아이들이 찾아왔다. 좁은 교실에서 나 혼자 한국어 수준이 모두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보다 이 상황을 수습할 생각에 당황이 먼저 되었다. 선생님에 대한 반가움과 자신이 공부했던 이곳에 오니 자신의 고향과 같은 친구나 동생이 자신이 배웠던 대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모습에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중간에 남는 자리에 앉히고 지금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몇 분 뒤 졸업한 다른 아이 몇이 더 왔다. 그 아이 손에 들려진 제 손바닥 보다 작은 케이크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갑자기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 K에 나와 수업을 받던 학생들이 어리둥절해했다. 얼결에 함께 노래를 부른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오늘 내 생일 아닌데?”

  “알아요. 선생님 생일 음력이잖아요.”

  K와 아이들은 수업 때 말하기 연습하며 알게 된 내 생일을 노트에 적어놓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졸업한 몇 명의 학생들과 함께 연락을 해서 양력 생일 당일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한 거였다.

  “진짜 생일 때 또 올게요.”     

  스승의 날에는 이곳을 졸업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간 M이 헐레벌떡 수업 중에 들어왔다. 손에 작은 편지와 종이로 만든 꽃을 내 앞에 놓고는 허리를 숙여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급히 떠나기도 했다. 학원 시간에 늦었는데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나 걸리는 이곳까지 스승의 날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졸업을 하고 초등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있던 J는 우리 종강일에 맞춰 갑자기 연락도 없이 방문을 했다. 그냥 선생님이 보고 싶어 왔다는 그 말에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이며 J의 눈치를 살폈더랬다. 종강 수업이 다 종료되고 현관까지 나와 J를 배웅하는데 가만히 가방에서 무언갈 꺼내 보여줬다. 새하얀 종이 위에 금테가 둘러져 있었고 그 위에 장려상 J의 이름이 콕 박혀 있었다. 

  “이거 보여주려고 온 거였어?”

  말 없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J를 품에 안고 엉엉 울었다. 얼마나 자랑하고 칭찬 받고 싶었을까. 혼자 버스를 타고 이 먼 곳까지 이걸 보여주러 왔다는 사실에 내가 울며 J를 마구 칭찬해주었다.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해사하게 웃는 J의 얼굴에서 어린아이 티가 조금씩 벗겨져 가고 있었다.     

  이 아이들 모두 처음에는 지금 교실의 아이들과 비슷했다. 규칙도 모르고 항상 나를 시름하게 했던 아이들. 그때마다 나는 도망가고 싶다는 부끄러운 생각도 했다.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역시 안 되는 것인가 포기를 하고 싶은 생각에도 이상하게 발길은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성장했다.     


  ‘중도입국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땅에 온 아이들 모두가 불행하지는 않다. 또 모두가 골치덩어리는 아니다. 아이들의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문제일 뿐이고 거의 대부분은 시간을 들이면 나아질 수 있다. 한국에서 공짜로 한국어도 배우고 복지도 다 해주니 너희들은 얼마나 편하니, 라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이들 대부분은 사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싶어한다. 자신이 마음 껏 뛰놀 수 있고 언어가 통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설명하지 않아도 그 속에 바로 속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곳에 아이들을 품어줄 부모는 없다. 단지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조건 하나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 이곳에 있다. 사실 어디서부터 이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줘야할 지 나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아이들의 행복을 감히 지켜줄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이 순간 웃게 할 뿐이다.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도입국청소년 #다문화센터 #한국어강사 #한국어수업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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