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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07. 2021

뜬장의행패견에서 사랑스러운 반려견이 되기까지

나는뜬장에서모견으로 쓰인 보더콜리입니다. Ep. 03

오랜 시간 뜬장밖을 나가 본 적 없는 바다는 세상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우리 집에 처음 온 날엔 밤새도록 잠 못 들고 거실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거의 10여 군데 배변과 쉬야를 해 놓았어요. 좁은 뜬장에서의 생활은 바다를 공간 강박 스트레스가 생기게 했고, 바다는 조금만 불안하거나 낯설어도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다녔습니다. 제 자리에 앉는 걸 잘하지 못하더라고요. 


어른 남자를 무서워하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발바닥에 닿는 세상 모든 것의 촉감이 두려워 바짝 긴장했어요. 배를 바닥에 딱 붙여 낮은 포복으로 거의 기다시피 걸어 다녔습니다. 먹을 것을 주면 간식이든 사료든 닥치는 대로 먹고 또 먹었고, 겨울이 것까지 다 빼앗아 먹으며 먹거리 앞에서는 겨울에게 으르렁 걸리기까지 했어요. 발톱을 깎거나 목욕을 하거나 귀 청소를 하는 등 위생관리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임에도 그런 보호를 받기에 낯선 바다는 매번 난동을 부리며 성질을 부렸습니다. 밥그릇이나 물그릇을 발로 차서 엎어버리는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요. 이제 더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지만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기까지 바다는 7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우리는 매일 산책을 7번 했습니다. 갈지자로 정신없이 산만하게 돌아다니고 날뛰는 바다를 한 달 내내 하루 종일 집에 붙어 있으면서 수차례 산책을 다녀 차분한 산책 습관을 잡아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무래도 저 혼자서라면 역부족이었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차분하고 매너 좋은 겨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훨씬 고전했을 일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겨울이 산책에 동행했어요. 차분하게 산책하는 모습의 겨울이를 통해 바다도 산책 즐기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저녁 이외의 산책은 바다만의 단독 산책으로 진행했어요. 거의 3달 정도를 이렇게 했던 것 같아요. 이후부터는 일 3회로 줄였고, 얼마 전부터는 제가 일하러 외부로 나갈 때를 대비하여 매일 아침, 저녁 2회로 줄이고 랜덤으로 오후 산책을 시켜주고 있어요. 


이런 루틴으로 자연스럽게 실외 배변 습관을 자리 잡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 집은 아이들의 건강한 배변 습관과 실내 청결을 위해 100% 실외 배변으로 하고 있어요. 겨울이만 있을 때에는 실내, 실외 두 가지 방식을 병행했지만 바다가 와서 둘이 되니 겨울이 기존 배변 습관이 무너지더라고요. 원래 화장실 앞, 패드에 지정으로 배변하였으나 바다가 그 자리에 배변을 하니 겨울이 다른 곳에다 막 저지르고 다녀버리더라는요.

 




가족이 된 후 약 6개월간 바다는 자신이 보더콜리란 정체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뜬장에 갇혀 아무 할 일도 희망도 없이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낸 게 몸에 배어 있어 그랬을까요. 집에서 겨울이랑 놀기도 잠시, 금방 켄넬로 들어가 버리고 누워있거나 엎드려 있기를 좋아합니다. 조금만 산책해도 쉽게 지친 기색이 완연했고, 산이나 들로 나가도 20분 이상을 활발하게 있질 못하더라고요. 금세 자리에 주저앉고 심하게 헉헉거리고 힘들고 피곤해하더군요. 


하지만 작년 말부터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나 날쌔고 동작이 화려한지 겨울이랑 밖에서 뛰어놀 때를 보면 그 화려한 기술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죠. 악셀 점프는 기본입니다. 공중으로 날아 한 바퀴 돌아 착지를 수시로 한다지요. 이제야 저는 조금 '아, 어질리티를 시켜볼까.' 하게 되었죠. 그런데 막상 연습으로 강아지 운동장 데려가서 시켜보면, 바다는 겁이 많아 장애물이 생기면 움찔거리고 겨울인 겁이 없어 장애물이고 뭐고 미션 모두 썩세스 하더라고요. 물론, 바다가 장애물에 익숙해지면 매우 잘 할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보더콜리는 견종 특성 자체가 일에 미친 강아지라며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겨울이(사모예드 믹스)를 보다 바다를 보면 느껴져요. 보더콜리가 확실히 흥분도가 쉽게 높아지고 잘 가라앉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개체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하고요. 누군가는 25시간 놀아줘야 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적어도 하루에 5시간은 뛰어놀게 해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세상에 '그래야 한다'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견종이라도 아이들의 성격은 천차만별이고, 함께 사는 가족과 생활환경에 의해 또 달라진다고 여기거든요. 우리 집은 하루에 2번 산책을 기준으로 합니다. 산책 루틴을 만들었어요. 충분히 냄새 맡고 자분자분 걸을 수 있는 시간(30여 분 전후) + 신나게 달리고 장난치고 구르며 노는 시간(20여 분 전후)을 합해 회당 50분~1시간 전후로 하고 있습니다. 이외 보통 주 1회 차박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여행할 여건이 되지 않을 때에는 주말에 옆지기와 함께 강아지 운동장이 있는 카페로 마실 다녀옵니다. 우리는 데이트하고 아이들은 오프리쉬하고 마음껏 달리고 놀 수 있거든요. 2시간 30분 미친 듯이 달리고 놀면, 겨울이 한 이틀은 느릿느릿하더라고요. 바다는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쌩쌩하지고요.

산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운동을 시켜줘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건 아이들이 느끼는 산책의 만족도에 따라 다른 게 아닐까 해요. 사람이 각기 다른 성격과 얼굴을 가지고 있듯, 아이들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라온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레퍼런스를 가지고 현재를 사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좋은 경험을 많이 주고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긍정 강화 훈련이 최근 많이 이슈가 되고 있고요. 세상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게다가 이슈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새로운 가설이 나오는 시기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니까요. 


바다는 이제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당당한 반려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살 맞대고 보낸 시간만큼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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