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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08. 2021

하루 세 번, 행복을 걷는 시간

내 강아지의 산책법

우리는 하루 세 번(기상 후, 오후, 잠들기 전) 산책을 합니다. 취재나 강의를 하러 가는 등 외부에 일하러 가지 않는 날은 거의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라 가능한 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깨어나 조용히 기다리던 녀석들은 내 기척을 기막히게 알고 꼬리를 흔들며 침대로 올라와 발랄하게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원고를 마감하느라 거의 아침에 가까운 새벽에서야 눈을 붙이면  늦잠을 자기도 하는데, 녀석들이 기다리다 한계점에 다다르면 침대로 올라와 뽀뽀 공세를 해대며 조금은 자극적으로(?) 나를 깨웁니다. 그러면 나는 녀석들의 등쌀에 못 이겨 눈꼽만 겨우 띄고 현관으로 가는데, 그때 나보다 더 빨리 달려나가는 두 녀석의 엉덩이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 있답니다. 그 모습을 보면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와요. 


"그렇게 좋더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산책은 주로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정도로 이루어집니다. 중형견(우리나라에서는 10kg만 넘어도 크다며 겨울바다를 마치 대형견 마냥 분류하지만, 엄연히 25kg 미만의 중형견입니다.)에게 그 정도는 소극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릅니다. 


산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산책이다.

산책은 조깅과는 달라서 '달려나가며'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강아지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산책이란 자고로 천천히 흙냄새, 바람 냄새, 풀냄새, 꽃 냄새를 즐기며 자분자분 걷고 자연을 음미하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는 여기에 더해 동네 강아지들의 흔적 냄새를 따라다니며 자기의 체취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 그런 즐거운 놀이입니다. 그렇게 천천히 산책을 하다가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녀석들은 서로 엉켜 격렬하게 장난치고 레슬링을 한답니다. 아파트 한 바퀴 도는데 그런 장난은 두 어번 찐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쫓고 달리고 뒹굴고 할 수 있는 것은 서울에서라면 어림도 없습니다. 사람 적은 시간에 나가는 것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적은 시골 동네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산책 중에 바다는 두세 번, 겨울이는 한두 번 배변을 합니다. 이렇게 산책을 마치기까지 얼추 40여 분 남짓 소요되지요. 더 걸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시간은 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루 세 번의 산책은 그렇게 느린 듯 격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비가 오면 어떡하지?

내 강아지들은 실외 배변으로 습관을 굳혔기 때문에 비가 와도 밖으로 나갑니다. 배변만 하고 돌아오더라도 일단 나가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어요. 가벼운 비라면 산책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아요. 비가 오면 우비를 입혀 나갑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벼운 비는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이 아니라면 우비는 입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빗줄기가 굵으면 바다는 기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해요. 겨울인 눈이나 비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요. 아이들과의 약속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갔다가 배변만 하고 돌아오더라도 늘 같은 시간에 늘 해 왔던 걸 행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약속을 지켜주고 아이들과의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죠. '이봐, 비가 와서 오늘은 제대로 산책하긴 글렀어.'하고 함께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강아지한테 냄새가 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는 있어요. 대체로 산책을 하루 3번 나가기 때문에 그때마다 목욕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저 전용 물티슈로 매번 얼굴부터 몸 전체를 잘 닦아준 후 발만 씻어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행복한 강아지에겐 냄새가 나지 않는답니다. 내 강아지들을 보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강아지한테 좋은 냄새가 난다."라는 거예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목욕을 시키지만 좋은 냄새라는 것이 난다는 말을 곧잘 들으니까 그게 모두 행복 때문인 것 같다는 근거없는 확신을 하게 되었는데요. 처음 애들을 만났을 때에는 보호소에서 밴 냄새가 아무리 자주 열심히 씻기고 말리고 빗질해도 한 달이 넘도록 빠지질 않았거든요. 그건 어쩌면 불행의 냄새가 아니었을까요. 어쨌거나 지금은 아이들이 행복한 것 같아서 좋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행복한 모습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도 덩달아 신나고 행복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나는 요즘 하릴없이 꼭 하루 세 번 행복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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