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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al Apr 13. 2021

Ep.05 : 어장 관리(관심 중독)

탐닉의 중격

"삶의 목적은 자기 계발이다. 자신의 본성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 그 목적을 위해 우리 모두가 존재한다." (오스카 와일드, 소설가)





렬한 시선과 과도한 집착으로 종종 피곤할 때도 있다. 쓰고 있는 내 가면을 벗어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물고기들의 관심은 내가 살아가는 자양분의 원천이다. 사실, 어장으로 합류한 물고기들의 관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름다운 외모 어필, 섹시한 옷차림, 상큼한 미소, 시기적절한 리액션의 떡밥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어장을 맴도는 물고기들의 관심을 마음껏 즐긴다. 



TPO(Time, Place, Occasion)의 원칙. 내가 쓰고 있는 가면(페르소나)들은, 상황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SNS, 인터넷 방송, 쇼핑몰, 온라인 게임 등 나를 어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심어 놓는다. 무엇보다 친구들이나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가면을 꺼낼 수 있어 상당히 편리하다. 차려놓은 밥상에 젓가락질만 하면 되는 느낌... 가끔 본 모습이 헷갈릴 때도 있지만, 인생 차체가 허구의 연속이라는 클리셰가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보기보다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슬림한 몸매 유지와 또렷한 얼굴 윤곽을 위한 식단 관리, 꾸준한 운동... 그리고 지속적인 시술도 필요하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SNS 등 여러 플랫폼에 내가 원하는 기록을 정리하여 남겨놓는다. 당연히 최대한 예쁜 모습으로... 자~!! 물고기들아... 몰려들어라...







론 나에게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사랑했던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지난 날의 추억은, 지금은 인간 불신이라는 쓰레기로 남아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남자 불신... 어린 시절의 영향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줄 아빠 같은 존재가 끌렸다. 하지만 이런 나의 희망사항은 이제는 그저 신기루 처럼 느껴진다. 



아직까지 겉과 속이 동일한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다. 지난 날의 경험과 고정 관념 때문에 만들어진 남자들에 대한 편견 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시전하는 남자들의 근거없는 자신감과 허세, 물질적 공세 등 항상 같은 패턴의 접근 방식이 시시해졌다. 물론 이런 남자들과 연애를 하기도 했지만, 뭔가 중요한게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뭘까...



어릴 적 순수했던 마음은 피터진 전쟁터가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진심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졌고, 모든 남자들이 이성이 아닌 물고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는 아팠던 감정과 기억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후, 좋은 사람을 찾는 일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냥 필요에 따라 만나는 인스턴트식 관계가 편해졌다. 기나긴 터널의 끝엔 빛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 속 터널의 끝은 소나기가 내리는 흐린 먹구름 같다.







유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가끔씩 찾아왔다. 특히 늦은 밤 혼자 있을 때, 현실이 재미가 없고 지루할 때 더욱 그랬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 속을 오염시켰다. 운동을 하고, 사람들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을 받아도, 기분 좋은 감정은 항상 일순간이다. 육체적 고통과 두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술을 해도, 아름다운 내 모습에 대해 만족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면서, 남들처럼 먹고 마시는 저녁 시간이 사라졌다. 당장의 수익 때문에 생활 패턴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저녁-새벽-이른 저녁의 반복, 하루에 쓸수 있는 내 감정은 외로운 영혼들을 위해 오롯이 사용되었다. 방송이 끝나고 난 뒤에 공허함과 하루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 다시금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찾아올까 두려워 억지로 잠을 청한다.



 




루했던 일상과 항상 같은 방송 레퍼토리에 스스로 식상함을 느꼈다. 외로운 영혼들을 달래주는 나의 가면이 닳아 없어지고 있다. 정형화된 대화, 나의 정형화된 행동과 반응... 점점 싫증이 났다. 그래서 시작하게된 RPG 게임, 시스템을 이해하고 나니 은근히 재미가 있다. 캐릭터 성장을 위한 투자와 노력, 협력 플레이와 채팅 등 현실과 동일한 요소가 많았다. 차라리 게임 방송으로 컨텐츠를 바꿀까 고민이 생긴다.    



어느 날, 평소 함께 게임을 즐기는 유저 중에 한 명이 귓속말을 걸어왔다. 레벨이 상당히 높아, 팀 플레이 진행 때 많은 도움을 받고는 했다. 어디보자... 아이디가 marathon5494?... 무슨 뜻일까... 마라톤 오덕후다? 작명 실력이 의심되는 상당히 촌스러운 아이디다.   



날이 갈 수록 marathon5494의 메세지가 많아졌다. 내 SNS 주소를 알려준 이후부터 더욱 친근하게 행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게임 시스템이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인데,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 장문의 메세지를 보낸다. 요즘은 한 술 더떠 자기가 마라톤을 한 얘기 등 사적인 대화를 시도하려는 정황도 보인다.

 


어떡하지... 내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끌어들여 볼까나...



* 격물치지(格物致知) : 물건이나 각각의 상황들을 보고, 그 속에서 하나의 본질을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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