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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Aug 29. 2023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연약한 존재를 대하는 마음

  아파트 놀이터에 딸 아이를 데리고 나가 놀아주었다. 잡은 내 손을 빠르게 풀며 제 친구를 찾아 뛰어가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조심하라 내가 소리쳤다. 이윽고 아파트 놀이터에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설핏 찬바람이 끼쳐 들어와 옷깃을 여미고 놀이터 벤치에 걸터앉았다. 미끄럼틀 한쪽에서 조용히 이제 아장아장 걸음을 걷는 통통한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놀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잠시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피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욕조에 넣어두고 따뜻한 물에 거품 목욕제를 풀어주었다. 목욕하기 싫어하는 아이인데도 거품 목욕제만 넣어주면 삼십 분은 거뜬히 혼자 신나게 목욕 놀이를 한다. 문턱에 앉아 노는 아이를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문자메시지에는 조도가 낮은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선생님, 매번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잘 먹고 있습니다.


  아동보호센터 원장님께서 보낸 메시지였다. 짧게 답장을 보내고 나자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난가을 G는 새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한 사실이 확인돼 경찰 조사, 병원 진료, 심리치료 등의 과정을 거쳐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정폭력피해 아동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그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 센터의 선생님과 한 번 G를 만날 수 있을까하여 방문한 적이 있었다. 때마침 병원 진료차 담당 선생님과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우리는 원장 선생님과 짧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피해 아동의 보호가 급선무라 알려지지 않은 공간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고 24시간 함께 생활하며 지내야 하는데 남자아이들만 모인 곳이라 (여자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고 이 역시 비밀에 부쳐져 일반인은 알 수 없다) 식욕이 왕성해서 김치며 쌀이며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비밀 보호시설이라 대놓고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들. 거기에 G는 한국 아이도 아닌 외국 아이라 적잖은 당황을 하신 듯했다. 내가 G가 영특하고 붙임성도 좋아 문제없을 거라 말씀은 드렸지만 부담을 지어드리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그 후로 몇 번 집에 있던 깔끔한 옷가지들을 세탁해 보내드렸다. 그리고 한달에 한 번씩 쌀을 보내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원장님은 고마움에 이렇게 가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시지만 나는 특별히 배송에 문제가 없으면 매번 연락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사소한 걸로 일거리를 주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고 내가 베푼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을 미처 내려놓지 못하고 메신저 어플을 열어 대화목록을 아래로 내려보았다. G 새아버지의 메시지가 아직 남아있었다.


  선생님, 그동안 G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G가 오늘 엎드리는 체벌 주다가 일으키는 과정에서 생채기가 난 문제로 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 고향에서 방목하듯이 마음대로 생활해서 생활패턴이 엉망인 애를 겨우겨우 한국으로 데려와서 교육시키려니 안 맞았나봅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 자유롭게 크도록 하겠습니다.


  경찰 조사를 받은 당일에도 G의 새아버지는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신고 책임자가 센터고 직접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은 교사인 나밖에 없으니 자기변명과 협박 그 중간의 무언가를 하고 싶었으리라.

  오후에 눈이 마주쳤던 아이 엄마는 공교롭게도 G의 친엄마였다. 예전에 G 아버지로부터 이쪽으로 이사를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장아장 이제 막 걷기를 시작한 그 귀여운 아이는 새아버지와 재혼해 낳은 아이였고, G와는 이부형제인 셈이다. 간간이 원장 선생님과 연락이 닿으면 G가 더 아이처럼 구는 통에 센터 내 아이들과 트러블도 잦아지고 언어도 수월하게 통하지 않아 고충이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입장에서 모든 양육의 상황을 모성신화에 기인해서 설명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모성애와 부성애 이전에 나는 분명 우리에게 인류애와 연민의 감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나보다 작은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본능 말이다. G의 어머니는 우리가 학대 정황을 알고 경찰서로 인계한 후 제일 먼저 연락을 취한 보호 당사자였다.

  “아, 그래요? 그런데 제가 지금 바빠서요.”

  “네? 어머니? 지금 G가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어요. 그래서 경찰서에….”

  “네, 많이 다쳤어요? 제가 이따 간다고 얘기해주세요.”

  한국어가 원활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머니의 모국어가 가능한 선생님과 통화를 했을 때도 답은 마찬가지였다.     

  G는 내게 가끔 고향에서 할머니와 지낸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할머니 집에서 이모하고 살았을 때 먹어 본 음식, 같이 갔던 곳들을 이야기하며 그 기억들을 더듬어 내게 자신의 고향에 대해 알려주려고 애썼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 있었지만 조모와 이모의 보살핌으로 우리 G가 똘똘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구나, 그래도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일련의 사건들이 있은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문제에 대해서도 센터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경찰서를 다녀오고 백방으로 G의 정신과 신체적 건강 회복에 힘써 온 센터 선생님들로부터 적잖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작은 희망의 불씨조차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G가 말했던 할머니랑 이모는 친척이 아니었대요. 그냥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인데 한 달에 얼마씩 돈을 받고 아이를 봐줬던 거래요. 그런데 그때 G가 너무 어려서 그냥 할머니인 줄 안 거죠.”

  “그럼 생판 남한테 애를 맡기고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보다가 한국으로 데리고 온 거라고요?”

  그러니 G는 G 새아버지의 말처럼 고향으로도 돌아갈 수도 없는 거였다. 고향이 그리운건지, 여기가 끔찍이도 싫은건지 G는 매일 형태를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린단다. 엄마는 그사이 따로 연락을 취해 양말 몇 개, 속옷 몇 개를 가져다 주었을 뿐 G에게 미래를 위한 약속을 하진 못한 것 같다. G의 거처는 아동학대 보호시설에서 또다른 시설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곳 역시 이름만 다른 아동보호 시설일 뿐 G가 원하는 가족의 품은 아니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시설에 머물 수 있는 자격 조건이나 기한 등이 맞지 않아서인 걸로 알고 있다. 나도 이유를 모르고 G 역시 알 수 없겠지.


  매일 버스를 타고 가며 온갖 표지판을 다 외워 그렸던 G, 세자리 수를 더하고 빼는 모습을 자랑하던 G, 초코가 입술 주변에 묻은지도 모르고 신나게 막대를 핥아대던 G의 천진난만한 얼굴 위로 검은 멍이 들어있던 크고 둥근 눈두덩이, 유독 모기에 많이 물린 것 같이 점점이 상처가 가득했던 정강이, 잘했어 칭찬하며 쓰다듬던 이마에 볼록한 상처가 내려앉는다.     

  그때 목욕을 마친 아이가 벌떡 일어나자 놀란 내가 소리치며 아이에게 달려갔다.

  “조심해, 미끄러지면 다쳐!”

  영문도 모르고 놀란 아이의 얼굴이 품에 안기자 금새 안도하는 미소로 바뀌었다.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도입국청소년 #다문화센터 #한국어강사 #한국어수업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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