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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al Mar 30. 2021

Ep.04 : 거북이 달린다 part-2

탐닉의 중격

"타인과 비교로 인해, 당신의 삶이 불행해 지도록 놔두어선 안된다. 비교하는 대상은, 오직 어제의 당신 뿐이다."




                                                                                                                                                                                                         

통은 내 의지마저 꺾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종아리에 통증이라는 그 분이 찾아오셨다. 검지 손가락에 침을 묻혀 이마에 찍어볼까. 신호를 듣고 출발 할 때까지만 해도, 긴장한 나를 빼고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 5km를 지난 시점에서 주변을 바라보니, 대다수의 얼굴이 울부짖는 홍당무처럼 보인다. 큭큭큭... 이래서 저 랩(Lv.)의 인간들은 안 된다니까. 어느새 통증도 사라지고 없었다. 막상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잘 달릴지 생각도 못했다. 역시,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무진 한가 보다.    



세상 어디에도 경쟁이 없는 곳은 없었다. 항상 현실을 외면하며 도망치 듯 살아왔지만, 오늘 만큼은 뒤를 따르는 홍당무들을 바라보며 상대적 우월감을 만끽한다. 콤플렉스, 열등감으로 존재했던 왜소한 체구와 작은 키가 이렇게 달리는데 도움이 될 줄이야... 게임 뿐만 아니라 마라톤에서도 난 지존의 레벨이었던 것인가... 왠지 더욱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10km 지점에 도달하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설치된 배식대에서 물과 바나나, 쵸코바를 나눠주고 있다. 화이팅을 외치며 웃는 도우미들, 너희들이 장딴지를 타고 흐르는 이 고통을 알아? 혼자서 중얼거렸지만, 이내 두손에 바나나가 살포시 쥐어져 있다. 일부 홍당무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주어진 바나나와 쵸코바를 먹고 있다. 인간이 원숭이가 되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다.



분기점을 지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내 옷에 스며든 땀 냄새 사이로, 슈렉 아저씨의 알코올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젠장... 대단한 향기를 내뿜는 사람이군. 냄새는 났지만 왠지 기억이 남는 몬스터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달리고 있던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가시권 내에서 폭발 직전의 굉장한 얼굴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기된 얼굴이 진짜 슈렉이네... 이내 잠시나마 즐겼던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짜 고되고 힘든 운동이다. 달리는 동안 내 몸에서 알코올 분해가 활성화 되었다. 이산화탄소와 에틸 알코올이 살길을 찾아 각자 도망가는 느낌이 든다. 항상 밀폐된 공간에 존재했던 내게, 상쾌한 공기와 활기 찬 분위기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무릎과 발목이 살려달라고 나에게 소리쳤다. 매일이 지옥같았던 정신적 고통 속에서, 이 정도 육체적 통증은 오히려 감사함을 느낄 정도다. 공기를 가르는 느낌과 대회 분위기, 간간히 터져 나오는 화이팅 소리, 아직 남은 알코올 기운까지 무언가 약을 마신 것 처럼 에너지가 넘친다. 뭘까, 이 느낌은... 하여튼 기분은 요 몇년 간을 통틀어 최고다.  



5km를 지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에 도취되어 순간 스퍼트(spurt)를 올렸다. 주변에 같이 달리던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사라진다. 나는 사업에 실패한 이후로, 스스로 바닥까지 가는 못난 경험을 했다.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던 그 날의 기억에서, 비교로 인한 열등감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은 나를 정말 미치게 했다. 모두를 떠나보내고 현실을 외면하며 살았던 절망 속에, <해리포터>의 저자 조엔 K. 롤링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한 줄기 빛을 얻었다.                                               



"인생이 바닥을 쳤을 때, 그 바닥은 당신의 인생을 다시 세우는 초석이 될 것이다. 겁내지 마라. 모든 것을 잃은 지금, 당신은 이제 올라 갈 일만 남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묵묵하게 곁을 지켜주었던 강아지, 그리고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나의 단단한 EGO가 있었다. 달리는 동안, 이상하게 잊고 지냈던 긍정적인 생각이 팽창하며 폭발 할 것만 같다. 달리기가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었나... 집으로 돌아가면 이런 기분을 느끼는 원인과 현상에 대해 연구해 봐야겠다. 어느새 도착한 10km 분기점의 배식대, 증발한 알코올을 보충하기 위해 몸에서 갈증의 신호를 보낸다. 토가 나올 때까지 마실 수 있는 이름의 음료가 저기 있군... 도우미들이 나를 보며 화이팅을 외쳐주자,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음료를 마시고 다시 달리려는 찰나, 잊고 있었던 신호가 왔다. 한동안 방치 했었던 몸뚱아리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뼈마디가 쑤시고 저린다. 특히, 무릎에 위치한 반월상 연골판이, 내 체중을 견뎌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분기점을 지난 지금, 온 몸의 기관들이 나에게 고통을 호소했지만 이대로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었다. 달리기를 통해 상처가 치유한 것 같은 느낌은 받았지만, 아직 현실에 맞서 싸울 현명함과 용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독이던 그 때, 여유를 부리고 있는 오덕후가 보인다. 처음에 느꼈던 호기심이 되살아났다. 부스터(booster)를 다시 가동시켜 보자.                                                   




                                                                                                                                                                                                     

정이 되살아 났다. 잊고 싶었던 지난 날의 기억, 트라우마를 깨운 슈렉의 냄새... 달리고 있는 내 자신이 갑자기 미워진다. 견디기 힘들었던 불안, 정처없이 맴돌며 게임에 집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폭력과 학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아버지를 저주했다. 이런 나를 방치하는 어머니 역시 미워했다. 관심과 사랑의 울타리에서 소외된 나는, 항상 어두운 동굴에 숨어 지냈다. 그리고 어딘가에 애정의 결핍을 해소해 줄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성인이 되어 만난 누군가는 나에게 애정결핍이라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나에게 정서불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진심으로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학창 시절, 불안함을 지우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모든 공간에 낙서를 했다.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낙서를 발견한 선생님들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던 선생님들의 과목은,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제서야 내가 왜 그런 행동과 경향을 보였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단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칭찬이 너무 그리웠던 것 뿐인데...



가치관이 잡히지 않았던 시절부터 불안을 달고 살았던 나는, 온갖 걱정이 곪아 터져 내 인생을 쥐고 흔들어 놓도록 방치하고 말았다. 사실 내 심장은 누구보다 뜨겁게 뛰고 있었고, 따뜻한 관심과 애정에 목 말라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나약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지난 날의 기억을 소환시켜 준 슈렉 아저씨를 계속 응시했다. 그도 나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쫒아오는 모습이 보이니까... 도착까지 2km 남은 지점에서 드디어 그가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 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저 오늘 처음 만난 슈렉 몬스터일 뿐인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잊고 싶었던 기억이지만, 저 사람은 아버지와 달리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눈빛이 왠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칫(Ratchet)이라는 톱니바퀴가 있다.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지 못하는, 한 쪽으로만 회전하는 톱니바퀴다. 이제는 더이상 내가 원하지 않는 반대 방향의 인생을 살기 싫었다. 그래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죽어라 달렸다. 도착 지점을 2km 앞에 두고 도로에 멈추어 섰다. 뜨겁다고 생각했던 아스팔트 도로가, 달리는 동안 마찰과 충격으로 인해 내 발이 뜨거워서 였음을 깨닫는다. 드디어 연료가 고갈됐다.



실패에 대한 정신적 트라우마, 그리고 수 많은 고통들이 되살아났다.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추락한 내게 수도 없이 괜찮다는 말을 되뇌었지만, 이전과 같은 지옥의 반복이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못난 내 자신을 바꿔보고 싶었다. 하지만 비참한 현실은 또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나를 인도했다. 앞에서 달리고 있던 오덕후가 뒤돌아 본다. 나도 그 친구를 바라봤다. 고맙다. 덕분에 여기까지 쫒아올 수 있었어...

 


마음 한 켠으로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앞서 달리고 있는 오덕후를 바라 보니, 왠지 모르게 아들의 미래도 밝아 보였다. 그렇게 차가운 도로 위에서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오덕후가 방향을 바꾸어 나에게 다가왔다. 외모와는 다른 굵고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냐는 말을 건넨다. 아무렇지 않은 이 말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니, 괜찮지 않다... 마음이 괜찮지 않다...아프다...



생각지도 못한 오덕후의 도움으로 완주에 성공했다. 그 친구의 말 한마디와 부축이 없었더라면, 난 또 인생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 뻔했다.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이번 마라톤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달리기를 통해 가혹했던 지난 날의 과거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지만, 내 상처가 모두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중독의 행위도 일시적인 처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한 순간에 이루어 지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하나씩 부러뜨리면서 가야겠다. 



* 고진감래(苦盡甘來) : 노력만이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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