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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10. 2021

겨울바다 교육관

반려견 훈련과 교육에 관하여

"우리집 아이들은 그저 바보개로 키우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웃음)"


주변인이 반려견에 대해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냐. 훈련소(혹은 유치원)는 어디로 보냈냐.고 물어올 때마다 하는 답변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겨울바다는 앉아, 기다려, 엎드려 세 가지 정도만 교육했습니다. 그 외 다른 교육은 특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따로 교육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눈치껏 잘 따라주기 때문인데요. 이를테면, 잠을 자야 할 시간이 되면 집 안 모든 불을 소등하고 아이들에게 이제 잘 시간이야. 잘 자. 하고 인사를 건네요. 그러면 아이들은 알아서 제 방으로 들어갑니다.(아이들의 켄넬을 저는 방이라고 표현합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했겠지만, 우리는 매일 한 지붕 아래 같이 부대끼며 비슷한 생활패턴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 패턴에 맞춰 자야 할 시간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같아요. 모든 것은 이런 식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런 거구나. 터득하게 되는 것이죠. 반려견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것 같더라고요. 


켄넬을 자기 방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제 차에 타고 내리는 것도,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장을 볼 때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도 따로 가르쳤다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익숙해진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요. 함께 생활하다보면 사람 속은 몰라도 대략 눈치껏 이렇겠다 저렇겠다 속마음 읽게 되는 그런 것 말이죠. 그래서 시골길 우연히 만난 강아지와 할머니가 서로를 끔찍히 위하면서 살아가고 결코 맞지 않을 것 같은 개와 고양이 친구가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모습을 우리는 다양한 영상으로 만나 보게 되는 게 아닐까요.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언어의 장벽을 이기고 '소통'이란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앉아, 기다려, 엎드려. 세 가지를 가르친 이유는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데 있어 최소한의 질서를 잡아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중요하지만 특히, 주1회 정도 꾸준히 여행을 떠나는 우리에겐 이런 신호체계는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자동차 여행을 자주 하는데요. 차에서 내릴 때 보통 아이들은 갑갑한 차 안에 있다가 시원하고 탁 트인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쉽게 흥분에 들떠 차 문이 열리자 마자 튕겨져 나올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고 자동차가 많은 도시라면 아이들 안전이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는데요. 


그렇기에 차에서 내리기 전, 리드줄을 결착하고 주변을 살핀 후 아이들을 안전하게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아이들의 협조가 필요하거든요. 이때 흥분을 가라앉히고(앉아) 리드줄을 채우고(엎드려) 내려도 괜찮을 적절한 타이밍을 보는데(기다려) 꼭 필요한 요소가 되거든요. 위험한 상황에서 놓여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사소통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만 확실히 이루어진다면 일상 생활하는데는 물론 어떤 여행지에서도 문제가 생길 확율은 훨씬 낮아지게 되는 것 같아요. 


가끔, 아담한 체구로 어떻게 큰 개를 두 마리나 데리고 다닐 수 있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신데요. 강아지들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많은 것을 참고 희생하고 노력하는 참으로 놀라운 존재랍니다. 실로, 겨울이는 25kg, 바다는 18kg로 제대로 힘을 사용한다면 저는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개는 자신의 체구보다 약 3배 정도 힘을 더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제게 불필요한 힘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보폭을 맞춰 걸어 줍니다. 줄을 당겨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기다려주고요. 목욕은 싫지만 제가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들에게는 그토록 길고 지루한 목욕 시간을 꾹 참아주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겨울바다를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이 저를 데리고 다닌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니라는 것이죠. 


제가 겨울이를 보호소에서 데려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떤 친구가 제게 훈련센터를 다니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말하진 않았지만 개인에 따라 필요성은 다를 것 같아요. 할수만 있다면 견주가 직접 가르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려견이 훈련소(유치원)에 가면 그곳의 선생님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겠지요. 그렇다고 나랑도 반드시 소통이 잘 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교육시킨 건 '나'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일 테니 말이죠. 내 아이를 타인 손을 빌어 키우지 않듯, 내 반려견도 타인 손을 빌어 교육시키는 것은 그다지 권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결국은 '나'와 살아가야 할 아이니까요. 그런 것 같아요. 함께 한 시간만큼 서로 사랑하고 성장하는 게 아닐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고 서로 그렇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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