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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al Apr 19. 2021

Ep.06 :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탐닉의 중격

"여자는 블루투스, 남자는 와이파이로 대변되는 연애와 IT의 조합. 남자는 주변의 이성 신호에 모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자는 가장 강한 신호를 선택하는 특성이 너무나 닮았다."





랑? 그런 미적지근한 단어는 내 인생의 우선 순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사람을 평가하는 요소는 절대적인 외모와 경제력, 이 두가지 뿐이다. 사람의 인성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숨길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내 가식적인 행동만 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관심을 끌기 위해 접근하는 남자들은 나에게 물고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에게 인간관계란, 여유롭게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 승자라는 인식이 새겨져 있다. 타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그저 여유롭다. 특별한 것을 바라지도 않고, 또 그 이상을 주지도 않는다. 나에게 애정을 어필하기 위해 안달이 난 물고기들을 바라 보는 것이, 타인을 대하는 나의 유일한 처세술이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들어 나에게 부쩍 관심을 표현하는 오덕후가 보인다. 같이 게임을 하다 계속되는 요구에 SNS 주소를 알려줬을 뿐인데, 이 친구가 나에게 점점 몰입하려는 경황이 포착되었다. 내 어장으로 한 마리 더 들어왔구나... 



오덕후의 가벼웠던 안부 인사는, 어느새 나에 대한 세레나데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은 생각도, 이성적으로 느껴지는 감정도 없다. 단지, 나에게 몰려드는 물고기 중 한 마리라는 생각 외에는... 나를 만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다 결국, 내 방송의 시청자로 유입되었다. 촌스러운 아이디는 여전하구나... 나에게 어필하고자 끝 네 자리 숫자가 1004♡♥로 바뀌어져 있다. 방송에 접속한 오덕후의 아이디를 이내 확인하고, 상큼한 미소와 함께 애교섞인 인사를 던졌다. 이런 나의 리액션에 오덕후는 별풍선으로 회답했다. 






수적으로 내 관심을 표현하기 위한 무언가가 절실했다. 이제껏 혼자 살아왔던 어둠의 시간들이 가물가물 해졌다. 요즘 나의 24시간은, 어떻게 그녀에게 어필할까 하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한다. 나에게 그녀의 존재는 고단했던 내 인생을 모두 치유해주는 만병 통치약 같이 느껴졌다. 하얀 피부, 긴 머리, 아름다운 몸매, 상큼한 미소와 애교가 터지는 눈웃음까지, 나에게 그녀는 그냥 여신이다. 하루종일 그녀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매일 나를 지배했던 게임도 시시해졌다. 집착의 방향이 그녀에게로 자연스레 옮겨진 모습이다. 최근들어 그녀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매일 확인하는 그녀의 SNS, 그리고 짧게 남긴 그녀의 심경이 내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감정과 생각, 그녀의 마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내 게임 속에서 소통하던 채팅은 SNS의 DM으로, 만남의 소망은 그녀의 인터넷 방송으로 나를 이끌었다. 방송에 처음 접속했던 그날, 나에게 던진 그녀의 상큼한 미소와 반가움의 표현이 나의 우심방 좌심실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녀와 만남을 간절히 원하던 나에게 가뭄의 한 줄기 빛이 되었다.   



방송에 접속한 사람들이 모두 경쟁자로 보인다. 마우스의 중간 버튼을 아래로 굴리며, 잠재적 경쟁자의 목록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펜까페의 회장? 열혈? 무슨 뜻 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목록 상단에 위치한 걸 보니 여신의 방송에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인 것 같다. 게임을 같이 즐길 때만 해도 그녀와의 거리가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거리가 멀어진 느낌이다. 그녀에게 관심을 어필하는 경쟁자들의 채팅 내용과 행동을 관찰했다. 아... 별풍선을 선물해야 하는구나...



 




엽다고 생각했던 오덕후의 행동들이 슬슬 징그러워 졌다. 방송에 하루 종일 접속해 있는 것도 모자라, SNS에 DM을 도배하는 등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느낌이 들자 갑자기 쎄한 느낌마저 든다. 어쩐지 닉 값 한다더니, 조금씩 오덕후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 어장에 들어온 물고기는 적어도 내가 주는 사료에 만족하며 지내길 바랬는데, 이 친구는 그 어장을 흐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치 애정결핍에 걸린 아이처럼, 내 모든 관심이 자기에게 집중되길 원하는 것 같다. 오덕후가 내 방송에 머무는 동안, 계속 별풍선을 선물하며 나에게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친구가 두려운 것은, 나에게 춤이나 섹시한 의첸(의상 체인지)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방송에서 자기 이름을 계속 어필해 달라는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아... 피곤하네... 이 친구... 강퇴시켜 버릴까...   



가끔씩 도를 벗어나 나에게 집착하는 진상들을 만날 때가 있다. 하지만, 항상 여유로운 나의 태도로 그들을 밀어내면 자연스레 멀어지고는 했는데, 오덕후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스토커를 넘어서 내 마음과 감정을 모두 자기에게 집중하길 원하는 것 같다. 무관심으로 어떻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어떻게 어장에서 몰아낼까...



 




나미가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 주머니는 별풍선 구입으로 다시 고갈되어 갔고, 줄어든 별풍선의 선물로는 이제 내 이름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처음에 봤던 그 상큼한 미소, 아름답던 여신의 자태는 조금씩 사라져 갔다. 하루종일 그녀의 방송을 보며, 여신의 본래 모습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조금씩 그녀의 가면이 보이는 것 같다. 



몇 달간, 그녀의 방송에서 모든 말과 행동을 관찰하며 느낀 점이 있다. 나는 그녀에게 전혀 특별하지 않은 존재였고, 그 방송에 접속하는 모든 사람들도 물고기 였다는 것이다. 별풍선에 보답하는 그녀의 리액션과 레퍼토리도 항상 일정했고, 가끔씩 피곤할 때 비쳐지는 그녀의 얼굴은 여신이 아닌 마치 마귀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그녀에게로 유인하게 만들었을까... 그녀를 통해 역시 바라 본 세상과 사랑은 역시 신기루였던 것일까...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집중했던 관심도 시들해져 갔다. 그렇다고 게임이 갑자기 하고 싶어진건 아니다. 그녀에게 애정을 어필하기 위해 별풍선을 무리해서 지르다 보니, 아이템을 구매할 돈 마저 사라졌다. 한동안 진실했던 내 마음이 원망스럽다. 그녀를 위한 내 변화의 마음가짐으로 마라톤을 시작하고, 설레임에 밤잠을 설쳤던 내 모습이 그냥 바보같다. 이제는 무엇에 집중하여 살아갈지 마음 속이 막막해졌다. 더이상 그녀는 나에게 여신이 아니었다. 


그냥 여포였던 걸로하자...   



* 사필귀정(事必歸正) : 올바르지 못한 일이 임시로 기승을 부리는 것 같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마침내 올바른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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