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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Nov 04. 2020

2002년 월드컵 이후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지구반대편에서 같은 역사를 살았던 우리

바야흐로 18년 전, 한국 최초 4강 월드컵 신화를 써내려가던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무렵, 나는 중학생이었다. 


한-일 월드컵 개최로 인해 정반대 시간의 남미에서는 매번 새벽즈음 축구 경기가 열렸다. 한국 경기와 브라질 경기가 있을 때마다 잠을 거의 못자고 등교를 해야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시험 기간 중이었고 거의 한달동안은 마음이 붕 떠있어 공부는 뒷전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현지 방송사를 통해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기간이었는데, 한국 교포로서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이 저 하늘 높히 치솟던 순간이었다. 당시 브라질은 지금처럼 발전되어있지 않았었고, 월드컵 유치를 위해 단장된 한국의 모습은 한참은 앞서간 신도시의 느낌이었다. 


그전까지는 브라질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 이민자들 때문에 모든 동양인들은 "Japa(자빠)"라는 일본인을 가르키는 용어로 통합되어 불려졌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듣도보도 못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선 2002년 월드컵 전후로 한국의 존재감은 확실히 각인됐다


스티커북으로도 나왔던 각국의 선수 사진들


2002 월드컵은 우리가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거듭나는 터닝 포인트였다.





한인타운에 큰 공원이 있었는데 원래 저녁 시간에는 폐쇄되지만 한인회에서 시청에 요청을 해서 새벽에 있던 8강전 경기를 위해 공원을 빌려 대형 스크린으로 교포들이 다같이 모여 시청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월드컵 이후에도 입도 다니던 짝퉁 BE THE REDS 티셔츠
앳된 얼굴의 이효리

그 공원이 바로 내가 살던 아파트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같이 "Be the reds" 붉은악마 티를 입고 (비록 오리지널은 아니었지만) 머리에는 빨강색 반다나를 두르고 일찍부터 공원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다들 얼마나 신나있던지, 자원봉사자들이 무료로 음식과 음료를 나눠주고 자주 가던 미용실 사장님은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셨다.


3시즘 경기 시작이었지만 이미 시작도 전에 지쳐 바로 건너 있던 집으로 들어와 티비로 경기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만 한참 밀려있던 졸음이 몰려와 경기 도중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우리집 거실에 약 20명은 되보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시체마냥 쓰러져 자고있었다. (아마 우리 오빠 친구들, 지인들, 지인들의 지인들?)



경기가 끝난 당일 학교에 시험을 보러 갔지만, 결과는 뻔했다. 그렇지만 행복했다.



아침 등교길에도 한인타운에는 차를 타고 동네를 빙빙 돌며 크락션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교포들이 수두룩 했다. 중딩시절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인생이 스포츠로 인해 이렇게 즐거울수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응답하라 1994의 월드컵 시청하는 장면



2002 월드컵은 역사를 살았던 순간이었다. 



당시 한국의 열렬한 응원 뒤 쓰레기를 줍는 성숙한 시민 의식에 대해 전 세계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고등학생이었던 오빠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한국 시민의식에 대해 칭찬을 했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큰소리로 자랑을 해댔다. (분명 이때 우리 오빠 인생에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인생의 최고조였을 것이다)



월드컵 5승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 모든 꿈만 같던 순간들은 한국의 4강전에서 끝이 났지만, 그 이후 브라질은 2002년 월드컵 우승을 거두며 국가적인 축제가 지속됐다. 브라질은 2002년 5번째 우승으로 월드컵 최다 우승 국가로 등극했지만, 그 후로 다시는 우승을 하지 못했다.


비록 한국이 월드컵을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로 많은 브라질인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알게됐고 (SAMSUNG, 브라질 발음으로는 "쌈쑹기"지만) 동양인들에게 무조건 일본인이라고 하는 빈도가 조금이나마 적어졌다.




그렇게 난 2002년 월드컵 이후 나는 일본인에서 한국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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