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방종, 그 중간 어디쯤
얼마 전 지난 목요일, 겨울바다랑 일산 호수공원 다녀왔어요. 킨텍스에서 캠핑&피크닉 페어 가는 길에 아이들과 함께 호수공원 산책을 하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이번 일산 호수공원 산책은 제가 그간 우리 아이들과 산책 시, 놓치고 있던 것을 발견한 시간이었어요.
호수공원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은 곳이더라고요. 댕댕이들과 산책하는 사람들도 왕왕 보였고요. 운동 삼아 빠르게 걷기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순간, 평택에 있는 내리문화공원이 떠올랐어요. 그곳은 이른 아침이라도 새소리, 물소리만 흐르는 고요한 곳. 그래서 한적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 말이요. 물론, 규모 면에서 나 시설 면에서 일산 호수공원과 비교할 순 없습니다만.
기왕 왔으니 아이들과 저는 평소처럼 여유 있게 산책을 시작했어요. 주차장 근처의 소나무 숲에서 출발했어요. 킁킁이 놀이를 실컷 하고 자유롭게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은 이동하며 즐거워 보였습니다.
작은 숲을 벗어나 통행로로 나아가면서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킁킁이 놀이에 집중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추구했지만 상황은 그럴 수가 없었거든요.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여유롭게 굴다간 통행에 방해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2019년 말, 서울 한복판에서 평택의 한적한 시골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온종일 지하철이 달리고, 24시간 자동차들이 라이트를 켜고 온 동네를 쏘다니는 곳으로부터 벗어난 것이죠. 평택도 번화가 몇 곳은 사람도 건물도 교통도 지옥인 곳이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사는 곳은 우리 아파트 단지 문밖을 나서면 아직 낮은 지붕집과 논밭이 깔린 시골이랍니다.
사람 다니는 보도블록이건 통행 로건 같은 시간에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거든요. 여유롭게 산책하는 게 문제 될 일이 없었던 이유죠. 평소 산책할 때에는 8미터 줄을 자유롭게 쓰면서 느긋하게 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호수공원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죠. 줄은 1미터 정도로 짧게 잡고 아이들이 전체적인 통행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케어해야 하니까요.
아이들을 호수공원에 데려간 이유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실컷 만나고 기분 좋게 산책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는데요.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겐 썩 만족스러운 산책은 아니었겠다 싶더라고요.
아이들은 평소 방목(?)형으로 자유롭게 산책하던 습관이 있었으니 제가 평소보다 빡빡하게(?) 컨트롤하며 산책을 하니까 아무래도 호수공원에서는 마음껏 산책을 즐길 수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평소 산책 시 놓치고 있던 것을 바로 보게 된 시간이었죠. 산책에도 강약이 필요하다는 것. 통행로에서는 슉슉 걸으며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보폭을 맞춰 함께 걷고, 작은 정원이나 숲에서는 여유롭게 킁킁이 놀이를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겨울바다는 통행로에서 슉슉 걷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제가 항상 사람 적은 곳, 한갓진 곳으로 데려가 놀리고 산책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었던 거예요.
알면서도 그렇게 교육하지 않았어요. 겨우 하루 두세 번 나가는 산책이 아이들에겐 하루 중 가장 꿀 같은 시간일 테고, 그 시간을 굳이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자유를 빼앗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래봐야 항상 줄에 묶여 내가 데리고 가는 곳만 갈 수 있는 아이들인데,' 8미터 안의 자유'마저 잃게 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평택에서는, 적어도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에서는, 언제든 그럴 수 있었으니까요.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언제나 그럴 수는 없겠죠. 이렇게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내 강아지의 자유를 위해 타인에게 불편을 끼친다면 그것은 방종일뿐이죠. 무엇보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면 '8미터 안의 자유'란 어림도 없는 말이 될 테니까요. 아차차.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산책 교육을 시작했어요. 산책 패턴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기존의 산책은 배변과 킁킁이 놀이를 동시에 즐기는 방식이었어요. 리드줄도 8미터 자동줄을 이용해 그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걷고 뛰며 산책하는 방식이고요. 여유로운 배변 산책 30분,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터그놀이, 던지기 놀이, 구르기, 장난치기) 20분이렇게 해 주었는데요.
이제는 조금 바꾸었습니다. 산책 구간을 정했어요. 구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황에 따른 통행법과 산책을 동시에 익히도록 습관화 시켜주려구요.
집을 나서 숲, 나무 구간에서는 가볍게 배변 산책을 즐기고 인도 구간에서는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보폭에 맞춰 함께 걷기를 연습합니다. 마지막 구간인 놀이터에서는 즐겁게 에너지를 쏟으며 장난치고 놀고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는 보폭에 맞춰 함께 걷기를 연습하며 돌아갑니다.
어제, 오늘 이틀간 그렇게 산책을 유도했더니 아이들도 금세 잘 따라오네요. 호기심 많은 겨울인 그래도 한 번씩 인도 구간에서 킁킁이 타령하지만, 의도를 빠르게 눈치채는 바다는 보채는 것 없이 잘 따라주고 있어요.
도시에서 반려견으로 산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아이들에겐 참아야 할 것도, 지켜야 할 규칙도, 제약도 시골보다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 제겐 서울로 돌아가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됩니다. 이제 겨울바다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제 삶이 되었으니까요.
늘 배우게 되는 게 인생일까요. 이렇게 또 하나 아이들과 제 삶의 규칙을 만들고 실수를 바로잡아나가게 되었습니다. 이게 꼭 정답은 아닐지도 모르죠. 다만 더 좋은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