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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al Jun 02. 2021

Ep.10 : 파랑새는 있다.

" 회의적인 세상이 지독한 의심으로 자신을 공격해도, 언제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전 인류에 맞서 자신의 유일한 사도가 되어야 한다." (너새니얼 호손, 소설 '주홍글씨' 중)





순간 조용한 정적이 흐른다. 오덕후를 바라 보니 꽤 놀란 표정이다. 사실 나도 놀랐다. 꼿꼿하게 펴진 허리와 어깨, 윤기가 흐르는 얼굴, 세련된 펌 스타일과 입고 있는 트렌치 코트의 핏(fit)까지... 1년 전, 마주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의 아름다운 광채는, 건강한 몸과 정신이 좌우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굵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귀를 관통해 달팽이관을 자극한다. 어느새 오덕후는 낮은 목소리와 외모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되어있었다. 경제학자인 오마에 겐이치가 주장했던, 인간을 바꾸는 3가지 방법(시간, 사람, 공간)이 떠올랐다. 지난 시간동안 오덕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어서 시작된 대화, 그리고 나누지 못했던 수 많은 이야기들... 우리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아낌없이 궁금증을 풀기 시작했다. 서로 주고 받는 대화의 템포, 기분 좋은 봄비의 소리, 그리고 우측 귀를 자극하는 Jazz 리듬까지... 한정된 공간에 마치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오덕후에게 건넨 한 잔의 레드와인. 우리는 인생의 기로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겨낸 지금의 모습을 서로 축하했다. 

오덕후의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눌러 담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가는 제대로 이해했는지 되물었다. 이것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나의 자세다. 보이지 않는 삶의 밑바닥에서 나를 붙잡아 줘서 정말 고마웠어.



  



념은 곧 나라는 존재의 죽음, 정체성의 멸실을 의미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고통의 순간에서 수 많은 갈림길에 직면했고, 결국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다. 의미없이 집착했던 게임과 이성에게 버려졌던 상실을 감수하며, 나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믿는 신념의 안내에 따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에 대한 집착을 정리하는 동안, 더이상 게임에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냥 매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6개월을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내 시야에 드디어 떨어지는 석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을 바라보니 태양이 떨어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는 말이 들리는 듯 했다. 

시작된 게임 방송. 처음엔 너무나 어색했지만, 누구보다 게임에 대한 노하우와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된 내 모습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도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못 마시는 술을 연거푸 마시고 방송을 시작했다. 어? 이상하게 반응이 좋다. 댓글을 읽어보니 진실성이 있어 보인다, 목소리가 너무 좋다 등 칭찬이 가득하다. 관심과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던 내게, 이런 칭찬과 관심은 너무나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이런게 행복이구나...   

6개월 만에 구독자가 폭발하며, 나를 열렬히 응원해주는 팬까지 생겼다. 정기 모임을 마치고 잠시 숙취 해소를 위해 들린 어느 해변가, 길을 거닐다 눈에 띄는 작은 바(Bar)의 간판이 보인다. 어두운 밤 눈을 밝혀주는 화이트 톤의 가게 분위기, 마치 자석처럼 그 가게로 나를 이끈다. 어..어디서 본 적 있는 얼굴인데... 너무 변한 모습이지만 슈렉 아저씨가 분명하다. 반가움과 함께 드는 생각, 얼굴은 그대로네... 

슈렉 아저씨가 건네 준 한 잔. 크리스탈 잔에 담긴 붉은색의 와인은, 모든 일들에 고통받았던 더러운 내 과거의 피를 씻겨주는 듯 했다. 그리고 와인 잔의 스월링(Swirling)에 천천히 흘러내리는 와인의 자국(Tears)은, 행복의 길을 찾은 내 모습을 축하하고 위로하는 기쁨의 눈물을 보는 듯 했다.



 



심히 관찰하고 판단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조급함은 인간의 불안을 더욱 야기시키고,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실패라는 쓴 잔으로 배웠다. 인생의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인생의 터널 끝에 빛을 보기 위해서, 노력하는 지금의 내 모습만 있을 뿐이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미칠듯이 나를 괴롭히고 있지 않다면, 그냥 묵묵하게 걸어가면 된다.  

과도한 욕구와 욕망, 결핍, 스트레스는 정신적 고통을 부르고 회피와 의존의 우울한 형태로 나타난다. 수 많은 정신적 고통의 해결은, 부정적 암시를 차단하고 목표에 온전히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집중의 한계를 벗어나 집착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 속 괴물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착과 탐닉, 그리고 탐욕으로 이어지는 본인만의 지옥은 인지 부조화, 오감의 결핍, 확증 편향 등 인생의 지옥에 갇혀버리는 불행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 간다. 

오덕후와 나는 인생이란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원했고, 먼저 스스로 못나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부터 인정했다. 부정, 회피, 왜곡 등 내가 저지른 모든 행동과 결과에 승복하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갈 조그만 희망을 보았다. 인간은 스스로 감정을 느끼는 존재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마치 아이들이 울거나 웃고, 화를 내면서도 스스로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처럼 껍데기만 어른인 아이들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무엇보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찾는 것이었다. 냉철한 사고와 직관, 관찰과 현명한 판단, 이성과 감성의 중간을 찾아가는 평정심, 결국 나는 편향된 사고를 버릴 수 있었다.






도깊은 이야기가 끝나고, 오덕후와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서로가 바라는 행복을 찾기 위해 진심으로 응원의 말을 건낸다. 끊임없는 비교와 자책으로 고통스럽겠지만, 지금처럼 항상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중독으로 인해 스스로 삶에 도망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중독은 인간에게 남아있던 조금의 여유마저도 빼앗아가는 무서운 존재다. 잃어버린 것에 보내주지 못하는 소유욕은, 결국 내면의 풍요로움을 앗아가고, 마음의 따뜻함과 내 고귀한 이상마저 강탈해 버린다. 중독은 마음의 빈곤, 아무것도 없는 빈 깡통일 뿐이다.     

요즘 이상하게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군... 경쾌하게 오늘 하루를 시작해보자고 외친다. 가게 문을 활짝 열고, 지난 날 얼룩으로 더러워진 바닥과 가구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하우스 와인병을 정리하고 가지런히 정리한다. 끈적해진 리큐어(Liquor)병의 주둥이를 닦아내고, 기분 좋은 음악의 플레이 리스트를 세팅한다. 오늘은 어떤 안주를 준비 할까 강아지에게 물어 본다. 신선한 과일과 치즈, 그리고 바삭한 과자까지... 오늘도 열심히 불태 울 준비를 마쳤다.

손에 넣을 수 없는 허상의 무엇을 버리고, 현재에 충실하고자 마음을 다잡는 순간... 갑자기 왼쪽 어깨부터 우측 다리까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만 같고, 크기를 알 수 없는 무거운 돌덩이가 들어앉은 고통이 전해진다. 가게 입구에 헤어진 와이프가 보인다...






심스럽게 커피를 건냈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 떨어져 있는 동안 많이 초췌해진 얼굴이다. 이전에 내가 사랑했던 예쁜 모습은 사라지고, 항상 반짝이던 눈은 탁한 색깔의 눈동자만 보인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말없이 울고있는 아내...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갑자기 또 송곳같은 칼날이 가슴을 마구 후벼팠다.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지난 날의 후회, 그리고 자책을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미안했다... 지난 날의 내 바보같은 모습에 우리 가족을 너무 힘들게 해서 너무나 미안했다... 손이 떨리고 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현명한 지혜를 지금 내게 주세요... 

시간이 흐르고, 와이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진솔한 대화를 왜 이전에 하지 못했을까. 너무나 아팠던 이별은, 스스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일까. 계절과 시간의 틈 사이로, 많은 지난 날의 추억의 소중함이 떠올랐다. 살아가며 수 없이 힘든 고통에 마주했지만, 서로 너무 그리웠던 시간들... 그 곳에 항상 웃는 내 얼굴이 있었고, 내 와이프...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내 인생의 반쪽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삶의 결실인 아들도 있었다. 못난 어른 아이들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이제라도 다시 나아갈 수 있어...  

가족의 의미. 실패를 겪으며 세상에 도망치는 동안, 내 감정이 제멋대로 날뛰도록 방치했다. 사랑하는 마음과 이별은 감정은 다른 듯 서로 너무나 닮았다. 사랑한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희망은 아직 있었다. 그리고 파랑새는 있다. 

- 탐닉의 중격 The END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허상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간절히 원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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