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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al Mar 26. 2021

Ep.03 : 거북이 달린다 part-1

탐닉의 중격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존재가 인간이다. 좋게 말하면 신념이고, 지나치면 꼰대가 된다."




                                                                                                                                                                                       

실하게 보이는 내 참가번호 20215494. 끝 네자리 어감이 '오~! 덕후다'로 들려 괜히 찔린다. 명치를 중심으로 네모난 번호표를 붙이자, 고정 클립이 내 양가슴을 정말로 찌른다. 뭐지... 사실을 인정하라는 소린가. 난 지금 아무도 몰래 신청한 마라톤 대회장의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에 서있다. 집구석에 박혀 주구장창 게임만 즐기던 내가, 왜 이런 미련한 짓을 했을까 일말의 후회가 남는다.



그녀와 마주하기 위해 난 변화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약한 내 존재를 인정하고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이런 변화의 시작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스스로 내딛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대견스럽다. 이제껏 게임에 집착하며, 나에 대해 한 가지 인지한 사실이 있다. 비록 모든 것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예전부터 한 가지에 열중하면 스스로 납득이 갈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질이 있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끝까지 달려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겠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인파의 열기에 이유없이 주눅이 든다. 예전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시작도 전에 정처없이 떠돌며 여기저기 눈치를 봤다. 정신차리자, 그녀를 위해 변화를 택하기로 했지 않았는가. 이대로 주눅이 들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출발 전,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다 갑자기 현 웃음이 터졌다. 똑같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어리버리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힐끗 쳐다보니, 왠지 이유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 사람 주변을 맴돌다 적당한 장소에 멈추어 섰다. 풋... 레벨  10정도의 슈렉 몬스터처럼 생겼다. 수염은 거무튀튀하고,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옷차림도 허술하다. 왠지 모를 아우라가 느껴졌지만, 근처에서 몸을 풀다보니 그것은 술냄새란 것을 깨달았다. 저 아저씨 정체가 뭐지. 훗... 사뿐하게 이기겠군...



                                               


                                                                                                                                                                                                         

오와 자책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움직여야 산다는 내 각오를 실천하기 위해, 허겁지겁 마라톤 대회 참가를 신청했다. 비록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오늘 꼭 완주해서 변화에 대한 내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슴에 부착하려고 번호표를 꺼내든 순간, 잠시나마 접어놓았던 증오가 되살아난다. 참가번호 20214723, 왠지 끝 네자리 번호가 '술 줄이삼'으로 보인다.



사실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맥주 한캔, 아니 두캔을 마시고 나왔다. 수 많은 사람들을 보니 이유없이 자신감이 사라진다. 술을 한잔 더하고 나왔어야 했나. 방금까지도 변화를 위해 술을 줄이고, 나아가 끊어보자는 일념으로 대회에 참가를 했는데... 괜시리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벌써부터 긴장을 하다보니, 아침에 주입했던 에틸 알코올의 분해 능력이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이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대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했다. 무엇보다 다들 삼삼오오 둘러서서 대회에 대한 전문적인 대화를 주고 받거나, 그들이 입은 러닝웨어의 모습에 왠지 더욱 주눅이 든다. 자신감이 알콜 수치 마냥 쭉쭉 떨어졌지만, 완주에 목표를 두고 내 할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회 방송이 울려퍼지고 대회장 구석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앙상한 뼈만 남은 조그만 친구가 나를 보며 슬며시 웃고 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나와 같이 처음 참가하는 어린 친구 같은데, 알 수 없는 의미의 미소에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번호표를 바라보니 참가번호 20215494, 정말 오래 간만에 크게 웃었다. 그리고 놀란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큭큭큭... 어쩐지 덕후 같더라...



                                               


                                                                                                                                                                                                             

지를 써 볼까 어떻게 접근할까 벌써부터 혼자 김치국을 마시고 있다. 약간 서늘했지만 구름없는 청명한 날씨에 기분이 좋아졌다. 집 구석에 박혀있던 내게 이런 바깥 공기는 너무나 신선했다. 옆에서 몸을 풀고 있는 슈렉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진동하는 술냄새 때문에 옆에 있는 나까지 냄새로 취할 것 같다. 허술한 모습에 긴장이 풀려, 옆에 자리를 잡은 내 후회도 진동한다.



출발 10분 전이라는 주최 측의 방송이 들린다. 왠지 모르게 몸이 경직되고 입술이 바싹바싹 마른다. 괜찮다. 나는 RPG 상위 레벨의 클래스가 아니었던가. 참가자들의 복장과 분위기를 보고 쫄 것 없다. 비록 그들보다 경험치는 부족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무한한 체력(HP)과 웃는 모습의 그녀를 생각하며 힘을 낼 수 있는 특수기(MP)가 있다. 쫄 것 없다.  



출발 5분 전으로 다가서자, 주변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드디어 진동하는 슈렉 아저씨의 술냄새를 탈출할 수 있다.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계속 술냄새가 난다. 아뿔싸... 면으로 된 내 옷에 이미 냄새가 베인건가.



 


   


기가 주변을 메웠다. 물론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코올의 향기인 것을 나도 안다. 주변에서 몸을 풀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정말 술을 끊어야 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평소 거래처 등 업무 때문에 만난 사람들과 술을 즐기는 나였지만, 한동안 술에 너무 의존하며 살았다. 왠지 숙연해진다.



출발 10분 전이 되자, 주최측에서 단체로 스트레칭을 하자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옆에 있는 오덕후를 쳐다보니 열심히 집중하여 몸을 풀고 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몸을 풀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집중이 안될까... 출발 전에 시원한 맥주 한캔 했으면 좋겠는데... 



출발 5분 전 방송이 흘러 나오고, 사람들이 눈빛과 분위기가 변한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왠지 모를 이 긴장감, 이전 고객사와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 방문 전 사전 준비를 열심히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눈을 감고 크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깊게 내쉬었다. 눈을 떠보니 오덕후가 도망간다. 처음에 느꼈던 오덕후의 어두웠던 이미지가 신경 쓰인다. 가정불화로 떠나버린 와이프의 얼굴이 떠오르며, 우리 아들도 자라서 저렇게 되면 어떡할까라는 망상이 생긴다. 



일단 따라가봐야 겠다...




*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 당신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어떤 신념이, 어쩌면 거짓된 진실일수도 있다. 항상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 다각도로 사고하는 습관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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