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에서 얌전한 강아지로 거듭나기까지
오후 산책을 다녀오다가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기사를 만났습니다. 낮 시간에 산책을 나가면 왕왕 만나는 익숙한 얼굴입니다. 택배 기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중, 대형견인 우리 겨울바다에게 항상 다정한 말을 건네곤 합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연히 만난 것이죠. 그런데 늘 보면서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고 해요. 어떻게 개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지? 했답니다. 짖지 않는 개가 신기한 듯 제게 물어왔습니다.
"성대 수술했어요? 애들이 영 소리가 없네"
택배 기사뿐 아니라 겨울바다를 만나는 사람들은 꽤 자주 이렇게 묻습니다. 더불어 이런 질문도 하고요.
"애들이 얌전하네요."
"와, 애들이 사진 찍는데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네요."
"우아, 애들이 차에 잘 타고 있네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뿌듯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들곤 합니다. 먼저 택배기사의 질문이었던 짖음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는 언젠가 책에서 본 적이 있는 말 때문인데요.
강아지들이 불필요한 짖음이 없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평안한 상태의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라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로 미루어 우리 겨울바다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짖지 않으니 '대체로 일상에서 편안한 상태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거기에서 오는 안도 혹은 믿음에서 뿌듯함과 대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죠.
동시에 드는 안타까움은 짖음에 대하여 꽤나 자주 저런 말을 듣는데, 그때마다 짖는 강아지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현실을 방증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우리 아파트만 해도 반려견이 짖지 않도록 해달라.는 방송을 거의 주3회는 하는 것 같아요. 실지로 아래층 옆동에서 한낮이나 밤에 개 짖는 소리가 꽤 자주 들리기도 하고요.
저도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으로 그런 개들을 접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어요. 무엇이 아이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요. 한때 짖는 강아지들의 목에 성대를 제거하는 수술이 유행한 적이 있었죠. 지금이야 동물 학대로 말이 많지만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불과 수년 전이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강아지들이 짖지 않는 건, 선천적으로는 개체마다의 성향일 것 같습니다. 후천적으로는 반려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테고요. '큰 개들은 잘 짖지 않는데 소형견들은 시끄럽게 짖어댄다.'라고 단정 짓는 분들도 있는데, 꼭 그렇다기 보다는 사람도 저마다 얼굴도 성격도 모두 다른 것 처럼 강아지들도 그런 것 같아요.
강아지 운동장이나 애견 카페를 가면 대형견이지만 머무는 시간 내내 시끄럽게 짖어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뭔가 계속 꿍얼꿍얼 중얼중얼 대는 강아지도 본 적이 있어요. 소형견이지만 차분하게 앉아 주변을 관찰하거나 친구들과 놀면서도 짖지 않는 아이들도 있고요.
먼저 반려했던 강아지 단비는 요크셔테리어였는데, 소형견이었지만 역시 불필요한 짖음이 없었거든요. 18세 되던 해, 무지개다리를 건너 지금은 별이 되었지만요. 지금은 엄마네 집에 가 있는 고양이 폴리도 목소리가 없는 아이인 줄 알 만큼 말을 하지 않는 아이랍니다. 어떤 집에 갔더니 고양이 세 마리가 하루 종일 울어대서 주민들의 신고가 계속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더 신기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하루종일 말을 하지? 하고 말이에요.
그리고 보면, 우리 집에서 함께 한 반려동물들은 대체로 불필요하게 짖거나 떠들거나 그랬던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우리집에 놀러 온 지인분에게 식구가 적고 차분한 집안의 분위기가 그런 환경을 만든 거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인은 집에서 세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데, 그 아이들은 종일 시끄럽게 떠든다고 해요. 가끔 마을 주민들이 민원을 넣을 정도라고 하네요. 그 분 말에 의하면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나 정서가 반려동물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 같아요.
확실히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건, 바다를 입양하면서예요. 바다는 고양시 불법 번식장에서 모견으로 학대당하던 보더콜리입니다. 우리 집에 왔을 때에는 2020년 봄 기준 2~3세로 추정했어요. 바다는 기본적으로 보더콜리 견종 특성상 흥분도가 높고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식사 시간, 노는 시간, 산책 시간 등 거의 모든 활동 시간에 마구잡이로 흥분해서 날뛰고 어쩔 줄 몰라 했어요. 요구성 짖음도 있고, 흥분성 짖음도 많았고요. 특히 겨울이랑 놀 때는 흥분지수가 올라가서 미친 듯이 짖어대곤 했어요. 놀이터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요.
바다가 집에 적응하면서 부터는 고요한 아이가 되었답니다. 보통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 쉬어요. 제가 일 할 때는 서재로 와 제 발 아래 엎드려 자거나 서재에 놓인 바다 침대에 누워 뼈다귀를 먹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닥거리기도 하고요. 저를 부르고 싶으면 짖지 않고 제게로 와 앉아요. 앞발이나 코(머즐)로 의자에 앉아 있는 제 무릎을 툭툭 건드려서 주의를 끌어요. 보통 산책 나가고 싶을 때 그렇게 한답니다.
물론, 불필요한 짖음과 필요한 짖음을 구분할 수 있도록 꾸준히 가르치기도 했어요. 이제는 놀이터에서 놀 때도 거의 짖지 않아요. 흥분은 하지만 지나치게 흥분해서 정신줄을 놓을 만큼 자제력을 잃지도 않고요. 더는 달리는 오토바이나 자전거, 킥보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달려들거나 짖지 않게 되었지요.
여행을 함께 하면서도 제가 사진을 찍고 있으면 아이들은 제 작업이 다 마칠 때까지 곁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직업상 여행 중 사진이나 영상 촬영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곤 하는데요. 그때마다 아이들은 군말 없이 저를 기다려 줘요. 아이들 사진을 찍을 때에도 제가 지정한 자리에서 사진 촬영이 마칠 때까지 자리 이탈을 하지 않고 포즈를 잡아 주고요.(거듭 말씀드리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예요. 처음엔 자리 이탈을 엄청나게 해서 한 장도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길을 걸을 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달려나가던 버릇도 많이 고쳐져서 함께 보행하는데 호흡이 척척 맞아요.(겨울이 고양이 보면 전력질주해서 힘들었고, 바다는 낯선 개나 사람이 자기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으면 달려나가거나 짖거나 승질을 부렸습니다. 요건 아직도 잡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도 70%는 문제 없이 맞춰나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많은 시간을 들여 아이와 호흡을 맞추려고 노력했고, 바다는 기민하고 확실히 똑똑해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사랑받고 무엇을 하면 가족이 싫어하는지 잘 알고 행동교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통해 반려동물의 성격 형성은 견종이나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후천적 반려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죠. 요즘 강아지들 사회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요. 아가 시절에 사회화가 되지 않으면 문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성견 입양을 꺼려 하시는 분들에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고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유기견 입양, 구조견 입양 고려하고 있다면 용기 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 겨울바다는 자랑 같지만(^^) 실제로 얌전하고, 반려인의 말에 귀 기울여 대내외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아는 아이들이어서 늘 감사하고 있어요. 물론, 그 안에서 이렇게 잘 지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함께 투자했던 지난날이 있고요.
누군가는 겨울바다가 한번 싸움 없이 우애가 좋아 잘 지내는 것도 복이라 했는데, 입양 당시 아이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케어를 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한 후 진행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특히 수의사 설채현 선생님을 주목했고 강아지 관련 책도 여러 권 읽으며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전에 어릴 적부터 오랜 반려 경험이 있었지만 보다 좋은 반려인이 되고 싶었거든요.
강아지 유치원, 훈련센터 등 요즘엔 강아지 케어를 위해 도움받을 수 있는 선택이 다양해졌지만 기관의 도움은 받지 않기로 한 것도 잘 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게 곧 반려생활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똑같이 대단한 선생님에게 배워도 모두가 서울대로 갈 수 있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죠. 결국은 저와 함께 살아야 할 아이들이니까요. 서로 호흡을 맞춰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럴 수 있을 때 완벽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제 말을 잘 따라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요. 지금처럼 고요한 일상을 보낼 수 있고 함께 어디로든 즐거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모두 겨울바다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보면 아이들에겐 모두 고마운 것투성이네요. 존재 자체로도 행복인 아이들이 제 모든 일상에 최고의 반려견으로 곁에 있어 주니 이것이야말로 진짜 복이 아닐까 싶네요.
말이 길어졌지만, 산책을 다녀오다가 늘 듣는 소리에 새삼 아이들의 고마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