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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11. 2021

물지 않는다는 거짓말

개 물림사고에 관하여

"안 물어요?" 


호기심 많은 꼬마가 내 답을 듣기도 전에 겨울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보다 훨씬 작고 마른 체구의 아이는 제 몸집보다 큰 복슬강아지가 마냥 귀여웠나 봅니다. 


이 아이뿐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지 않냐고. 묻곤 합니다. 별 생각이 없었을 때에는 당연하다는 듯 "그럼요. 안 물어요."라고 답하던 저였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낯선 강아지에게 호감을 보이는 겨울바다니까요. 하지만 이제 더는 예전처럼 자신 있게 내 강아지들은 물지 않노라고 답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부터는 말이죠. 


지난해 가을이었습니다. 날씨는 속절없이 맑고 청명하였고 그래서 더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자정 즈음 아무도 없는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산책의 마지막 코스로 신나게 뛰어놀고 있있습니다. 반경 300m 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저는 바다의 리드 줄을 잠깐 풀어주었습니다. 


바다는 산책을 그냥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늘 팔랑팔랑 기분이 좋아 꼬리를 흔들며 엉덩이를 높이 치켜세우면서 기분 좋은 뜀박질로 산책시간을 즐깁니다. 바다 전용 자동 줄을 구입하기 전이어서 2미터 리드줄로 산책을 시켜주던 때라 다소 갑갑하게 느껴질까 사람들이 없는 자정 야간 산책 시에는 놀이터에서 잠깐 리드줄을 풀어주곤 했던 것이죠. 


물론,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요. 사람이 있건 없건 리드줄은 필수입니다. 하지만 제 알량한 지식으로 이 정도쯤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바다가 착하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굳게 믿었으니까요. 


사고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사방이 고요한 시각,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푸들이 겨울바다를 보고 시끄럽게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의 적의에 예민한 바다는 제가 미처 하네스를 낚아챌 틈도 없이 그 푸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습니다. 푸들 견주는 다급하게 푸들을 안아 올렸고 허겁지겁 달려간 저는 황급히 바다를 제지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푸들의 견주는 갑자기 짖어대서 미안하다고, 일전에 진돗개한테 물릴 뻔했는데 그 이후로 큰 개들만 보면 더 크게 짖게 되었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입이 마르고 닳도록 죄송하다는 사과를 했습니다. 리드 줄만 제대로 착용하고 있었다면 없었을 일이었으니까요. 


푸들이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24시간 동물병원에 가자고 제안했으나 당시 육안으로 푸들이 피가 나거나 외상을 입은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며 그녀는 사양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 연락처를 건네며 다음날 꼭 병원에 가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 후 답변을 주도록 당부했습니다. 


다음날 푸들 견주에게서 동물병원 다녀왔으나 별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며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아마도 바다는 단순히 호되게 겁만 주려던 것이었나 봅니다. 


천만다행으로 별 탈 없이 일은 마무리되었지만 바다에게 저는 너무나도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바다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저의 보호의 책임 문제였습니다. 리드 줄을 잠시라도 풀어놓은 게 이번 사고의 핵심이었습니다. 거기에 바다가 누구와도 잘 지낼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대처한 부분이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사람도 예민한 날에는 저도 모르게 엄한 사람에게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강아지들도 그럴 수 있는 것인데, 늘 내 강아지는 착하기만 하다고. 언제나 상냥하기만 할 거라고. 그래서 당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물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분명히 목도한 사건이었죠. 그래요. 물지 않는 개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일이 생기는가. 평생 생기지 않는가. 하는 것만이 있을 뿐.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개는 물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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