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나란히 걷는 마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입자의 물방울이 공중으로 흩어지고 있어요. 이런 비는 그냥 맞는 편입니다.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산책을 나왔습니다. 저는 우산을 쓰지 않았고 아이들도 우비를 입지 않았습니다.
털이 많이 젖을까. 얼마나 젖을까. 40분 산책하면 모르긴 해도 절반은 젖을 것도 같습니다. 우비를 입힐까. 고민을 하다가 그만두었던 것이지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지만 그냥 이쯤은 젖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솔직히 저는 웬만한 비는 그냥 맞는 편이라 고민이 필요 없었는데 아이들이 있으니 쓸데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위한 고민일까요. 아니면 차후에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나를 위한 고민일까요. 늘 그 정도 거리에서 선택지를 고민하곤 합니다. 무엇이 아이들에게 더 행복한가. 내가 귀찮거나 성가시거나 불편해서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하려 드는 일은 없나. 그러진 말아야지. 뭐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이죠.
확실히 사모예드 겨울인 비, 눈을 좋아합니다. 바람도 좋아해요. 20도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혓바닥을 내밀고 열을 식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비 맞는 것도 좋아하지요. 한여름이든 한겨울이든.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비가 내리면 우비를 입힙니다. 그래도 산책은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가랑비나 이슬비처럼 가벼운 비에는 우비를 입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옷 입는 게 입지 않은 것보다는 덜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애들이 한 번씩 몸을 부르르 털어대는데 우비를 입히면 꽤 자주 부르르 털어댑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비는 있지만 우비 없이 산책을 나섰습니다. 아파트를 나서면 가장 먼저 겨울이는 늘 하던 곳으로 가 쉬야를 합니다. 바다는 안정감이 느껴지는 자리를 따로 찾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걸어보면서 자리를 물색하도록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가벼운 쉬야가 끝나면 우리는 놀이터까지 함께 걷습니다. 오늘은 문득 제 왼쪽에서 나란히 걷는 아이들이 다른 날보다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뭔가를 가르치면 대체로 제 고집을 부리지 않고 잘 따라 주는 아이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열흘 전 일산호수공원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고집부리던 두 아이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차분하게 우리는 셋이 그렇게 나란히 놀이터까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래전 스윙댄스에 한참 빠져 있을 때, 파트너와 함께 하는 텐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 파트너는 리드를 하고 여자 파트너는 남자의 리딩을 빠르게 읽어 완벽한 호흡으로 동작을 맞춰야 아름다운 하나의 곡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텐션은 서로의 몸과 마음을 읽는 시그널이었습니다. 적당한 텐션을 서로 찾아내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텐션이 너무 강하면 부자연스러웠고 너무 약하면 시그널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파트너 간의 호흡이 무너지고 완벽한 춤을 출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산책에도 텐션이 있습니다. 그냥 나란히 걷게 되는 것은 아니죠. 저는 리드 줄을 느슨하게 하고 있지만 제가 생각한 최대 허용 거리만큼 리드 줄을 꽉 잡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간격을 벗어나면 아이들에겐 살짝 리드 줄이 당겨지는 느낌이 있는데 기막히게 그 묘한 당김을 알아차립니다.
아이들은 줄을 더 당기지 않고 걸음을 제 쪽으로 옮겨 보폭을 맞춰오는 것이죠. 우리의 관계에도 텐션이 분명 존재하고 아이들과 저는 서로의 시그널을 정확히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놀이터에 다다르면 아이들은 나의 다른 시그널을 기다립니다. 이제 놀아도 되는 건가요. 하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지요. 놀아.라는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아이들은 달려 나가며 구르고 장난을 칩니다. 둘이 충분히 뒹구르고 달린 후 심심해지면 다시 제게로 차분하게 걸어옵니다. 그러면 저는 주위에 버려진 나뭇가지를 가지고 던지고 가져오기 놀이를 하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의 나란한 동행의 그림자를 밟으며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서로를 참 잘 읽어가고 있구나.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좀 더 내밀하게 동화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